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38

오늘의 쉼터 2014. 8. 28. 07:58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38  

 

 

조탕에서 가볍게 목욕을 끝낸 주먹패들은 마침 바닷물이 차서,

바다 위에 두둥실 떠 있는 것 같은 요정 용궁각에서 대낮부터 술상을 벌였다.

넓은 연회석은 덩치 큰 주먹패들로 메워지는 듯했다.

그들이 목욕을 하는 사이, 보다 많은 주먹패들이 모여든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김관우가 부하들을 시켜 불러들인 것이다.

사실, 김관우는 일찍부터 김두한을 만나보고 싶었고, 친하게 사귀고 싶었다.

김두한이 얼마나 무서운 실력자이며,

그의 세력이 얼마나 크게 팽창해 있는가도 알고 있었다.

인천패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서울의 김두한패와는 맞설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울로 직접 찾아가서 김두한을 만나지 않았던 것은 그도 인천패의 두목으로서의

체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찾아가 인사를 드린다는 것은,

바로 그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직계 부하가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수시로 상납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인천은 서울에 인접해 있고,

서울패를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으면서도,

먼저 찾아가 머리를 숙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 터에, 김두한이 제 발로 먼저 인천을 찾아온 것이다.

비록 자신의 오른팔인 악어가 김두한패 하나에게 얻어터져 망신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이 기회에 김두한과 깊게 인연을 맺고 싶었다.

그는 김두한을 융숭하게 대접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속셈은 김두한에게 처음부터 기가 죽고 싶지 않았다.

인천패의 만만치 않은 세력을 과시하고도 싶었다.

굵직굵직한 부하들을 모두 불러들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개중에서 자신의 직계도 아니며,

오히려 대항 세력이라 할 심상호까지 초대한 것도 자신의 실력 과시인 셈이었다.

김관우는 자신의 수하들을 모두 김두한에게 인사를 시켰다.

심상호며, 그 밖의 몇몇 거물들은 그저 악수를 청하는 손을 내밀었으나

대개는 큰 절로 김두한에게 인사를 드렸다.

“월미도를 주름잡고 있는 구로네꼬로, 대단한 놈이지요.”

김관우는 다른 부하와는 달리 구로네꼬를 직접 소개했다.

김두한은 흘끗 구로네꼬 쪽을 바라보았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햇볕에 타서 적동색으로 이글거리는 몸매며,

번뜩이는 눈빛이 단단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김두한은 그저 그쯤 생각하고 대수로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구로네꼬의 색다른 인사에 김두한은 내심 의아함을 느꼈다.

일본놈처럼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짚고 머리를 깊숙이 숙이며,

또한 일본말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요로시꾸(잘 부탁합니다)!”

김두한은 일본말의 인사가 비위에 거슬리기는 했다.

그러나 ‘국어 상용(國語常用)’이라고 일본말을 강요하는 시절이어서,

크게 탓할 마음도 없었다.

“이놈은 하룻밤에 열 번을 하지 않으면 코피를 흘리는 무서운 놈이랍니다.”

 

김관우의 말에 인천패가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김두한과 종로꼬마 등 서울패는 김관우의 말뜻도,

인천패의 폭소의 뜻도 얼른 머리에 와닿지 않았다.

구로네꼬가 하루 열 번쯤 싸움을 하고,

그 때문에 코피가 터지지 않는 날이 없다는 말뜻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글쎄. 이놈은 밤마다 씹을 열 번쯤 하지 않으면,
코피를 흘린다니까요.

하면이 아니라 안 하면 그렇다니까요, 허헛!”

김관우는 말을 점잖게 돌릴 것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원색적으로 내뱉고는 껄껄 웃었다.

“열 번?”

김두한은 어이없다는 듯 구로네꼬를 바라보았다.

구로네꼬는 여전히 일본 사람처럼 무릎을 꿇고,

어색해하거나 민망해하는 기색도 없이 정색을 하고 있었다.

김두한 자신도 하룻밤에 열 번의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한 번뿐의 경험인 것이다.

자기에게 최초로 성을 일깨워준 남순옥과 더불어였다.

그녀는 아침에 횟수만큼의 계란은 먹어야 한다며 한 꾸러미가 넘는

달걀을 아침상에 올려놓았었다.

하지만 매일 밤이라니, 그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김두한은 술자리의 여담이 흔히 그러한 것처럼 우스갯소리로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려니 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매일 밤 열 번씩을 견뎌낼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화개동(花開洞: 仙花洞)의 유곽촌은 말할 것 없이 시끼시마(敷島)의 일본 유곽까지,

매일 밤 여자를 바꿔서 자지만 이제는 유곽촌의 여자도 동이 났단 말예요.”

이제 김관우는 얼굴에 웃음기마저 거두었다.

웃음기는커녕 오히려 사뭇 진지해 뵈는 표정이었다.

김두한은 화제 자체도 이색적이어서 흥미가 있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야기 속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유곽촌 여자들도 어쩌다 한두 번의 일이지,

매일 밤 열 번씩 올라타면 누가 좋다 하고, 누가 견뎌냅니까?

이제 이놈이 나타나기만 하면 유곽촌 계집년들도 질색을 하고 도망을 간다니까요.”

“허어!”

김두한은 물색없는 감탄을 할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그짓을 못 해서 매일 아침 코피를 흘린다니까요.”

“허어!”

“그렇다고 매일 아침 코피 흘리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도 없고,

어떻습니까?

서울은 바닥도 넓고, 신마찌에는 여자도 많으니……,

매일 밤 열 번을 견뎌낼 만한 여자를 중매해 주든지,

서울 신마찌로 진출할 수 있게끔 좀 도와주시오!”

“아니, 뭐 나더러 뚜쟁이가 돼라 이거요? 헛헛헛!”

김두한은 기가 차서 웃으며, 빈 술잔을 구로네꼬의 앞으로 내밀며 말하는 것이었다.

“매일 밤 열 번씩! 놀랐다기보다 존경하는 뜻으로 한잔!”


그러나 구로네꼬는 김두한이 내민 술잔을 받지 않았다.

“아, 아닙니다. 마실 줄 모릅니다.”

펄쩍 뛰듯 하고, 두 손을 내젓는 것이었다.

허둥거리는 듯한 말투가,

조선말이 서투른 일본 사람의 발음만 같았다.

“이놈은 술도 담배도 할 줄 몰라요. 아는 것은 ×과 싸움뿐이라니까요.”

광대뼈가 나오고 부리부리한 눈에 광채마저 형형한 김관우는

원색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면서 얼굴에 어색해하는 웃음기조차 띠지 않았다.

“허어! ×과 싸움뿐이라!”

김두한은 물색없는 감탄만 연거푸 할 뿐이었다.

“하지만 뭐 음양곽(淫羊藿)이라나 뭐라나,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라는 이상한 풀잎으로 달인 다주(茶酒)만은 입에 댄답디다.”

“뭐, 음양곽? 그걸 마시면 하룻밤에 열 번이 거뜬하단 말요?”

“긴 상, 하루 열 번, 그거 부러워할 게 못 된답니다.”

김관우나 구로네꼬는 전혀 웃지를 않았으나,

다른 인천패들이 또다시 왁자하게 폭소를 터뜨렸다.

“염소가 그 이상한 풀잎을 뜯어 먹고 하루 백합(百合)을 이루었다 해서,

그 풀로 담근 술을 음양곽이라 한다는데,

이놈은 그 술 이외에는 목으로 넘기기만 해도 토해 버린다니까요.”

“백합은 그만두고, 아니 열 번도 그만두고, 하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그 신기한 술 한잔 마셔봤으면.”

이번에는 종로꼬마가 흥미를 느껴 화제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서요. 부러워할 게 못 된다니까요. 그뿐인 줄 아시오?

이놈은 쌀밥은 입에 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앉은자리에서 돼지 비계를 날것으로 소금만 찍어 두 근씩 거뜬히 처분한단 말요.”

“돼지 비계를 날것으로?”

“뭐, 소금만 찍고?”

너무 놀라서 김두한과 종로꼬마가 똑같이 괴성을 질렀다.

“돼지 비계뿐인 줄 아시오? 개고기도 양념 없이 날것으로만 먹고,

닭고기도 닭다리의 발가락만을 뼈째 다져서 날것으로만 먹는다니까요.”

“거짓말.”

김두한은 도저히 사실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좌중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을,

어리석게 정색을 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만 같아 도리어 쑥스러워졌다.

“거짓말이라니! 그러니까 하룻밤에 열 번을 할 수 있지.

열 번을 하지 않으면 코피를 흘릴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루 종일 풀이 죽어 있단 말예요.

어젯밤에는 굶어서…… 허헛!”

김관우는 비로소 너털거렸다.

김두한과 종로꼬마는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구로네꼬를 정말 경이에 찬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열 번을 해야만이 기운이 나서 싸움도 펄펄 날듯이 잘하지만,

매일 밤 무슨 수로 열 번씩 할 수 있단 말요? 이를 당해 낼 여자도 없지만,

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서 한번 경험한 여자는 아예 질색을 하고

다시 다가가려 하지도 않는단 말요.

그러니까, 바닥 넓은 서울에, 이에 견뎌낼 만한 여자가 있을까 하고

중신 좀 서달라는 게지. 헛헛헛.”

김두한은 비로소 좀 납득이 가는 듯싶었다.
 
하지만 그는 하루 열 번은 싸움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주먹패는 더러 알고 있었지만,

하룻밤에 열 번을 견뎌내는 여자에 대해서는 캄캄할밖에 없었다.

하긴, 명월관에 한번 붙기만 하면 남자가 죽는다는 무서운 여자가 있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었다.

(그 여자쯤이면 견뎌낼 수 있을까? 남자가 죽든지 여자가 죽든지 간에…….)

문득 그런 생각을 굴리면서, 김두한은 자기도 모르게 불쑥 말해 버리고 말았다.

“좋소이다. 내 어디 뚜쟁이 노릇 한번 해보지.”

기세 좋게 장담하듯 말했으나 어떤 뚜렷한 복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한 힘을 갖고 있는 구로네꼬에 탄복한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서울은 넓고 크다.

신마찌를 위시해서 유곽촌도 많고, 창녀며 은근짜(隱君子)도 많다.

개중에는 구로네꼬 같은 이상 체질, 특수 체질의 여자들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자가 있으면, 그러한 여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설령 그러한 여자가 없다면, 하루씩 번갈아 여자를 바꾸어주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신마찌에서 노는 잔잔바라바라 같은 패거리에 수소문하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김두한이 장담하듯 한마디 하자,

방 안에 일제히 환성이 터졌다.

“고맙소이다. 이제 이놈이 활기를 되찾을 것 같소이다. 핫핫.”

김관우는 마치 자기 일이기나 한 것처럼 헌걸차게 웃어 젖혔다.

아닌게 아니라 시무룩하게 풀이 죽어 있었던 구로네꼬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 모양이 우스워서, 김두한도 종로꼬마도, 머리 빠진 개고기도 소리를 모아 웃었다.

“그럼 이제 멀리 서울에서 찾아오신 구로네꼬의 중신애비와 매일 밤 장가를 갈 수 있게 된

구로네꼬의 앞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우리 기분 좋게 한잔하십시다.”

김관우가 잔을 높이 쳐들었다.

김두한도 종로꼬마도 머리 빠진 개고기도 술잔을 치켜들었고 좌중의

인천패 모두가 일제히 잔을 들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김두한은 큰 충돌 없이 인천패거리를 그의 그늘 아래로 넣게 된 셈이며,

김관우는 먼저 서울로 찾아가 김두한에게 고개를 수그리는 일 없이

그와 접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래 주먹패들은 성격이 단순하다. 한번 손이 닿기까지가 어렵지,

한번 인연이 맺어지면 이내 곁을 주고 가슴을 열어준다.

그것이 주먹패의 생리이며, 이들만이 갖고 있는 미풍양속인 셈이었다.

이들은 서로 권하고 서로 작(酌)하며 도연히 취해 갔다.

낮술이어서 다소 빨리 취하는 듯싶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이었다.

밖에서 한 사람 목소리 같지 않은 여럿의 목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

김두한은 어쩐지 그 소리가 귀에 익은 듯해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