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03. 불꽃(4)

오늘의 쉼터 2014. 8. 28. 08:39

403. 불꽃(4)

 

 

(1401) 불꽃-7

 

 

 

 

차가 톨게이트를 빠져 나갔을 때 정현주가 등받이에 머리를 눕히더니 말했다.

“피곤해요. 한숨 자도 되죠?”

“그럼요.”

긴 밤을 위해서 미리 잠을 자두는 것도 나을 것이다.

 

조철봉이 얼른 대답하고는 자신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일인데다 밤이어서 영동고속도로는 소통이 잘 되었다.

 

콜택시는 어둠속을 거침없이 달려나갔고 여주를 지날 때는 조철봉도 잠이 들었다.

 

조철봉이 잠에서 깬 것은 강릉을 바로 코 앞에 둔 진부 근처였다.

 

소변이 마려웠기 때문에 눈을 뜬 것이다.

 

운전사에게 말해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시계를 보았을 때는 밤 11시였다.

 

화장실에서 나온 조철봉이 심호흡을 하고 나서 휴대전화의 버튼을 누르고는 귀에 붙였다.

 

그러자 곧 박경택의 목소리가 울렸다.

“예, 사장님.”

“너무 늦게 전화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사장님.”

박경택이 공손하게 말했다.

 

전에는 최갑중이 수족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더 젊고 빠른 경택이 맡았다.

 

갑중은 후배인 경택에게 조철봉의 기호와 성격까지 낱낱이 인계를 해준 것이다.

“내가 지금 그 여자하고 강릉에 가는데 말야.”

조철봉이 주차장에 세워진 검정색 콜택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운전사는 옆쪽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만

 

현주는 차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릉 근대호텔 특실로 예약을 해주고, 그리고, 참.”

조철봉이 생각난듯 물었다.

“더 알아낸 것 없나?”

“그렇지 않아도 내일 아침에 보고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차분한 목소리로 경택이 말했다.

“정현주씨는 불륜 현장이 남편한테 발견되어서 이혼을 당했습니다.”

“그래?”

긴장한 조철봉이 힐끗 콜택시를 보았다.

 

그때 경택의 말이 이어졌다.

“상대는 결혼전에 만났던 남자친구입니다.

 

그래서 현장을 덮친 남편이 아이를 데려가는 조건으로 이혼 요구를 한 겁니다.”

“그렇군.”

“2년동안 결혼생활을 했는데 불화가 많았다고 합니다.

 

대성상사 사원인 남편하고는 중매로 만나 6개월만에 결혼했습니다.”

“…….”

“남편은 제일대 출신으로 지금은 대성상사 영업부 팀장이 되어 있더군요.”

그만하면 일등급 신랑감이다.

 

제일대는 최고 명문대이고 대성그룹은 한국 제1의 재벌 그룹인 것이다.

 

그때 경택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그런데 오늘 사람을 시켜 간통 현장에 있던 남자친구를 만나게 했더니

 

그 사내가 정현주씨 계획대로 움직였을 뿐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이야?”

“정현주씨는 남편하고 이혼하려고 미행하고 있는 줄을 알면서도

 

남자친구를 끌고 여관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남자친구는 나중에 이혼하고 나서 정현주씨한테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헤어져주지 않았던 모양이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또 있나?”

“오늘밤에 모아진 정보는 내일 아침에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경택이 차분하게 말했다.

 

밤 기운이 차갑게 느껴졌으므로 조철봉은 어깨를 움츠렸다. 

 

 

 

 

 

(1402) 불꽃-8

 

 

 

 

“방으로 들어선 정현주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머나.”

탄성을 뱉은 현주가 방안을 둘러보더 니 곧 창가로 다가가 섰다.

 

창 밖으로 밤바다가 펼쳐져 있었지만 지금은 밤이라

 

어둠 속에 크고 작은 불빛만 일렬로 늘어서 있다.

 

오징어잡이 배들이다.

 

다시 돌아선 현주가 거실과 침실, 욕실을 살펴 보았다.

 

발걸음이 가벼웠고 얼굴에는 생기가 떠올라 있었다.

 

근대호텔 특실은 거실이 스무 평도 넘었고 욕실 욕조는 대중탕만 했다.

“멋져요.”

다시 거실로 돌아온 현주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넓어요.”

“마실 것 드릴까?”

하고 벽쪽으로 다가간 조철봉이 냉장고를 열었다.

“어머나, 별게 다 있네.”

뒷 쪽에서 냉장고 안을 들여다본 현주의 입에서 다시 탄성이 터졌다.

“오렌지주스 주세요.”

조철봉은 다가선 현주에게 오렌지 주스 캔 뚜껑을 따서 내밀었다.

“너무 오버 하신 거 아녜요?”

캔을 받은 현주가 불쑥 물었으므로 조철봉이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현주는 쓴웃음을 짓고 물었다.

“방값이 비싸겠죠?”

“그거야.”

“얼마나 돼요?”

“알아서 뭐 하시게?”

“다음에 참고로 하려구요.”

“다음에 누구하고 올 건데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들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조철봉이 리모컨을 눌러 TV를 켰다.

 

밤 12시가 넘어 있었으므로 주위는 조용했다.

 

TV의 음을 소거시킨 채 그림만 켜놓고 조철봉이 옆에 앉은 현주를 보았다.

“여기서 이틀만 쉴까요?”

“이틀요?”

현주의 눈이 다시 커졌다.

“선생님 일에 지장이 없으세요?”

“여기서 전화로 하면 됩니다.”

“그럼 집에는….”

그것이 좀 걸리지만 이은지는 이해할 것이다.

 

이은지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조철봉의 출장이나 바깥일에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 될 것이다.

 

회사일로 출장을 간다면 그런 줄 알고 전혀 캐묻거나 잔소리를 안 했다.

 

전처 서경윤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

 

서경윤은 밖에서 무얼 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의심을 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밥을 처먹거나 자빠져 자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언젠가 이틀 동안 집에서 쉰 적이 있었는데 여섯 끼 중 네 끼나 같은 국을 먹였다.

그러나 은지는 달랐다.

 

집에 같이 있으면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 하는 것이 다 느껴졌다.

 

믿고 섬세하게 배려해준다.

 

일, 이초밖에 안되는 순간이었지만 조철봉의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생각과 영상이 지나갔다.

 

영화 필름보다 수백만배 빠른 이 선명한 영상을 뇌는 다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철봉은 죽는 몇초 동안의 순간에 지난 전 인생이 눈앞에 다 펼쳐진다는 이야기를 믿는다.

 

인간의 지능은 앞으로 수백만배 더 개발될 수가 있는 것이다.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집에 연락하면 돼요. 내 와이프는.”

현주가 긴장한 듯 눈만 크게 떴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날 믿거든요.”

그러고는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지금 와이프를 배신하고 있는 중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죄책감은 일어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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