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29

오늘의 쉼터 2014. 8. 28. 07:32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29  

 

 

이 무렵의 일본은 중국 대륙에서, 남태평양 일대에서 승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미 3월에 인도네시아의 바다비아를 함락시켰는가 하면,

중국의 외부 연락을 일절 차단시키기 위해, 미얀마를 공격하여 랑군을 점령하였다.

4월에 접어들어서는 수마트라를 점령하고, 필리핀 바탄의 미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5월에는 미얀마 정복을 완료하고, 북태평양 알류샨 열도에 상륙하였으며,

중국에서는 위산(玉山)을 점령하고, 캐나다의 밴쿠버에 포격을 했다.

문자 그대로 좌충우돌, 맹위를 떨쳤다.

여름이 되자, 솔로몬 군도 과달카날을 점령하고,

뉴기니의 북안 고나에 상륙하기에 이르렀다.

일본군은 이처럼 승전을 거듭하고 있었으나,

전선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전에서 밀리기만 했던 미군은 반격의 태세를 갖추기 시작하여

일본 본토 도꾜, 나고야, 고베 등에 최초의 공습을 감행했는가 하면,

남태평양 산호해에서 일본 해군을 패배로 몰아넣어,

오스트레일리아를 위협에서 건져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일본군의 전진은 종결을 보게 되었다.

남태평양과 솔로몬에서의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거듭되는 패전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일본군 대본영(大本營)에서는 패색이 깃들기 시작한 정세를 일절 내색치 않고,

승리의 나팔만을 불어댔다.

전세가 호전을 거듭하고 있거나 기울어가고 있거나 간에, 전선이 이처럼 확대 일로에 있으니

물자는 고사하고, 1억 인구(조선인까지 포함해서)를 총동원한다 하더라도 견뎌낼 재간이

없는 일이었다.

일본은 더 많은 병력, 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다.

조선 청년들은 벌써부터 싸움터로 강제 징집되어 끌려가기 시작했고,

강제 연행적인 노동력에 동원되었다.

젊은이들의 집결체라 할 주먹패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거기에 제일 먼저 걸려든 것이 종로꼬마 이상욱이었다.

사소한 분쟁 사건으로 경찰의 호출을 받고 나가보니,

부평 조병창(造兵廠)으로 근로 봉사에 나가라는 것이었다.

부평 조병창은 구구식 소총과 총검을 생산하는 대규모 군수 공장이었다.

종로꼬마는 처음에는 당황을 했고, 동원에서 빠지려고 꾀도 부려보았으나

하찮은 구실이 통할 리도 없었기에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부평이라고 하면, 서울과 인천의 중간 지점으로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해서 좋았다.

더구나 이를 마다했다간, 정규 군인이나 군속으로 빠지게 되어,

멀리 중국 땅이나 남태평양쯤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는 생각으로 조병창 강제 동원에 응하게 된 것이다.

이 강제 동원을 거부했다간 김두한이나 다른 수뇌급에게 누를 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우도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되어 종로꼬마는 조병창에 동원되었고 수송부의 조수 일을 맡아보게 되었다.

출퇴근이 가능하여 퇴근 후면 종로패와 어울릴 수 있어, 아직은 그다지 불만스러울 것이 없었다.

 

수송부 조수 일은 신역이 그리 고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트럭 운전석에 앉아 여기저기 쏘다닐 수 있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당시의 차는 94년식으로, 바퀴가 여섯 개 달린 디젤 엔진의 로끄량샤였다.

평소 그 차는 트럭으로 활용되지만 위급시에는 뒤에 포를 끌고 다닐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종로꼬마는 그 트럭 운전사의 조수가 된 것이다.

운전사는 종로꼬마보다도 나이가 두셋 위이고, 체격도 제법 건장한 사나이였다.

키도 꽤 큰 편이었다.

그의 키가 컸다기보다 종로꼬마가 별명 그대로 너무 작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히라야마(平山)라는 창씨 명을 가진 신모라는 사나이였다.

그는 몸집은 땅딸막한 편이었지만,

키가 자기 어깨에 닿는 종로꼬마를 얕보았다.

직책이 운전사의 조수이기도 했지만,

그 조그만 키의 애송이가 종로 바닥에서도 용맹을 떨쳐온

종로꼬마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종로꼬마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그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었지만,

모르고 있는 동안에는 뱃속이 편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운전사가 조수에게 시켜야 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담배 심부름은 고사하고 담배에 성냥불까지 그어대라고 시켰다.

그것도 반말짓거리 정도가 아니라,

콧등으로 다루듯 하는 것이었다.

“야, 꼬마야 불을 붙여.”

꼬마라는 별명은 어디를 가나 면할 수 없는 것이어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지만,

그 코 먹은 소리하며 술에 취한 사람 모양 게슴츠레한 눈을 반쯤 뜨고 명령하듯

말하는 것이 밸이 뒤틀려 견딜 수가 없었다.

“야, 너 뭐 봤냐? 운전사면 단 줄 알아?”

종로꼬마는 운전사가 물고 있는 담배를 잽싸게 뽑아 팽개치며

벌써 뛰어오를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너 뭐 봤냐?’ 하는 것은 주먹패들이 항용 쓰는 말로,

‘내 약점이라도 봤느냐?’는 도전적인 전투 언사였다.

운전사는 허를 찔린 꼴이 되었다.

여드름이 덕지덕지한 애송이 꼬마 녀석인 조수 주제에

운전사가 물고 있는 담배를 뽑아 팽개치다니.

“어쮸.”

그는 단숨에 종로꼬마를 움켜쥐어 성냥갑 부수듯 부수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종로꼬마는 이미 뛰어오를 자세를 취하고 난 연후인 것이다.

그가 움켜잡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았고,

주먹이 날아들도록 얌전히 두 손끝 마주 잡듯 서 있지만도 않았다.

그렇다고 뒷걸음질치지도 않았다.

제자리에서 오금을 잠깐 구부렸다가 폈을 뿐인데

그는 벌써 자기 키보다도 높게 솟구쳐 올랐다.

훌쩍 뛰어오른 그는 운전사의 두 어깨를 타고 섰다.

운전사가 쪽발이놈이기만 했었던들 어깨를 짚은 것과 동시에

그의 발길은 놈의 면상을 후려쳐서 거꾸러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차마 조수의 몸으로 그럴 수는 없었다.

올라탄 발바닥으로 어깨를 가볍게 짓이겨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가볍게 짓이긴 그뿐만으로 운전사는 맨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운전사는 폭삭 주저앉았고, 그의 두 어깨를 짓이긴 종로꼬마는

허공에서 한 바퀴 텀블링을 하면서 사뿐히 발을 땅에 짚었다.

운전사는 하얗게 사색이 된 채,

허리가 빠진 사람처럼 일어나지도 못하고 멍한 눈으로 쳐다만 보았다.

“히라야마, 너, 내가 네 조수만 아니었던들 죽었어!

앞니빨이 몽땅 빠지는 할아범이 되지 않았으면…….”

종로꼬마는 천천히 다가서서, 운전사를 부축해 일으켰다.

운전사는 축 늘어져서 일어서지도 못했다.

“자아식, 정신 차려. 또 한 방 얻어터지기 전에.”

종로꼬마는 불끈 쥔 주먹을 내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아냐, 아냐! 어구구구…….”

운전사는 두 손을 휘저으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로끄량샤 트럭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운전사는 운전대에 올랐고, 종로꼬마는 옆자리인 조수 자리에 올랐다.

종로꼬마는 담배 두 대를 한꺼번에 꺼내 두 대에 똑같이 불을 붙였다.

한 대는 자기가 피우고, 남은 한 대를 운전사에게 건네주었다.

“담뱃불은 오야붕인 김두한에게도 붙여주지 않았는데…….”

운전사는 흠칫 놀라면서, 마지못한 듯 건네주는 담배를 받아들었다.

그도 김두한이 누구인가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따, 종로에 나가면 물어봐. 종로꼬마 이상욱이 누구인가를.”

여섯 개짜리 바퀴를 가진 둔중한 몸체의 트럭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트럭은 종로꼬마가 조수석에 타게 된 이후,

현재도 같은 위치에 있는 인천 소년 형무소에서 무엇인가 물건을 가득 싣고

서울의 종로 2정목 쪽으로 가서 부려놓고, 그곳에서 다른 물건을 다시 싣고

조병창으로 가져오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있었다.

이따 종로에 가게 되면,

종로꼬마가 누구인가 물어보라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운전사 히라야마가 종로에 나가 정말 종로꼬마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는지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이후 종로꼬마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누가 운전사이고 누가 조수인지,

운전석에 앉았을 때 외에는 분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종로꼬마는 운전사를 극진히 대해 주었다.

그러면서 둘은 더욱 가까워져 갔다.

하루 종일 함께 돌아다니는데 가까워지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자기네들이 나르고 있는 물건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래하는 빈도가 잦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총검과 구구식 소총의 부품으로, 인천 소년 형무소에서

기초 가공을 한 재료를 가져가서, 종로 2정목의 소규모 군수 공장에서

다시 손을 써서 재가공을 한 다음, 다시 조병창으로 가져와 완성품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거, 좋은 먹이 아냐?)

속으로 중얼거린 종로꼬마는 이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두목 김두한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수 공장은 종로 2정목에 있다 했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교동 골목 안에 있었다.

6·25 전쟁 이후, 거리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장교를 건너 청계천을 따라 종로 3가 쪽으로 가면 일대는 기와집이 많았다.

그 초입에는 후에 수도청장을 지낸 장택상의 사택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 군수 공장도 겉으로 보기에는 다를 것 없는 조선 기와집이었고, 평범한 가정집 같았다.

그러나 내부를 개조해서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도 이 일대에는 소규모 공장이 많이 들어 있지만,

이 위장된 군수 공장 안에서는 주로 총검을 제작했으나,

일부에서는 탄환도 만들고 있었다.

촘촘히 붙어서 무리를 이루고 있는 이 기와집 군수 공장 지대는 장교 근처에서 시작하여

사방으로 트럭이 물건을 싣고 드나들 수 있을 만큼의 비교적 큰길이 있었던 곳까지였다.

그 사이사이에는 물론 작은 골목이 나 있어 사람이 왕래할 수 있었다.

군수 공장 이외에 두부 공장도 있었고, 자갈이나 모래를 파는 물역 가게도 있었다.

이 공장에서는 선반이며 보르반 등 기계를 설치해 놓고,

인천 소년 형무소에서 만들어온 원자재인 건축용 철근보다 굵고 납작한 쇠장대

(속칭 일본말로 마루보라 했다)를 불에 달구어 일정한 길이로 절단을 하고,

양측면을 선반으로 깎고, 보르반으로 구멍을 뚫는 따위, 총검의 기초적인 제작 작업을 했다.

세공을 필요로 하는 완제품은 다시 부평 조병창으로 갖고 가서 만들었다.

장교동의 군수 공장과 부평 조병창, 인천 소년 형무소의 내막을 어느 만큼 알게 된 종로꼬마는

두목 김두한에게 이를 소상히 알렸다.

“허어!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바로 코앞에 있는 군수 공장도 모르고…….”

김두한은 깜짝 놀랐다기보다 어이가 없었다.

장교동은 청계천 너머에 있어 엄밀한 의미에서 나와바리 밖에 있다고는 하지만,

관철동과의 사이에 개천 하나를 두고 이웃에 대면을 하고 있지 아니한가.

일본군이 군수 공장을 위장하기 위해 조선 사람 주택가 한복판에 이를 세워놓은 것이겠지만,

이를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 비밀을 알아낸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이제 그 위장 군수 공장은 저격병(狙擊兵)의 가늠쇠 구멍 안에 들어온 적병이었다.

김두한은 낮이나 밤이나 군수 공장 일대를 배회했다.

군수 공장을 때려부술 일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수색의 비밀 탄약고를 폭파한 행동대원이라 할 정진영·김동회·시구문돼지·윤병철·문영철·망치

등으로 하여금 샅샅이 탐색케도 했다.

“나쁜 놈들! 조선인 주택가를 군수 공장으로 만들다니.”

“날려버려! 까짓것, 폭파해 버렷!”

돌격대원들은 똑같이 의분을 느꼈고,

또한 이를 없애버리자는 데에 의견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장교동 군수 공장은 수색의 비밀 탄약고와는 달리,

일반 가정집들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 가정집은 일본인도 아닌 조선 사람의 집들뿐이었다.

섣불리 폭약물로 폭파를 했다간 애꿎은 조선 사람의 집까지

막대한 피해를 볼 것이 아니겠는가.

김두한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여러 날을 혼자 고심한 끝에 문영철·김동회·시구문돼지·망치 등과 함께 비밀리에 의논을 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

거기서 만드는 총알이 너의 아버지가 이끄는 독립군의 가슴을 뚫는다고 생각해 봐.

거기서 만드는 총검이 누구의 가슴을 찌를 거냐?

일본놈 가슴을 찌르려고 만드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 조선 사람의 가슴을 찌르려는 거야.

우리 조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일본 헌병이나 경찰의 칼에 얻어맞고 찔렸는가,

너도 잘 알지 않아?”

침을 튀겨가며 역설을 퍼붓는 것은 망치였다.

앞서의 탄약고 폭파 사건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못한 분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이번 기회에 자신의 불명예를 씻으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신중해야지.

그러다가 우리 조선 사람의 집까지 몽땅 피해를 보면 어떻게 해?”

김두한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꼭 폭파를 해야만 맛입니까? 불을 질러요, 불을.”

시구문돼지가 두꺼운 입술을 내휘두르며 말했다.

“그 방법이 좋을 것 같군. 그저 한꺼번에 불태워 버리는 거야.”

김동회가 이에 찬동을 했다.

“하지만 불 지르기는 그렇게 쉬운 줄 아냐?

짚단에 성냥불을 그어 대면 타듯, 그렇게 수월한 줄 알아?”

역시 생각이 많은 것은 두목인 김두한이었다.

“쉽지 않으면? 석유통 부어놓고 불을 지르는데 타지 않고 견뎌?”

거구의 상체를 흔들면서 말하는 것은 문영철이었다.

“쏟아 부을 석유가 어딨어?”

신중히 말한 것은 역시 김두한이었다.

사실 이 시절 석유는 무척이나 귀했다.

시중에선 돈을 주고 사려야 살 수도 없었다.

일본이 승승장구 승전을 거듭하고는 있었지만,

전선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귀한 것은 석유였다.

일본은 아끼다(秋田) 지방에서 극히 소량의 석유를 생산하고는 있었지만,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다.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이란 미명 아래 전쟁을 일으킨 것도 결국은

석유를 비롯한 물자가 탐이 나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쟁 도발 후, 남태평양 일부의 석유 생산 지역을 점령했다고는 하지만,

생산과 수송의 난관으로 하여 국내의 수요는 태반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들이 방화(放火)용으로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만큼 흔하지 않았다.

흔하기는커녕 돈을 주고 사려야 살 수도 없는 실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