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부여헌(扶餘軒) (37)
진제가 엎드린 채로 재차 자신의 직책과 성명을 밝히고서,
“신이 이 일로 그간 여러 차례 현명하신 대왕마마께 품의를 청하였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상전이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생각다 못해 이렇게 나온 것이오니 부디 어가를 가로막은 신의 불경을 용서하소서.”
터무니없는 소리까지 덧붙였다.
“너의 상전이 누구냐?”
“신은 하사인이옵고, 상사인인 실혜가 저의 상전입니다.”
“실혜라면 순덕의 아들이 아니냐?”
진제의 대답을 들은 왕은 깜짝 놀랐다.
“내가 들어보니 너의 말에 그른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실혜는 너의 바른말을 반대한단 말인가?”
왕이 의아하게 여겨 반문하자 진제는 잠시 어쩔 줄을 모른 채로 우물거리다가,
“상전을 나쁘게 말하는 것은 예도가 아니오나 대왕 전하께서 친히 하문하시니 아는 대로 아뢰겠나이다.”
하고서,
“실혜는 지혜가 없어 본래 이런 일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자이온데 혹시 하사인인 신의 품의가 관철되면 그 공로가 아랫사람에게 돌아갈 것을 두려워하여 반대하는 듯했습니다. 또한 그는 담력만 믿고 우쭐하는 기질이 있어 평소에 남의 얘기 같은 것은 귀담아듣지도 않을 뿐더러 일전에 듣자오니 조정을 비난하고 걸핏하면 왕실에 불충한 소리를 입에 담는 것으로 보아 비록 대왕의 말씀이라도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거역하는 자입니다. 만약 실혜와 같은 자를 서둘러 징계하지 않는다면 장차 나라의 법도가 문란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모함하는 소리를 잔뜩 늘어놓았다. 왕이 크게 당황하여,
“그런 자가 어찌하여 궁의 상사인이 되었더란 말인가!”
하며 탄식하자 진제가 왕의 눈치를 살피며,
“아마도 선대의 공덕이 아닌가 합니다.”
하고는 다시금 기회를 엿보다가 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재빨리 부복하여 고했다.
“콩씨를 심으면 콩이 나오고 볍씨를 심으면 벼가 나오며, 용생용(龍生龍) 봉생봉(鳳生鳳)이란 말도 없지는 않으오나 대개 사람의 일에 이르면 그렇지 못한 수가 더 많은 법입니다. 충신 명장의 후손이 어찌 반드시 충신 명장으로만 나오겠나이까? 그런데 나라에서는 사람을 쓸 적에 당자의 자질보다는 오히려 가문을 보고 선대의 유공함을 살피는 경우가 많거니와 신의 소료에 이는 인재를 배척하는 일이요, 실혜의 일처럼 더러 화근을 만드는 수도 있습니다. 만일 실혜가 명문의 자손으로 양신의 자질을 갖추었다면 우선 그를 굴복시켜 울컥하는 성미를 다스리고 나서 뒤에 다시 데려다가 써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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