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00. 불꽃(1)

오늘의 쉼터 2014. 8. 28. 08:26

400. 불꽃(1)

 

 

(1395) 불꽃-1

 

 

 

 

 

베트남에서 귀국한지 사흘째가 되는날 오후, 조철봉은 손님이 한명도 없는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장소는 일산, 여기서 좌측으로 50미터쯤 가다가 다시 좌측 1차선 길로 1백미터만 가면 집이다.

 

바로 집 근처인 것이다.

시간은 오후 6시반, 오늘은 일찍 퇴근한 셈이었는데 차에서 내려 이곳에 들어왔기 때문에 잠깐

 

들렀다가 오실 것이라는 운전사의 말을 듣고 집에서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커피숍은 낡았고 종업원 한명도 불친절했다.

좋은점이라면 커피만 갖다놓고 이쪽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못생긴 여자 종업원은 카운터에 앉아 휴대전화에 대고 쉴새없이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상대는 남자같다. 척 보면 안다.

전화기에다 대고도 여자는 행동으로 교태를 보이는 것이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조철봉은 앞쪽을 주시했다.

 

조철봉의 시선이 향해진 곳은 길 건너편의 꽃집이다.

 

문이 열려진 꽃집 안에서 어른거리는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으므로 조철봉은 긴장했다.

여자다. 꽃집 여자. 여자가 나오더니 밖에 내놓았던 화분을 들고 들어갔다.

 

반바지에 반소매 셔츠를 입고 맨발에다 슬리퍼를 신었다.

 

그러나 허리에서 엉덩이로 흐르는 선이 부드러웠고 허벅지는 단단했다.

다시 나온 여자가 이번에는 엉덩이를 이쪽으로 돌리면서 화분 하나를 들었으므로 쫙 퍼진

 

엉덩이가 조철봉의 시선에 정면으로 펼쳐졌다.

 

 바지가 팽팽하게 당겨져서 금방이라도 터질것 같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바로 어제, 이곳을 지나다가 꽃집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꽃을 한아름 사들고 갔던 것이다.

 

물론 집에있는 이은지에게 줄 꽃다발이었다.

 

그런데 차를 세워놓고 서둘러 사는 바람에 대충 넘어갔지만 꽃집을 나오고 나서부터

 

저 여자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젯밤 이은지와 격렬한 섹스를 하는 도중에도 저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일찍 이곳에 자리잡고 여자를 관찰하는 것이다.

 

아직 저 여자의 이름도, 성도, 나이도 모른다.

 

결혼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다만 나이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정도, 목소리가 맑으며 윤곽이 뚜렷한 얼굴은

 

햇빛에 좀 탔지만 잠깐 몸을 숙였을 때 훔쳐본 젖가슴 위쪽 부분은 희었다.

젖가슴이 탐스러웠다.

 

그리고 다리도 미끈했고 발가락이 특히 육감적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던 여자가 다시 밖으로 나오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므로 조철봉은 얼른 외면했다.

이차선 도로지만 여자와의 직선 거리는 10미터 정도였고

 

사이에는 커피숍의 유리창 하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입맛을 다시면서 조철봉이 혼잣소리로 말했다.

 

목소리가 좀 컸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런 재미가 없으면 어떻게 사느냐 말이다. 내 팔자가 이런걸 뭐.”

하고 제 말에 제가 대답했던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찻값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 조철봉이 다시 꽃집으로 시선을 주었을 때

 

어느새 안으로 들어가 있던 여자가 나왔다.

 

그러더니 조철봉이 머리를 돌릴 사이도 없이 여자의 시선을 받았다.

“어머, 안녕하세요.”

하고 여자가 길 건너편에서 소리쳤다.

 

목소리가 어제보다 더 맑고 밝다.

“아.”

하면서 조철봉이 웃어 보이고는 심호흡을 했다.

 

하긴 10만원짜리 꽃다발을 사간 손님은 드물 것이었다.

 

비싼 꽃으로만 골랐으니까. 꽃을 모르니 할 수 없다. 

 

 

 

 

(1396) 불꽃-2

 

 

조철봉이 길을 건너서 다가가자 여자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반쯤 드러난 흰 이가 가지런했다.

 

웃는 표정이 더 감동을 주는 얼굴이 있다.

 

그것이 복받는 얼굴이다.

 

조철봉은 본능적으로 웃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에게 끌렸다.

 

찡그리고 수심에 잠긴 듯한 표정이 가끔 가슴을 더 메이게 했지만 피했다.

 

왠지 재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근처 사세요?”

여자가 물었을 때 조철봉은 가슴이 다시 뛰었다.

 

이 여자는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뉴스나 신문을 안 보는 여자들도 많다.

“예, 저기 위쪽에.”

애매하게 눈으로 위쪽 길을 가리켜 보인 조철봉이 꽃집 안으로 들어서자 여자가 따라 들어왔다.

 

여자한테서 달콤한 향내가 났다. 꽃집 안에 있으면서도 향수를 쓰다니.

“오늘은 뭘로 하시게요?”

여자가 옆에 서서 물었다.

 

어제는 와이프를 놀래주고 싶다고 했더니 커다란 꽃다발을 만들어 주었다.

“가격에 신경 쓰시지 말고 아주 화려하고 풍성하게.”

어제 그렇게 주문했던 것 같다.

“저기.”

몸을 돌린 조철봉이 여자를 보았다.

 

여자의 콧등 위에 작은 점이 박혀 있었다.

 

눈이 맑았고 그 흔한 쌍꺼풀 수술도 하지 않았지만 크다.

 

그러고 보니 여자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부는 윤기가 흘렀고 입술은 젖어 있었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전지전능하신 조물주께서는 얼마나 오묘하게 인간을 창조해 내시는가?

 

수천명의 여자를 겪었어도 여기서 또 다른 감동을 받는다.

“내일 행사가 있어서 그러는데 꽃다발 50개만 만들어 주시죠.”

그렇게 말을 뱉고 나서 조철봉은 긴 숨과 함께 어깨를 늘어뜨렸다.

 

저기, 하고 나서 몇초 만에 생각해낸 사연이었지만

 

그 꽃다발 50개의 처리 문제가 말을 끝내자마자 걱정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걱정은 일초도 지속되지 않았다.

 

꽃집 여자의 환해진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머, 50개나. 어떻게 꾸미죠? 어떤 행사인데요?”

여자가 연거푸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상대적으로 차분해졌다.

 

의자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자 여자가 얼른 플라스틱 의자를 옆에 놓았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앉으세요.”

의자에 앉은 조철봉이 역시 앞쪽에 앉은 여자를 보았다.

 

꽃집 안이어서 둘은 꽃에 파묻혀 있었다.

 

여자 옆에 붉은 장미 수백 송이가 쌓여 있었다.

“여직원들의 친목 모임에 보내려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철봉이 여자의 두 눈을 똑바로 보았다.

 

호기심으로 두 눈이 또렷해져 있었다.

 

갑자기 목구멍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왔으므로 조철봉은 헛기침을 했다.

 

성욕이다.

 

이 검고 또렷한 눈이 쾌락으로 흐려져 거친 숨과 함께 신음을 토해내게 될 것을 상상하면

 

저절로 아랫배가 땅긴다.

“여직원들이 집에 가져갈 수 있도록 좀 성의있게, 화려하게.”

조철봉이 그렇게 말했을 때 여자가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대한생명에 그렇게 납품한 적이 있어요.

 

그땐 장미 세 송이씩 해서 3백명분을 했었는데.”

그러더니 여자가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예산은 얼마로 세우셨어요?”

“그건 얼마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까?”

조철봉이 되묻자 여자가 눈썹 사이를 좁히더니 입술도 오무렸다.

 

또 목이 막힌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2. 불꽃(3)  (0) 2014.08.28
401. 불꽃(2)  (0) 2014.08.28
399. 저런인생(14)  (0) 2014.08.27
398. 저런인생(13)  (0) 2014.08.27
397. 저런인생(12)  (0) 201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