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불꽃(2)
(1397) 불꽃-3
“한 명당 만원씩, 어때요?”
하고 여자가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서슴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그럼 내일 오후 3시에 사람을 보낼 테니까 보내주시고.”
“요즘 장미가 좋은데요.”
“그럼 장미를 많이 쓰시고.”
“선생님은 회사 운영하세요?”
여자가 처음으로 사적 질문을 던졌다.
조철봉이 여자의 시선을 받고는 웃었다.
“예. 그런데 결혼 하셨습니까?”
“네.”
금방 대답했던 여자가 덧붙였다.
“한 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번 했다고요.”
“그럼 누가.”
“한번 하고 헤어졌으니까 횟수로 한 번이죠.”
그러고는 여자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다시 조철봉의 목이 막혔는데 이번에는 코까지 찡 하고 울렸다.
드문 현상이다.
조철봉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오늘은 이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내일까지 연결이 되어 있는 상황이니 서둘 것 없다.
“그럼 계약금을 드리기로 하죠.”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이 지갑에서 10만원권 수표 두 장을 꺼내 내밀었다.
“영수증 써 드릴게요.”
수표를 받은 여자가 책상 옆에 서서 영수증을 썼다.
상반신을 숙이고 있어서 셔츠 깃 사이로 젖가슴의 윗부분이 드러났다.
희다. 그 순간 조철봉은 침을 삼켰다.
숙인 자세여서 젖가슴이 조금 늘어져 있었는데도 탄력이 느껴졌다.
“여기요.”
하고 여자가 영수증을 들고 내밀었을 때 조철봉은 시선을 이미 돌리고 있었지만
가슴은 감동으로 뛰었다.
이런 감동은 얼마 만인가?
카바레나 룸살롱 등에서만 작업을 하다가 이렇게 우연히,
더구나 서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만난 경우는 아주 드물었기 때문이다.
신선하다.
영수증을 받은 조철봉이 여자에게 물었다.
“난 조철봉입니다.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정현주예요.”
여자가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이쪽 동네에 사는 남자분하고 인사 나누는 건 첨이에요.”
“아니, 그럴 리가.”
“전에는 신촌에서 꽃집을 했어요. 이곳으로 옮긴 지 두 달밖에 안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첫 남자군요.”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가게를 나가다가 머리를 돌려 정현주를 보았다.
“내일 저녁에 시간 있습니까?”
이건 내일 물어볼 작정이었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자 현주가 눈웃음을 쳤다.
“맛있는 거 사 주시겠어요?”
“그러죠. 그럼 꽃은 세 시에 가지러 사람을 보낼 테니까
우린 7시에 만나는 게 어떻습니까?”
“좋아요.”
“그럼, 장소는 어디로 할까요?”
“전 서울이 나아요. 신촌 쪽에서.”
“좋습니다. 서교동 서울호텔 커피숍에서.”
그야말로 일사불란한 소통이었으므로 조철봉은 날아갈 것 같은 컨디션이 되었다.
현주가 가게 밖으로 조철봉을 따라 나왔다.
환하게 밝은 표정이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현주가 웃음 띤 얼굴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꽃 선물 잘 만들어 드릴게요.”
“잘 부탁합니다.”
따라서 머리를 숙인 조철봉은 그 꽃을 여직원 모두에게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만들면 된다.
(1398) 불꽃-4
조철봉에게 여자만큼 생의 활력을 일으키는 요인은 없다.
여자는 곧 조철봉에게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여자라고 제법 은근한 표현을 썼지만 솔직히 말하면 섹스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부질없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던가?
조철봉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는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로 이루어졌다.
좋게 말하면 서로 이용하고 산다.
내놓을 것이 없는데도 받기만 한다면 그 관계는 비상식, 비정상이다.
믿음, 신의, 약속, 다 그렇다. 일방적일 수가 없다.
조철봉에게는 사랑도 거래다.
서로 첫눈에 반한 그 다음 순간부터 내놓고 받는 것이다.
이제 조철봉은 정현주에게 50만원짜리 꽃주문으로 환심을 샀다.
정현주는 거래용이건 전시용이건 간에 자신이 내놓을 자산이 무엇인지를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당당하게 빈손으로 만나러 나올 것이다.
홍대 근처의 음식점, 찻집, 노래방, 카페는 저녁이 되면서부터 활기에 찬다.
낮에는 그저그런 거리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정현주는 7시5분에 커피숍으로 들어섰는데 얼굴이 환했다.
흰색 반팔 셔츠에 밝은색 바지를 입었고 샌들을 신은 차림이었다.
“꽃 받으셨죠?”
앞쪽 자리에 앉은 현주가 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도 화장기가 없는 얼굴이었지만 입술의 윤기가 짙었다.
옅게 살색 루주를 바른 것이다.
“예. 잘 받았습니다. 직원들이 아주 좋아했어요.”
그건 사실이다.
난데없는 꽃 선물을 받은 여직원들에게 조철봉은 한랜드의 호텔 준공 기념으로
나눠준 것이라고 설명하도록 했다.
한랜드에서는 열흘에 한 번꼴로 호텔이 오픈되는 중이다.
차를 시키고 나서 현주가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기다렸다.
아침부터 박경택을 시켜 현주 뒷조사를 한 것이다.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졌지만
그 다음부터는 철저한 계산과 정보를 바탕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시간 소모를 덜고 실수를 방지한다.
“저기, 결혼 하셨어요?”
현주가 묻자 조철봉은 금방 머리를 끄덕였다.
“예. 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하나 있지요.”
“그러세요.”
조철봉은 현주의 표정이 담담한 것에 주목했다.
꾸민 표정이 아니다.
그때 조철봉이 물었다.
“현주씨도 한 번 하셨다고요?”
그러면서 빙긋 웃어 보이고 계속했다.
“아이는?”
“있어요. 다섯 살짜리.”
“그럼?”
“애 아빠가 키우고 있죠.”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현주가 다시 웃었다.
“그런 조건으로 이혼했으니까요.”
그때 종업원이 차를 날라 왔으므로 둘은 말을 멈췄다.
맞다.
그러나 현주의 전남편이 재혼하고 다시 애를 둘이나 낳아서
전처인 현주의 자식은 지금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석 달쯤 전에 현주의 딸 미라는 청주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한테 보내졌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지난달 강릉의 고모한테로 보내졌다.
조철봉은 현주가 웃음 띤 얼굴로 커피잔을 드는 것을 보았다.
오후 5시쯤에 박경택이 말했다.
“정현주씨는 강릉 고모한테 가서 딸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답니다.
울면서 사흘 동안이나 사정을 했다고 동네 사람들한테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고모 되는 여자가 오천을 가져와야 애를 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도 저렇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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