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33

오늘의 쉼터 2014. 8. 28. 07:52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33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토요일이 되었다.

오전 근무에다 외출·외박이 허락되는 주말이 된 것이다.

종로꼬마는 날개라도 돋친 듯 서울로 달려갔다.

오래간만에 동료들과 어울려 회포도 풀고 싶었지만,

자기만 아는 비밀을 터뜨리고 싶어 입이 간지러워 못 견딜 지경이었다.

물론 부평의 군수 물자 저장소의 비밀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두한아, 두한아. 굉장한 소식이 있어.”

종로꼬마는 가찌도끼 바에서 김두한을 만나자마자,

수인사도 하기 전에 그를 별실로 끌고 들어갔다.

마치 태산이라도 업어온 듯한 대견해하는 얼굴이었다.

“왜, 또 만나자마자 수선이야. 뭐, 그럴듯한 깔치라도 업었냐?”

깔치란 당시 주먹패들의 은어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여자를 지칭하는 유행어였다.

그 어원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긴 어렴풋이 짐작이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 무렵에는 마치 여자란 단어가 이 땅에서 말살되기라도 한 것처럼

주먹패들뿐만 아니라 학생들, 일반 시민들 사이에도

깔치는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대유행이었다.

“깔치 같은 게 문제가 아냐.”

종로꼬마는 별실 안팎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부천, 문×이 마을에 있는 골짜기에 말이지, 엄청난 군수 물자 저장소가 있단 말야.”

종로꼬마는 군수 물자 저장소의 위치와 모양,

이를 며칠에 걸쳐 인천항에서 실어 나르게 된 사실을 아는 대로 낱낱이 보고했다.

“흠!”

팔짱을 끼고 고개를 약간 옆으로 수그리고 잠자코 듣고만 있던 김두한은

마치 괴로운 한숨이라도 토해 내듯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실상, 그는 종로꼬마가 신나게 떠들어대는 것만큼 유쾌하지가 않았다.

그것은 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좋았을 만큼 너무나 무거운 중압감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산 방면의 비밀 탄약고 폭파 사건만 해도 그랬지만,

장교동의 군수 공장 방화 사건 이후 얼마나 마음을 졸여야 했었던가.

언제 어느 꼬투리가 잡혀 사건이 탄로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전전긍긍한 나날이었다.

어찌나 불안하고 두려운지 입 안에 혓바늘이라도 돋은 것처럼 항시 깔깔했다.

밥맛도 없고 술맛도 없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체 가장을 했지만 항상 지명 수배라도 받은 것처럼 초조하기만 했다.

그런데 또다시 비밀 군수 물자 저장소를 습격하잔 말인가.

생각하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생각할수록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무서운 일을 마치 다시없는 희소식이기라도 한 것처럼 갖고 온 종로꼬마가

밉살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두 귀로 분명하게,

너무나 분명하게 들은 이상 그대로 흘려버릴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는 천래의 반역심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것을 의식하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내일쯤 아이들을 데리고 모처럼 월미도에라도 놀러 가 볼까.” 

 

김두한의 입에서 그 한마디가 나왔다는 것은 벌써 결의의 표시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가 무엇 때문에 낯선 월미도로 놀러 가겠다 하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군수 물자를 은폐해 놓은 위장 방공호가 있는 부평을 탐색하려 하는 것이리라.

종로꼬마 이상욱은 자기 자신이 정보를 제공해 놓고는 어떤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두려웠던 것이다.

두려운 것 이상으로 지긋지긋했다.

아무것도 생기는 것 없이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니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두목의 결의를 본 이상, 가타부타 토를 달 수가 없었다.

그대로 따를 뿐이었다.

이날 밤 종로꼬마는,

부평 조병창의 기숙사 일심료에 들어간 이후,

오랜만에 조양 여관에서 김두한과 함께 잠을 잤다.

그것도 같은 방에서 잤다. 전에 망치와 함께 썼던 방은,

고향 광주로 내려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김무옥이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로꼬마와 함께 자면서 김두한은 부평 방공호에 대해서도,

내일로 약속한 월미도행에 대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워낙 술에 취해 있기도 했지만,

눕자마자 이내 얕은 코를 골며 잠들어 버렸다.

그 커다란 키에 허리를 구부리고,

모로 누워 두 손을 사타구니에 찌르고 자는 것이었다.

김두한의 잠버릇이었다.

그 자는 모습,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손을 사타구니에 찌르고

자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종로꼬마는 그 어느 때 없이 김두한이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그 힘, 그 좋은 머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는 무엇 때문에 내일을 모르는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서울을 완전 장악한 그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또다시 위험천만한 일을 저지르려 하는 것일까.

아무런 대가도 없는 그 무서운 모험을.

그는 김두한에게 또다시 정보를 제공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처럼 단둘이 같은 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방공호에 대해서도 월미도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던 것뿐이었을까.

종로꼬마는 김두한이 정말 그러기를 원했다.

다음날 새벽에는 언제나처럼 어둠이 가시기 전에 일어났다.

또 언제나처럼 새벽 운동을 하기 위해 삼청 공원으로 향해 갔다.

망치·김무옥·문영철·다루마찌·머리 빠진 개고기 등이 따랐다.

예정대로 운동을 끝마치고, 역시 전과 다름없이 이문 식당에서 아침을 들었다.

이때까지도 김두한은 월미도로 놀러 가겠다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설렁탕집에서 나와 전찻길을 건너서고 우미관 골목 어귀에 이르렀을 때야,

김두한은 갑자기 생각이 나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아 참, 박사. 우리 오늘 월미도로 놀러 가기로 했었지?” 
 
(역시 잊지 않고 있구나!)

종로꼬마는 몸에 소름이라도 돋는 듯한 느낌으로 멈추어 서서 김두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두한은 마침내 자신의 결의를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두한은 무엇을 생각해서인지 입가에 빙긋, 냉소와도 같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미소일 수가 없었다.

억울함을 억지로 참을 때 머금는 것 같은 억지웃음이었다.

그 냉소의 뜻을 모르는 척, 종로꼬마는 김두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박사, 우리 인천 갔던 일 생각나?”

그 말에 종로꼬마 역시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띠었다.

그러나 그 웃음도 미소일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억울함을 억지로 참을 때와 같은,

아니 지난날의 원한을 상기해 내고 복수심에 이글거리는 눈과 함께 머금은

고통 어린 웃음이었다.

그것은 김두한이 열두 살, 종로꼬마 이상욱이 열 살이었던,

그들이 처음으로 수표교에서 만나 알게 된 1년쯤 후의 일이었다.

이 무렵 종로꼬마는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오갈 데 없는 김두한을 데려다가 그의 집에서 먹고 자게 했었음은

이미 오래전에 소개한 대로다.

거지나 다름없는 행색의 김두한에게,

엄마 몰래 훔쳐낸 1원으로 중동학교 앞 교복집에서 27전을 주고

가장 큰 교복을 사 입혔다는 것도 이미 소개한 바 있다.

바로 그 무렵이었다.

학생도 아니면서 새 교복을 얻어 입은 김두한은 날개라도 돋친 듯한 느낌이었다.

얼마나 입어보고 싶었던 교복이었던가.

신이 난 김두한은 여봐란 듯이 거리를 쏘다녔다.

물론 단짝이 된 종로꼬마와 함께였다.

경성역 가까이의 염천교까지 갔다.

굴다리 아래로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달리는 기차 구경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리 난간에 매달려서 두 다리를 벌렁거리며 이따금 지나가는 기차에

함성을 질렀던 두 소년은, 이젠 기차가 타고 싶어졌다.

기차가 타고 싶다는 마음이 든 이상, 두 소년이 합의를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똑같이 모험심이 강한 악동 시절이었으니까.

기차를 쌔벼(훔쳐) 타고 인천으로 갔다.

상인천인지 하인천인지 모를 곳에서 내렸다.

처음 가보는 인천의 지리에 익숙할 까닭이 없었다.

들은풍월로 월미도를 찾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는가.

먹새가 좋은 두 소년은 우선 어느 지점인지 모를 중국 호떡집을 찾았다.

지점은 모르지만 뚱뚱이 호떡집이었다.

옛날의 중국 호떡은 정말 맛이 훌륭했다.

어린 소년들은 5전짜리 호떡 하나면 배가 부를 만큼 충분했다.

그러나 먹새가 좋은 김두한과 종로꼬마는 호떡 하나나 둘로는 배가 차지 않았다.

하지만 종로꼬마는 교복을 사고 남은 돈이 아직도 쩔렁쩔렁 소리가 날 만큼 많이 있었다.

나름대로 실컷 먹고 호떡집을 나왔을 때였다. 
 
호떡집을 나와 몇걸음도 옮기기 전이었다.

두 소년의 앞을 가로막고 빙 둘러선 무리들이 있었다.

아직 주먹 세계에 본격적을 발을 들여놓기 이전인,

한갓 골목대장에 불과했던 김두한이었지만,

장차 주먹패의 두목에 오를 자가 갖고 있는 선천적인 감각으로

그는 사태의 위급함을 깨달았다.

“야…… 너희들 어디서 왔어?”

앞장선 굵직한 사나이가 불량배다운 독특한 억양으로 턱 끝을 치켜들며 물었다.

(도대체가 낯선 고장에서 돈 냄새를 풍긴 게 잘못이라……)

김두한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야, 너희들 어느 학교 학생야?”

두 소년과 같은 또래의 소년일 수 없는 건장한 사나이,

코밑이 시커매 어른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사나이가 두 번째로 물었다.

김두한은 교복을 입고는 있었으나 학생일 수가 없었다.

교모를 쓰지 않고 있을뿐더러 새 교복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해서,

새옷을 받자마자 일부러 몇 개의 단추는 떼어 팽개쳤고

새옷을 먼지 구덩이에 굴려 꾸깃꾸깃 더럽혀 놓고 몸에 걸쳤었다.

김두한은 학생이 아닌데 학생이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의 불행한 일진을 되씹으면서,

어떻게든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도망을 치려면 못 칠 것도 없었다.

이제 나이 불과 열세 살이라고는 하지만,

어른 하나둘쯤은 혼자서 충분히 처치하고 날쌔게 도망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열한 살짜리,

문자 그대로 꼬마 이상욱이 있지 아니한가.

꼬마 하나를 내동댕이치듯 놔두고 혼자 도망칠 수는 없었다.

“야, 너 힝(돈)깨나 갖고 있는데, 어디서 쌔볐어?”

이번에는 종로꼬마에게 물었다.

새파랗게 질린 종로꼬마는 대답도 못 하고 벌벌 떨면서,

구원이라도 바라는 듯이 김두한을 바라보았다.

김두한은 그 구원의 눈초리에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냅다 휘두른 사나이의 손길이 종로꼬마의 턱을 휘갈겼다.

장차 서울 장안 바닥을 휩쓸 종로꼬마였으나,

아직은 열한 살짜리 꼬마 소년이었다.

그는 속절없이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김두한의 불같은 반항기가 욱, 하고 치밀어 올랐다.

종로꼬마가 나동그라진 것을 본 것과 함께 껑충 뛰어오르면서,

종로꼬마를 친 사나이의 앞가슴을 걷어찼다.

열세 살짜리 소년의 발길질 하나에 덩치 큰 어른이 여지없이 나가떨어졌다.

두 소년을 둘러싼 무리들이 너무 놀라서 주춤했다.

김두한은 도망칠 때는 이때다 싶어,

종로꼬마를 부축해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축 늘어진 종로꼬마는 움칫도 하지 않았다.

종로꼬마의 작은 체구가 이처럼 무거웠던가,

생각할 틈도 없었다.

무서운 발길질과 주먹이 수없이 김두한을 향해 날아들었다.

몸을 웅크리고 종로꼬마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던 김두한은

싸움에 대비할 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

설령 싸울 태세가 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어른들의 무수한 주먹과 발길질에 대항할 힘을 갖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작은 종로꼬마의 몸을 덮듯이 쓰러져서 그 사나운 뭇매를 고스란히 받았다.

매를 맞으면서도 종로꼬마를 보호해야겠다는 본능이 병아리를 품은

암탉처럼 살아난 것이었다.

놈들의 발길질은 허리에, 어깨에, 등허리에, 머리에 사정없이 퍼부어졌다.

그러나 아프다는 감각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기 육신에 가해지는 학대를 탄력 있게 받아들이면서

일종의 잔인한 쾌감조차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의 소년에게 무차별하게 매를 가하는 어른들의 난폭함에,

어금니가 닳아빠질 만큼 통분의 이(齒)를 갈았다.

“순사다!”

누군가가 소리친 것 같았다.

다리에, 엉덩이에, 허리에, 어깨에 가해졌던 발길질이 순간적으로 멈추는 것을 알았다.

벌 떼처럼 몰려들었던 패거리들이 일제히 흩어지며 골목 쪽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누군가가,

소년들이 청년들에게 얻어맞고 있는 것이 보기에 딱해서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엎어져서 그저 얻어맞고만 있던 김두한은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골목 안쪽으로 흩어져 도망가는 무리들을 옆으로 째진 듯한

그 작은 눈으로 무섭게 노려보았다.

눈에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흐느껴 울 때보다 더 목멘 목소리로 울부짖는 것이었다.

“온다! 온다! 다시 인천에 온다!”

그런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두한은 어느덧 주먹 세계를 휘어잡는 서울의 두목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한 번도 인천엘 찾아간 일은 없었다.

서울을 다스리기에도 벅찬 판에 인천에까지 눈길을 돌릴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인천엘 찾아가겠다는 생각이 들자,

10년 전의 어린 시절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종로꼬마에게 인천에 갔던 일이 생각나느냐고 일깨워준 것은 바로 10년 전의

그 사건을 두고 한 말이었다.

종로꼬마의 입가에 씁쓰레한 고소가 흘렀던 것도 당시의 억울함이 되생각났기 때문이다.

“응, 생각나지, 생각나! 뚱뚱이 호떡집 앞에서 말이지…….”

종로꼬마는 호떡집 이름까지도 잊지 않고 있었다.

“우리, 그때 못 본 월미도 구경도 하고, 다시 한 번 호떡이나 먹으러 가보지.”

“그렇다고, 설마 하니 그 자식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라구?”

“남아 있거나 말거나!”

김두한은 말을 맺자마자,

발길을 오던 길로 돌리는 것이었다.

삼청 공원으로 함께 운동을 하러 갔던 망치며,

김무옥·문영철 등은 한 발 앞서 우미관 골목 안으로 사라진 다음이었다.

이때까지 김두한과 종로꼬마의 곁에 남아 있었던 것은 머리 빠진 개고기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