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34

오늘의 쉼터 2014. 8. 28. 07:55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34  

 

 

결국, 김두한과 종로꼬마를 따라나선 것은 우연히 곁에 있었던 머리 빠진 개고기뿐이었다.

김두한의 성미가 급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벌써 인천을 향해 나서는 것에 종로꼬마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 빠진 개고기는 종로꼬마 자신의 직계 심복으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충직한 부하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돌격대원은 아닌 것이다.

김두한은 돌격대원도 아닌 머리 빠진 개고기가 줄레줄레 따라나서고 있는데도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금 우미관 골목 안으로 사라진 돌격대원인 망치나 문영철을 불러 세우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부평의 위장 방공호를 살피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닌,

순전히 월미도로 놀러 가기 위해서인 것일까.

그것은 더욱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순전히 놀러 가기 위해 가는 것이라면 더욱 친근한 망치며 문영철·김무옥 등을 몰고

가야 할 것이 아닌가.

종로꼬마는 김두한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10년 전, 어렸던 시절의 복수를 위해 가는 것일까.

‘온다! 온다! 다시 인천에 온다!’

눈물도 없이 흐느끼듯 울부짖었던 당시의 김두한의 목소리며 험악했던 표정이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런 채로 종로꼬마는 김두한을 따랐다.

전차를 타고 경성역으로 나갔다.

역전 광장에서 우연이라고 할 것도 없이 꾸벅 인사를 하는 똘마니 하나를 만났다.

서울 장안, 어디라 할 것 없이 널려 있느니 꼬붕들이었으니까.

“어, 너 잘 만났다. 너 조양 여관으로 가서 나, 박사와 함께 인천엘 잠깐 다녀오겠다고 일러.

망치 형님이든 영철 형님에게든 말여.”

김두한은 똘마니에게 일렀다.

그는 잠시 종로 바닥을 비울 때도, 반드시 부하들에게 자기 소재를 일러두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똘마니 부하에게 자기 행방을 일러둘 수도 있겠으나,

미리부터 알리지 않고 우발적이기나 한 것처럼 서둘러 떠나는 것이 종로꼬마는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우리끼리만 가지? 모처럼 놀러 가는 건데?”

머리 빠진 개고기가 기차표를 끊으러 간 사이를 이용해서,

종로꼬마는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물었다.

“서울에도 얼마든지 있는 호떡 하나 먹으러 가는데 우우 거느리고 갈 것도 없지 않냐.

그땐, 뭐 애들과 여럿이서 떼지어 갔어? 단둘이만 갔지.”

김두한의 입가에 냉소와도 같은 야릇한 미소가 흘렀다.

종로꼬마는 비로소 김두한의 심중을 이해할 듯싶었다.

김두한은 지금 소년 시절의 억울했던 분풀이를 위해 인천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서울의 주먹계를 잡았다고 해서 작당을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10년 전의 똑같은 조건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머리 빠진 개고기가 딸려 있기는 했지만.

“지금, 인천을 잡고 있는 게 누구라 했지?”

 

김두한이 나란히 앉은 차 안에서 물었다.

인천을 잡고 있는 것이 누구냐 물은 것은 바로 두목이 누구냐고 물은 것이다.

“김관우.”

종로꼬마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음!”

김두한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별게 아냐.

인천 토박이로, 애관극장을 중심으로 잡고 있다더군.

그것도 말야, 쌍밤·악어 등 쓸 만한 꼬붕들을 두고 있어서…….”

“심상호는?”

김두한이 종로꼬마의 말을 가로막고 물었다.

“심상호? 모르겠는데?”

“심상호가 쓸 만한 그릇이라더군. 40관(貫) 거구에 역도와 씨름을 했다는데.”

“허어.”

종로꼬마는 물색없는 감탄을 했다.

그 자신이 모르고 있는 인천의 주먹패 사정을 김두한이 훤하게 알고 있는 듯싶어서였다.

사실, 김두한도 종로꼬마도 인천패에 대해서는,

흘러 들어온 얘기를 통해서만 들었지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인천패와 한 번도 만나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김두한에게 몹시 불쾌한 일이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김두한은 이제 시구문패와 뫄관패,

심지어 일본패인 하야시패까지를 영향권하에 둔 서울의 실질적 지배자인 두목이었다.

서울을 장악한 주먹패의 두목은 바로 전조선을 장악한 두목이나 다름없었다.

김두한이 직접 지방으로 내려가는 일은 없어도,

지방의 주먹패들이 서울로 올라와서 김두한에게 인사를 드리고,

금품의 상납도 했다.

전라도 광주의 걸물인 김무옥을 통해 광주·목포 등의 주먹패들도 상경을 하면

으레 김두한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항구 도시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함경도 청진이나 함흥, 원산의 주먹패,

평안도의 평양, 신의주의 주먹패, 심지어 만주나 상해,

일본에서 조선에 들르게 되는 야꾸자들까지 인사를 하러 오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서울의 옆구리에 붙어 있는 인천패들은 코빼기도 디밀지 않았다.

서울패가 인천으로 내려가지 않을 수는 있어도,

인천패가 서울에 발그림자도 들이지 않고,

외면을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필경 인천의 주먹패들도 알게 모르게 서울에 드나들 것이었다.

그런데도 인천패의 어느 누구도 아직껏 김두한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러

나타난 자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있겠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김두한은 소년 시절부터 지닌 원한도 있었지만,

인천에 대해서는 감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종로꼬마가 부평 조병창으로 나가게 되었고,

자주 인천을 내왕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로 하여금 인천의 사정을 살피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김두한은 종로꼬마보다도 더 자세하고 알고 있지 않은가.

바로 종로꼬마가 놀란 까닭이었다.

“심상호는 인물도 빼어나고 점잖은 데다가,

마음이 약해 보일 정도로 인정이 많아 아이들이 많이 따른다더군.”

김두한은 흐르는 차창 밖의 풍경을 내다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아는 바 없는 종로꼬마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김구범이라고도 있다더군.”

김두한은 또다시 불쑥 말했다.

종로꼬마는 그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저 놀란 얼굴로 김두한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받아 물었을 뿐이다.

“김구범?”

“응. 역도며 씨름을 했으며, 힘도 장사인 데다 대단한 미남이어서 기생 아씨들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많이 따른다더군. 헛헛헛.”

김두한은 너털거리고 웃었다.

종로꼬마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어차피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바꾸는, 고삐가 없는 화제인 것이다.

별로 뜻없이 마주 받아준 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김두한은 뜻밖으로 언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자못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이웃이 있는 기차 안이라는 것을 잊은 듯이.

“뭐, 날 닮았다구? 아서, 아서. 여자가 날 따르다니, 당치도 않지.

그런 소리 마. 그러다가 나 장갓길 막히면 어쩌려구?”

“뭐, 장가? 너도 장가가려구 하니?”

종로꼬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의 입에서 장가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그가 인천 사정에 훤해서 심상호며 김구범의 이름이 튀어나왔을 때보다도 더 놀라운 일이었다.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두한의 꽉 다문 입술이며 표정이 자못 진지했다.

“응, 나 아무래도 장가를 가야겠어.”

“그건 또 갑자기 무슨 새소리지?”

종로꼬마는 김두한의 말을 어디까지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장가를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벌써 지난 겨울부터였지.”

“겨울부터? 민자 아씨말고도 좋은 여자가 생겼냐?”

“민자가 조강지처로 집 안에 들어앉아 시할머니, 시어머니 모시고 차분하게 살림할 여자냐?”

“너 같은…… 아니 우리 같은 건달패가 차분하게 살림이나 할 여자 찾게 됐냐?”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요즘 할머니와 어머님의 고생이 말이 아니어서 말야.”

김두한은 잔뜩 찌푸린 표정이 심각하기조차 했다.

그제야 종로꼬마도 김두한의 심중을 납득했다.

할머니란 백야 김좌진 장군의 모친 이씨를 가리키며,

어머니란 김좌진 장군의 첫 번째 부인 오숙군 여사를 말하는 것을 종로꼬마도 알고 있었다.

김두한의 생모는 그의 나이 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조모와 큰어머니는 삼청동 꼬중박이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것까지

종로꼬마 이상욱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과 남편의 생사조차 모르는 백야 김좌진 장군의 모친 이씨와

그의 첫째 부인 오숙군 여사는 고부(姑婦)끼리 외롭디외롭게 살고 있었다.

그나마 삼청동의 오막살이 같은 집도 안동 김씨 문중에서 마련해 준 것이라 했다.

그러나 전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조선 민족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어 가면서

독립 투사 김좌진 장군에 대한 일경의 감시가 심해지자,

그나마 도움을 주던 안동 김씨 문중의 발길도 끊기고 말았다.

독립 지사의 가정을 돌보는 것을 꺼려 기웃거리지도 않게 된 것이다.

오직 김두한만이 찾았다.

하지만 그 역시 떠돌이 신세보다도 더 경황이 없는 나날을 보내는 주먹패의 두목이다.

삼청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찾아들어, 호주머니를 털고 오는 정도였다.

김두한은 주먹계의 두목 자리에 오르면서,

그 호주머니 안이 마르는 날이 없었어도,

워낙 씀씀이가 헤퍼 주머니의 돈이 금세 거덜이 나곤 했다.

때문에 할머니 댁에 들르게 되는 경우도 넉넉하게 도와드릴 겨를이 없었다.

그것이 항상 그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그날도 그는 언제나처럼 삼청 공원에서 새벽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라도 난 듯이 할머니 댁을 찾았다.

북악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이 무척이나 모진 겨울이었다.

마침 할머니가 마당에 있다가 손자를 맞았다.

물기 묻은 손으로 김두한의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두한아! 왜 그렇게 안 들렀냐?”

나무람일 수 없는 반가움에서 한 할머니의 말이었다.

김두한은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말이 고깝게 들려서가 아니었다.

주름 잡힌 할머니의 손이 섬뜩할 만큼 차가웠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얼음처럼 찬 물에 손을 담그고 빨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왈칵 눈물이라도 솟구칠 것 같았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어, 할머니가 손수 빨래를 하시다니…….”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

“어머님은?”

“끼니를 마련하기 위해 나갔겠지 뭐!”

김두한은 너무 측은하고 죄송해서,

할머니의 차가운 손을 자기의 두 손으로 꽉 잡아주며 할말을 잃었다.

“두한아, 너나 어서 장가를 들어야지.

네가 장가를 가야 할매가 빨래를 하지 않고 고생을 덜게 될까…….”

할머니가 한숨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제가, 제가 장가를 가면 고생을 덜하시게 될까요?”

김두한의 작은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이날 이후, 김두한은 실제로 장가를 가야겠다고 마음 한구석에 다짐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꼬마야! 나 같은 무식한 건달패에게 시할머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겠다고 시집올 여자가 있어야지, 헛헛.”

김두한은 손바닥만한 웃음을 터뜨렸으나 어쩔 수 없는 공허한 억지 웃음이었다.

“두한아, 넌 효자야, 효자.”

기차는 어느덧 부평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나 김두한은 부평에서 기차를 내리려 하지 않았다.

종로꼬마는 오히려 이를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김두한이 부평의 방공호 비밀 창고를 습격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서였다.

종로꼬마 자신도 또다시 진절머리 나는 공포 속으로 말려들어 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제 장가까지 가려고 마음먹고 있는 김두한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김두한의 ‘장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인천의 주먹패에 대해서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머리 빠진 개고기까지 끼어들어 세 사나이는 그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잡담을 늘어놓으면서 인천에 이르렀다.

그들은 상인천에서 기차를 내렸다.

소년 시절에 한 번 인천에 와본 일밖에 없는 김두한은 인천의 지리에 생소할밖에 없었다.

조병창에 근무하게 되면서, 트럭을 몰고 매일처럼 소년 형무소까지 들르게 된 종로꼬마도

다소 길이 눈에 익기는 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해온 터라 길에 자세할 수가 없었다.

뜻밖으로 머리 빠진 개고기가 지리에 밝았다.

한때 꽃잡이패(소매치기패)에 끼어들어 떠돌이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인천까지 발을 뻗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디로 모실깝쇼?”

머리 빠진 개고기가 왕두목 김두한의 기분을 살피듯이 하고 물었다.

그러나 김두한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묵묵부답이었다.

“뚱뚱이 호떡집을 아냐?”

종로꼬마가 물었다.

“아다마다요.”

김두한이 왕두목이라면,

종로꼬마는 머리 빠진 개고기의 직계 오야붕인 소두목이었다.

두 두목이 모르고 있는 것을 자기만이 알고 있다는 것에 신이 난 듯,

머리 빠진 개고기는 호기 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김두한은 머리를 저었다.

“호떡집은? 아침 먹은 게 꺼지기도 전에…….”

“그럼 월미도로 갈까?”

이번에는 종로꼬마가 대신 물었다.

하지만 김두한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씁쓰레한 소년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뚱뚱이 호떡집 골목을 찾는 것도 아니고,

월미도로 바람을 쐬러 가는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로 가자는 것일까.

“그럼, 어딜 가자는 거야?”

종로꼬마는 김두한의 눈치를 살피듯이,

그러나 다분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뭐, 김관우란 자가 잡고 있다는 애관극장 쪽으로.”

김두한은 길게 덧붙일 것도 없이 간결하게 말했다.

그 한마디로, 종로꼬마는 김두한의 의중을 살피고도 남았다.

김두한은 쇠뿔을 단김에 빼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소년 시절의 원한이 사무쳐 있는 인천을,

내친 김에 단숨에 장악하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일순, 종로꼬마는 소름이 돋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싸움꾼다운 본능적인 전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