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39

오늘의 쉼터 2014. 8. 28. 07:59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39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김관우의 부하인 듯싶은 젊은이가 정중하게 두목에게 아뢰었다.

“단게 형님이 오셨습니다.”

“뭐? 단게 형님이? 오지 않겠다 하더니.”

김관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단게는 심상호와 마찬가지로 김관우의 직계는 아니었다.

그는 외지로 떠돌아다녔던 관계로 김관우보다 약했지만,

그런 대로 독자적인 세력을 갖고 행세를 하면서 김관우로부터 선배 대접을 받아왔었다.

사실 김관우는 김두한과 함께 하는 자리에 심상호와 단게를 똑같이 초대하기 위해 부하를

보냈었다.

아무리 조직은 다르다 하더라도,

서울패와 맞서기 위해서는 인천패가 공동의 보조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인천패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도 단게의 존재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게는 한마디로 거절하더라는 것이다.

‘아니, 김두한이 왔다구? 왔으면 왔지,

내가 무엇 때문에 가? 곰보딱지의 낯짝을 보러 가나?

만나고 싶으면 제놈이 날 찾아오라고 해.’

심부름을 갔던 김관우의 부하는 머쓱해져서 돌아와 두목에게 자세히 옮겨 보고했다.

단게의 칼날 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김관우는 더 이상 탓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잠자코 혀를 찼을 뿐이다.

“쳇!”

그런데, 그러한 단게가 무슨 변덕을 일으켜서인지 뒤늦게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밖이 떠들썩한 것을 보니, 혼자가 아닌 듯싶었다.

아마도 그 역시 자신의 위세를 떨치기 위해,

아니면 자신의 신변 보호를 위해 몇몇 굵직한 부하들을 거느리고 온 모양이었다.

“어서 모시고 들어와.”

김관우는 그 커다란 몸집이 무겁다는 듯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였다.

김관우의 부하가 열어놓은 문을 보다 활짝 열어젖히면서 모습을 나타낸 것은

과연 눈썹 위에서부터 눈두덩 아래까지 칼자국이 나 있는 험상스런 얼굴의,

누가 소개를 하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단게였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눈의 칼자국이 말해 주는 것처럼 담력이 있고

상당한 독종일 듯싶었다.

“김두한이시오? 나, 단게 윤봉산이오.”

들어서자마자 그는 활짝 웃으면서 악수를 청하는 손을 김두한의 코앞으로 디밀었다.

김두한은 아직 앉은 채였다.

그는 앉은 채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단게가 생각보다 담력이 있는 사나이며

또한 상당히 건방진 놈이라고도 생각했다.

술김이기도 했지만 다소 불쾌한 느낌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나 웃는 낯에 침을 뱉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김두한은 마지못한 듯 내민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다가 단게에 뒤이어 나타난 두 사나이에 김두한은 정말 소스라치듯 놀라고 말았다.

“두한아, 너 이럴 수가 있냐? 우리를 떼어버리고 너희끼리만 와?”

잔뜩 부어올라 씩씩거리는 것은 다름 아닌 망치였던 것이다.

망치뿐이 아니었다.

김무옥까지 어슬렁거리듯 하며 그 거구의 몸집을 방 안으로 디민 것이다.

 

김두한은 아직껏 단게와 악수하는 손을 풀지 않았다.

하지만 손은 단게의 손을 맞잡고 있었지만,

시선은 망치와 김무옥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그 작은 눈이 휘둥그레질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들이 단게와 함께 나타날 수 있는 수수께끼를 풀려야 풀 길이 없었던 것이다.

“두한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단게와 망치의 뒤를 이어 들어선 김무옥은 두목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지도 못하고

장내를 휘둘러볼 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 묻고 싶은 것은 바로 나야.

도대체 너희들 어떻게 알고 여기에 나타났지?”

김두한은 여느 때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실제로 망치나 김무옥을 따돌리듯 하고 인천에 오게 된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물음에 대답한 것은 망치도 김무옥도 아닌 단게였다.

“세상은 넓고도 좁아서 말요.

나와 무옥이와는 봉천(奉天)서부터 친구란 말요.”

“봉천서부터?”

김두한은 반문하듯 되받으면서 마음에 짚이는 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김무옥은 바람 같은 사나이였다.

동에서 번쩍하는가 하면 서에서 불쑥 나타나는 홍길동 같아서

그는 툭하면 서울에서 모습을 감추기를 잘해 왔다.

고향인 광주로 자주 내려가기도 했지만, 만주로도 곧잘 날았다.

그가 김두한과 맞붙게 된 결과로 그의 부하가 되기 전,

많은 날을 봉천에서 보냈었다고 한다.

그가 김두한패가 되고 얼마 후,

김두한이 심한 열병을 앓게 된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의 약값을 구해 오겠다면서 훌쩍 만주로 떠난 일이 있었다.

바로 이때 김무옥과 단게는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주먹패끼리의 인연이 싸움에서부터 맺어지기가 흔한 것처럼,

이들의 인연도 싸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김무옥은 서울에서 김두한의 부하가 되기 전 한때 봉천의 유곽촌인 서탑(西塔)을

주름잡고 날린 일이 있었다.

김두한의 약값을 구하겠다고 봉천을 찾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그러나 그가 다시 봉천을 찾았을 때는,

그가 비어 있는 동안 상당한 세력을 다름 아닌 단게가 잡고 있었다.

단게는 원래 몸집이 그리 크지 않은 대신 단검을 잘 쓰는 독종으로 유명했다.

단게가 서탑 유곽촌을 완전 장악하여 기세를 올리려는 참에 난데없이

김무옥이 나타나서 옛 부하를 찾아 기세를 올리고 있지 아니한가.

그것은 단게의 눈으로 보면 건방지기 짝이 없는 행패일 수밖에 없었고,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김무옥의 기를 꺾고 싶었고,

그를 다시 서울로 내쫓고 싶었다.

그러나 김무옥은 만만치 않았다.

아니, 힘으로는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단게는 술집에서 막 나오는 골목길에서

김무옥의 등뒤에다 대고 단검을 꽂았던 것이다.

김무옥은 등에 칼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잠깐 비틀거리기만 하였을 뿐 노한 사자가 되어 단게에게 역습을 가하려는 것이었다.

“너 죽었다, 알지? 네 칼에 내가 죽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는 네가 죽을 차례야.”

잠시 비틀거렸을 뿐,

김무옥은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단게는 힘으로는 도저히 김무옥에게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남았다.

(붙잡히면 죽는다.)

어두운 그림자가 번갯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죽고 싶지 않은 것 또한 그의 본능이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반대로 그를 죽이든가,

항복을 받아내든가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여의치 않은 것을 그는 또한 알았다.

그렇다면, 튀는 것이 상책이었다. 삼십육계(三十六計)도 줄행랑이 상책이라지 않았는가.

그는 뛰었다. 뛰는 데에도 그는 바람이었다.

“너 찌라시(도망친다는 뜻의 속어) 놓냐? 하지만 글렀어!

저승 끝까지 쫓아가 죽이고 말 테니까…….”

어둠 속을 향하여 쥐어짜듯 중얼거린 김무옥은 단게가 사라져간 쪽을 한참 동안

노려보고 섰다가, 새삼 생각해 내기라도 한 것처럼 걷기 시작했다.

등에 뻐근한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어느 만큼 찔렸는지 알지 못했다.

아직껏 단검이 그대로 찔린 상태로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칼이 찔린 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라면,

상당히 깊이 찔린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비틀거림이 없는 확실한 걸음으로 방금 전까지

술을 마셨던 술집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술집에는 아직까지도 몇몇의 주먹패 친구들이 남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들은 김무옥이 되돌아 들어섰어도 전혀 영문을 알지 못했다.

얼굴이 다소 창백해 보이기는 했지만 칼은 등뒤에 꽂혀 있었고,

피도 등뒤에서 흐르고 있었으니까.

“단게에게 당했어!”

김무옥은 동료 친구들의 얼굴을 보자

공연히 눈물이라도 왈칵 쏟을 것 같은 비통한 기분이 되어,

바로 문 앞에 서서 뒤돌아 칼에 찔린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등뒤에는 표적판에 꽂힌 화살처럼,

아직도 단검이 꽂힌 채로 있었고,

그 주변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오호…….”

“이게, 이게 무슨 짓이지?”

피를 보면 대체로 누구나 흥분하는 법이다.

술잔을 내던지다시피 하고 친구들이 우르르 김무옥의 주변으로 달려들었다.

누군가가 등에 꽂힌 채로 있는 칼을 뽑으려는 듯 허둥거리면서 다가들었다.

그러나 침착함을 잃지 않은 것은 오히려 김무옥이었다.

“그냥 놔둬! 이대로 날 병원으로 데려가.”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함부로 칼을 뽑는 것이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길로 많은 동료들에 에워싸여 병원으로 급행했음은 물론이었다.

“무옥이가 당했어! 단게가 비겁하게 등뒤에서 찔렀다.”

소문은 삽시간에 봉천의 조선 주먹패 사이에 퍼져갔고,

그 말이 단게의 귀에까지 전달됐음은 물론이었다.

이날 밤, 김무옥은 정말 잘 잤다.

수술 후의 마취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만 고통을 모르고 잘 잔 것이다.

그러나 단게는 이와는 정반대였다.

원래 맞은 자는 다리를 뻗고 자지만 때린 자는 다리를 웅크리고 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우선 단게는 후회가 되었다.

김무옥의 기를 꺾기 위해,

그리고 그를 봉천 바닥에서 내몰기 위해 찔렀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등뒤에서 찔렀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비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나쁘다.

김무옥 자신이 칼이 등에 꽂힌 채 악마처럼 중얼거리지 않았는가.

‘너, 죽었다! 알지? 네 칼에 내가 죽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는 네가 죽을 차례야!’

피를 토하듯 내뱉은 말이 아직껏 쟁쟁하게 들리는 듯싶었다.

생각만 해도 등이 오싹해지는 일이었다.

김무옥이라는 사람 됨됨이만 보아도 그것이 빈말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틀림없이 복수를 할 것이다.

아마도 그는 복수를 하지 않고는 봉천 땅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고향 인천으로 도망을 갈까?

하지만 그는 필시 인천으로 뒤쫓아올 것이다.

만주는 고사하고, 중국 땅으로 피신을 한다 해도 그는 기어이 뒤쫓아올 것이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집요한 놈 같으니라구!)

그는 마치 당장 쫓기고 있는 몸이 되기나 한 것처럼 투덜거렸다.

그러니 잠을 이루려야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것인가.

다시 도전장을 내어 정식으로 대결을 한다?

가망이 없는 일이었다. 칼을 쓰고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는데,

무슨 힘으로 그를 쓰러뜨릴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봉천 바닥에서 도망칠 수도 없고, 언제까지 어디로 피해 다닌단 말인가.

(그렇다면?)

길은 한 가지밖에 없을 듯싶었다.

떳떳하게 사과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해의 길을 찾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단게는 심복 부하 몇을 거느리고 김무옥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김무옥은 마취 기운이 풀려 신음을 하고 있었다.

상처 부위가 등뒤여서 바로 눕지도 못하고 엎드려 있었다.

때문에 그는 단게가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것을 모르고 있었다.

“무옥 형, 내가 잘못했소! 정말 미안하게 됐소!”

단게의 사과는 진정이었다.

그러나 그 사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김무옥이 아니었다.

단게의 목소리를 듣고 흠칫 놀라며, 자벌레처럼 고개를 치켜들며 돌아다보았다.

“흥, 미안하긴! 내가 살아 있어서 미안하군.

다음은 네가 죽을 차례야! 그게 싫으면 어때, 다시 한 번 찔러보지?”

그는 칼 받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치켜든 고개를 베개 위로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