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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부여헌(扶餘軒) (38)

오늘의 쉼터 2014. 8. 27. 10:33

제16장 부여헌(扶餘軒) (38)

 

 

 

늙은 백정왕은 진제의 말이 가히 들을 만한 소리라고 여겼다.

그 뒤 왕이 편전으로 돌아와 사량궁의 사신인 염종을 불러 실혜의 일과 진제의 됨됨이를 물으니

염종이 먼저 진제를 말하면서,

“전날 추화군 군주로 있던 백명의 아들이온데 제법 영특한 구석이 있고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하고는 또,

“순덕은 담날, 도비 등과 막역지간으로 근자에 와서 도비가 죽고 담날이 불경죄로 파직되었으니

그 아들 실혜가 조정에 반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 듯싶습니다.

진제가 그리 말하였다면 틀림없는 일일 것입니다.”

하며 진제를 두호하므로 왕도 다시 의심하지 않고,

“사량궁의 묵은 곡식을 풀어 주린 백성들을 구제하자는 진제의 뜻은 너무도 아름답고 가상하다.

 이것 하나만을 놓고 보더라도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하고서 즉시 좌우에 명하기를,

“실혜의 벼슬을 삭탈하여 죽령(竹嶺) 밖의 영림(굳林) 땅으로 귀양을 보내고

실혜가 맡아 있던 상사인은 진제에게 맡기도록 하라!”

하였다. 이에 실혜가 영문도 모른 채로 하루아침에 벼슬에서 쫓겨나 귀양까지 가게 되었다.

실혜는 왕명을 받는 순간 그것이 진제의 모함임을 느낌으로 알아차렸지만 별다른 대꾸도 없이

묵묵히 짐을 꾸렸다.

그러자 사량궁에서 같이 일하던 사인들이 소문을 듣고는 모두 실혜의 집으로 찾아와서 권하기를,

“자네는 선대부터 충성과 바른 도리로써 세상에 이름이 파다하게 났었는데

이제 간신의 터무니없는 참소 때문에 황벽한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으니

어찌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겠는가?

사실대로 말하고 어서 누명을 벗게나. 왜 자네는 변명 한마디 없이 금성을 떠나려고 하는가?”

하니 실혜가 문득 허허롭게 웃으며,

“변명을 하고 시시비비를 가린다고 무고함을 증명할 수 있겠나?

그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이런 난데없는 일은 애당초 생기지도 않았을 걸세.”

하고는 문득 정색을 하더니,

“옛날에 굴원(屈原)은 유달리 정직했으나 초(楚)나라에서 쫓겨났고,

이사(李斯)는 충성을 다했으나 진(秦)나라에서 오히려 극형을 당했네.

지금은 난세일세. 난세에는 간신이 임금을 미혹시키고 충신이 내쫓기는 것은 흔한 일이라네.

나는 차라리 육사가 승냥이 떼처럼 날뛰는 금성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심신을 닦게 된 것을

복이라 여기고 있네.

언젠가 현명한 군주가 나타나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할 때가 있지 않겠나?

다만 그때가 오기를 기다릴 따름이네.”

의연히 대답한 뒤 왕명에 복종해 그대로 금성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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