제17장 중국손님 (2)
용춘의 집 별배들이 난데없이 나타난 해괴한 복색의 두 사람을 보자 그 정체를 수상쩍게 여겨,
“어디서 온 자들이냐?”
앞을 가로막아 반말로 물으니 둘 가운데 한 사람은 표정에 아무 변화가 없이 눈만 깜빡거리는데
다른 한 사람이 살포시 웃으며,
“자네들이 아무나 만나면 하대하는 것을 보니 나라에 이제 골품이 없어졌나 보네.
거 되우 반가운 일이구먼.”
하고서 곧,
“나는 전날 거타주(함양, 진주) 가야국의 왕자로 이름은 구칠이고 진골 품계를 받았던 사람일세.
이 집의 주인인 용춘공과는 과거에 막역한 사이였는데, 젊어서 나라를 떠났다가 서른여 해 만에 돌아오니 그 안부가 궁금하기 짝이 없네. 내 말을 안에 연통하면 문전박대는 아니할 겔세.”
하고 반공대로 말하였다. 별배들이 진골이라는 소리에 찔끔 놀라면서도
그 주인이 본시 존비귀천을 불문하고 사람 만나기를 꺼리는 터라,
“글쎄요, 안에다 말씀은 전합지요마는 일이 잘되면 별당에서 요기나 할는지 모르겠소.”
저희들끼리 하는 소리로 낄낄거리고서 그 중의 하나가 중문을 거쳐 소문지기에게 가서 일렀다.
소문지기가 내당 앞에서 고하기를,
“30여 년 전에 나라를 떠난 구칠이란 사람이 찾아왔다는데 그대로 내어칠깝쇼,
요기나 시켜 돌려보낼깝쇼?”
양단간에 하나겠지 싶어 주인 뜻을 앞질러 물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내당 문이 왈칵 열리고 용춘이 나서더니,
“뭐라고? 구칠이 왔다고?”
평상에 보지 못한 반색을 하였다.
“뭣들 하느냐? 냉큼 안으로 모셔라!”
벌겋게 달아오른 낯으로 재촉하는 주인을 보자
한가롭게 굴던 하인들이 그제야 사지에 불이 붙었다.
“뭐라 하시던가?”
기다리고 섰던 중문지기가 저만치서 달려오는 소문지기를 향해 묻자,
소문지기가 묻는 말에 답도 아니하고 그대로 중문까지 달려가서,
“어서 안으로 듭시오!”
황급히 구칠 일행을 인도해 막 소문을 들어서는데 용춘이 신을 끌고 나오다가,
“이 사람아, 이것이 대체 얼마 만인가!”
하며 고함을 질렀다.
용춘을 본 구칠이 허리를 굽혀 깍듯이 절한 뒤에,
“저를 알아보시겠는지요?”
빙긋이 웃으며 전날 허교하던 말투를 고쳐 인사말을 건넸다.
용춘이 와락 달려들어 구칠의 손을 그러쥐며,
“어디 보세, 자네가 정말 구칠인가?
내 알던 구칠이는 머리가 검고 봉두난발한 몰골에 혈색이 개자한 청년이었는데,
난데없이 희끗희끗한 중늙은이가 나타나서 구칠이라니 이것이 당최 무슨 조화인가?
허허, 자네가 과연 구칠이란 말인가!”
감탄인지 차탄인지 모를 소리로 세월에 변한 구칠의 풍모를 속속들이 훑어보았다.
구칠도 웃던 얼굴에 홀연 눈물이 글썽하여,
“변한 게 어디 구칠이뿐입니까? 나리도 제가 알던 청년은 아니올시다.”
하고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마주잡은 손에 슬며시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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