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02. 불꽃(3)

오늘의 쉼터 2014. 8. 28. 08:37

402. 불꽃(3)

 

 

(1399) 불꽃-5

 

 

 

 

 

정현주는 색다른 분위기의 여자였다.

 

꽃집 안에서 만났지만 그때 당장은 목구멍이 울리지 않았다가 나중에 선명하게

 

눈앞에 떠오른 여자. 꽃향기 속에서 슬쩍 본 젖가슴 위쪽. 물론 분위기가 일조를 한 것도

 

있을 것이다. 배경이 좋았으니까.

 

또한 모처럼 드문 상황이었기도 했다.

 

조철봉이 현주를 데려간 곳은 근처의 한정식집이었다.

“소문만 들었지 첨 와봐요.”

예약된 방에 앉았을 때 현주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현주의 신촌 꽃집은 장사가 안 되어서 5개월이나 밀린 월세를 전세금에서 공제하고

 

겨우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현주의 일산 꽃집 전세금은 2천. 장소가 별로 좋지 않아서 권리금도 없다.

 

조철봉은 현주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조금 씁쓸해졌다.

 

정말 이 여자는 밝은 얼굴이 곱다.

 

그런데 자식까지 떼어놓고 이혼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약점을 잡힌 듯이 전남편 식구들한테 쩔쩔매며 애도 못 찾고 있는 이유는 뭘까?

 

지금 경택이 그것을 조사중이었다.

 

문이 열리면서 종업원 둘이서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넓은 상에 놓인 반찬이 수십가지였고 국과 찌개도 세종류나 된다.

“맛있겠다.”

현주가 눈을 반짝이면서 입맛까지 다셨다.

 

나이는 32세, 명문인 국제여대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간 언니 하나뿐이다.

 

부모는 현주가 고등학교 일학년때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한국에는 가까운 친척이 없다.

“저는요….”

찬을 하나씩 집어 맛을 보면서 현주가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뭔가 한 건 걸리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다렸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처음 기회를 만들어 주신 거죠.”

놀란 조철봉은 씹던 음식이 잘못 넘어가 하마터면 재채기를 할 뻔했다.

 

정색한 조철봉의 시선을 받고 현주가 말을 이었다.

“근데 꽃집 분위기가 좋은데도 건수가 별로예요.

 

남자 손님이 드문데다 가끔 오는 남자도 제 애인한테 줄 꽃을 사려고 오는 것이니까요.”

“저런.”

겨우 그렇게만 맞장구를 친 조철봉이 다음 말을 어떻게 이을지 몰라 잠자코 기다렸다.

 

말이 많으면 분명히 실수를 하게 된다.

 

이것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말씀이다.

 

그때 현주가 말을 이었다.

“남자하고 데이트하고 싶었어요.

 

맛있는 것도 먹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술도 마시고….”

그리고 섹스. 침을 삼킨 조철봉이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현주가 젓가락으로

 

찬을 집어 먹었으므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러나 이번 작업은 예상보다 쉽게 진행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꽃집 여자 정현주는 아직까지 조금 베일에 덮인 여자였다.

 

안개 속에 흐릿하게 몸체 윤곽만 보이는 상황 같았다.

 

작게 헛기침을 한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아이는 전남편이 키우고 있다고 했지요? 자주 만납니까?”

가족사는 꺼내지 않는 것이 작업의 정석이었지만 예외는 있다.

 

피하려는 부분을 긁어주면 와락 내놓는 경우가 많다.

 

그러자 현주가 시선을 들었다.

 

여전히 웃음 띤 얼굴이다.

“네, 자주 만나요. 지난주에도 만나고 왔어요.”

“…….”

“애가 예뻐요.”

그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을 돌렸다.

 

사흘동안 애 돌려달라고 울며불며 사정을 했다는 현주다. 

 

 

 

 

(1400) 불꽃-6

 

 

 

 

식사와 함께 소주를 두병 마셨는데 정현주가 한병은 비웠다.

 

그러나 식당을 나왔을 때 현주의 얼굴은 말짱했다.

“어디로 가요?”

하면서 바짝 다가선 현주한테서 꽃 향기가 났다.

 

향수 냄새겠지만 조철봉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순간 조철봉은 현주를 데리고 시외로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자 저녁 9시10분,

 

세시간이면 한국 어디든 간다.

 

머리를 든 조철봉이 현주를 보았다.

“우리 멀리 갈까요?”

“어디로요?”

“그냥 멀리.”

“괜찮으세요?”

그순간 조철봉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뱉었다.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이쪽 걱정을 해준다는 것은 일단 그쪽은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난 괜찮습니다.”

그러자 현주가 머리를 끄덕였다.

“저도 문제 없어요.

 

저녁 때 나오면서 꽃에 물도 다 주었으니까.

 

이틀은 안줘도 돼요.

 

참, 장미 20송이를 내일 포장 하려고 책상위에 그냥 두었는데.”

“내가 물어드리지.”

“한송이당 5백원씩만 주세요. 그럼.”

“만원이네.”

지갑을 꺼낸 조철봉이 정색한채로 만원권 한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나때문에 꽃이 시들텐데 물어줘야지.”

현주도 정색하고 돈을 받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식당 옆쪽 길에서 둘은 마주보고 서 있었는데 가로등 빛에 반사된 현주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근데 어디로 가요.”

“강릉.”

그순간 조철봉은 현주의 눈동자가 떨린 것처럼 느껴졌다.

 

흔들린 것이 떨린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반짝이는 눈동자가 진동을 했다.

“강릉?”

현주가 약한 목소리로 되물었는데 얼굴도 굳어진것 같았다.

“응, 강릉.”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현주를 똑바로 보았다.

 

강릉에는 현주의 딸 미라가 고모집에 있다.

 

무슨일로 약점이 잡혔는지 5천만원을 내야 애를 놓아준다는 것이다.

 

그 소문이 동네에 팍 퍼졌다고 했다.

 

현주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느긋하게 말했다.

“바닷가 호텔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걸 봅시다.”

이런 말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던 조철봉이라 조금 말투가 어색했다.

 

그러나 인간은 다 제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한다.

 

현주가 어색하고 촌스러운 그 작업을 순진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좋아요.”

결심한듯 정색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인 현주가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벌써 아홉신데, 어떻게 가죠?”

“차는 얼마든지.”

운전사가 딸린 벤츠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조철봉은 콜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택시가 오는 사이에 차를 집에 보내고는 현주하고 조금 떨어져서 집에다 전화를 했다.

 

먼저 이은지에게 갑자기 출장을 가야될 일이 있다면서 거짓말을 했고 다음은 영일이,

 

마지막에 어머니를 바꿔서 매듭을 지었다.

 

통화가 끝난지 2분쯤 되었을 때 콜택시가 다가와 섰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조철봉이 심호흡을 하고나서 현주를 보았다.

“강릉은 물론 가보셨겠죠?”

그러고는 손을 뻗쳐 현주의 손을 쥐었다.

 

현주는 가만 있었다.

“동해안 구경 안한 한국사람 있으려고.”

혼잣소리처럼 조철봉이 말하고는 의자에 등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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