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27

오늘의 쉼터 2014. 8. 27. 21:44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27

 

 

 

이제 자정도 넘은 시간이다.

최종 집합 장소인 예의 지하 탄약고 바로 위, 바윗등 뒤로 향해 가는 것이다.

아무리 야반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7명의 대원들이 한꺼번에 몰려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둘 또는 셋이서 짝을 지어, 셋으로 나뉘어 떠나기로 했다.

김두한과 김동회가 제일 먼저, 두 번째로 종로꼬마와 윤영철,

마지막으로 정진영·시구문돼지·윤병철이 따라오기로 했다.

이런 경우, 김두한은 언제나 앞장을 섰다.

행동을 개시할 때면 두목이라고 해서 뒤로 처지는 일이 없었다.

두목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책임을 통감하고 앞장을 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하들이 더 따르는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넌 날 꼭 따라붙어 와. 설마 망치처럼 밤소경은 아니겠지?”

김두한은 김동회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이르고는 멀찌감치서부터 허리를 낮추었다.

이미 낮에 몇 번씩 탐색하여 훤히 그 자리를 알고 있는 호박밭이었다.

물론 정면에는 비밀 지하 탄약고가 있고,

이를 지키는 군인 둘이 여전히 보초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이들은 그 정면을 피해 우선 측면으로 우회를 했다.

그 측면 쪽은 뺑 둘러서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그 철조망 안에 지정된 바윗덩이가 굴러 있었다.

그러나 그 철조망은 이미 이틀 전에 종로꼬마와 문영철이 먼저 와서 절단을 해놓아

거구의 몸이 충분히 드나들 수 있을 만큼의 구멍이 만들어져 있었다.

김두한은 마치 밤도 낮처럼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밭고랑을 헤치고

철조망을 향해 접근해 갔다.

철조망을 절단한 채 엉성하게 걸쳐놓기만 한 것을 아예 제거해 버렸다.

이제 절단해 놓은 철조망을 말짱한 것처럼 위장해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구의 몸이 얼마든지 들랑거릴 수 있을 만했다.

먼저 집결 장소에 당도한 김두한과 김동회는 바윗등에 몸을 숨기고 남은 대원들을 기다렸다.

지루하고 초조했다.

김두한은 대원들을 기다릴 것도 없이 먼저 뛰어 내려가 보초들을 처치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편이 지루하고 초조한 마음을 메워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윽고 종로꼬마와 문영철이 어둠을 헤집고 오는 것이 보였다.

이들은 손에손에 휘발유통이며 솜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이쪽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라면,

탄약고의 보초들도 주의 깊게 응시만 한다면 능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김두한은 불안했다.

피가 마를 정도로 불안했다.

그러나 돌격대원들이 그만큼 민첩했던 것인지,

아니면 안심하고 있는 보초들이 경계심을 늦추고 있는 것인지

아무런 사고 없이 종로꼬마와 문영철도 당도했다.

뒤이어 정진영·윤병철·시구문돼지도 영락없이 합류해 왔다.

이렇게 해서 7명의 사나이들은 이제 죽느냐 사느냐의 결전장에 어김없이 모여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돌격대원 7명은 이제 모두 모여들었다.

이제 행동만이 남았다.

“됐어! 가자.”

숨을 가다듬은 김두한은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김두한이 앞장서서 야산에서 기어 내렸다.

그 뒤를 부하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산개(散開)했다.

그 시간과 간격은 미리부터 정확하게 짜여진 대로였다.

이 작전을 짜기 위해 밤낮으로 남의 이목에 띄지 않게 이곳저곳 자리를 옮겨 다니며

얼마나 면밀한 구상을 세우고 실제로 연습을 해왔던가.

일사불란한 이들의 행동에는 한치의 오차도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대로 들쥐 같았다.

들쥐라기보다, 무서운 독을 품은 전갈 그대로였다.

그들 7명이 호박밭 두렁에 납작하게 흩어져 엎드린 전방 불과 30미터 지점에는

비밀 탄약고 입구가 있었고, 이 시간에도 보초 2명이 어김없는 자세로

집총을 한 채 지키고 서 있는 것이 희미한 외등 불빛 속에 훤히 드러나 보였다.

7명, 열네 개의 눈이 똑같이 보초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방이 암흑으로 휩싸여 있고 가랑잎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적막이 흘러,

자신들의 숨소리까지 겁이 났다.

등에는 자기도 모를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인간이란 극도의 공포에 몰리면 오히려 더 냉정해지고 담력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두한은 따로 명령을 내릴 것도 없었다.

이미 작전은 짜여져 있는 것이다.

몸집이 작고 민첩한 종로꼬마 이상욱과 문영철이 먼저 보초를 기습하여 처치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도끼와 망치를 손에 든 종로꼬마와 문영철이 땅을 기는 뱀처럼 납작하게 엎드려서 보초를 향해

접근해 갔다.

오른편의 보초는 문영철이, 왼편의 보초는 종로꼬마가 처치키로 되어 있는 것이다.

두 사나이는 총을 든 보초를 향해 겁도 없이 다가들고 있었다.

정말로 겁 없는 사나이들만 같았다.

실제로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김두한 자신뿐인 것만 같았다.

두 사나이가 보초를 향해 접근해 갈 때마다 호박잎이 일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김두한의 귀에 들릴 때마다,

그는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알지? 이상한 소리가 나면 보초들은 제물에 겁이 나서 마구 쏘아댈지도 모르니까, 각별히 조심해!)

몇 번씩 당부한 말이기는 했지만, 차라리 자기 자신이 앞장서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하지만 보초 편에서는 일렁거리는 호박잎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넓은 호박밭에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쯤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느 누가 감히 자신들의 생명을 노리고 다가올 수 있을까,

마음을 놓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초소와의 거리는 불과 5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보초들이 초소 앞에서 권태와 졸음이라도 쫓으려는 듯,

 제자리에서 서성거리며 상체를 움칫거리는 것까지 뚜렷하게 보였다.

밤벌레들이 희미한 외등에 모여들며 뒤엉키고 있는 것까지 보였다.

그것은 두 기습자들에게는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외등 불빛이 보초들의 양상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해주었고,

어둠 속 이편의 모습을 감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군측의 만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야가 훤히 내다보이는 호박밭이라는 것에만 마음을 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전쟁에서의 승승장구로 온 국민이(조선 사람까지 포함해서) 도취해 있는 지금,

감히 어느 누가 비밀 탄약고를 기습해 올까 상상도 못 하고 있었을 것이다.

종로꼬마는 문영철의 옆구리를 가볍게 찔렀다.

동시에 달려들자는 미리 약속된 신호였다.

그와 동시였다.

종로꼬마는 벌써 몸을 날렸다.

문영철이 똑같이 몸을 날린 것도 물론이었다.

후닥닥, 어둠 속에서 뛰어나온 두 검은 그림자는 마치 용수철에 튕긴 것처럼 잽쌌다.

그대로 탄환 같았다.

종로꼬마는 미리 예정된 왼쪽 보초에게로 달려들었다.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었으나, 이를 내휘두를 것이 없었다.

붕, 몸이 솟구쳐 허공으로 뛰어오른 것과 함께 보초의 낭심(囊心)을 걷어찼다.

보초는 손에 든 구구식(九九式) 장총을 꼬나 들지도 못한 채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윽, 외마디 신음 소리를 냈을 뿐이다.

그러나 낭심을 걷어차고 뛰어오른 종로꼬마의 작은 몸집은 아직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떠 있었고 몸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다리가 땅에 닿기 전에 보초의 턱을 거듭 차서,

발랑 뒤로 나자빠지게 했다.

이른바 중국 무술 십팔계의 연환퇴(連環腿) 기법이었다.

그 일격이 제대로 가해졌을 때, 어느 누가 이에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보초는 백랍처럼 창백해져서 거품을 물었다.

죽었거나, 언제 소생할지 모를 만큼 기절했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종로꼬마는 보초의 죽음을 확인할 것도 없었다.

그저 나둥그러진 보초 옆에 똑같이 시신처럼 뒹굴어 있는 장총을 낚아채듯

주워들며 흘끗 옆의 문영철 쪽을 돌아다보았다.

문영철이 어떠한 방법으로 보초를 기습했는지 모르지만 그쪽의 상황도 이미 끝나 있었다.

문영철은 십팔계를 몸에 익히고 있지는 않았지만,

몸이 날쌔고 민첩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나이였다.

완력에서도, 설렁탕 곱빼기 다섯 그릇을 한자리에서 먹어치우는 만큼의 밥값은 했다.

표범처럼 달려든 문영철은 주먹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을,

들고 있던 망치로 보초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보초가, 달려드는 그를 발견하고 재빨리 장총을 꼬나 들었기 때문이다.

보초가 방아쇠를 당기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이니까.

보초가 질그릇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나자빠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문영철의 철퇴를 맞은 보초가 검붉은 피를 쏟으며 나둥그러진 것을 종로꼬마는 보았다.

그러나 이에 개의할 틈이 없었다.

“그 총을 뺏어.”

그는 야릇한 웃음마저 띠며 문영철에게 말했다.

죽은 자가 되살아날 리는 만무했지만,

죽은 척하고 있다가 별안간 일어나서 총을 쏘고 대들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런 장면을 가끔 활극에서 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영철은 시키는 대로 장총을 주워들었다.

두 사나이는 주운 총을 든 손을 번쩍 쳐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뒤쪽을 향해 흔들어 보였다.

돌격을 명령하는 돌격대장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문영철은 벌써 탄약고의 출입구 쪽을 향해 돌진해 가서는 망치로 문을 때려부수고 있었다.

탄약고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으나 문은 그다지 견고할 것도 없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

종로꼬마도 달려들어 도끼로 나무문을 때려부수는 데 가담했다.

문은 생각보다 쉽게 부서졌다.

외등의 불빛을 받은 입구서부터 괴물 같은 상자가 놓여 있었으나

안쪽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지하굴 특유의 습한 냉기와 흙 냄새가 으스스한 한기를 느끼게 했다.

어두워서 안쪽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으나 어쩐지 무시무시해서 발을 들일 수도 없었다.

그러나 김두한을 선두로 한 남은 다섯의 돌격대원들이 우르르 검은 거미 떼처럼 모여들었다.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준비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솜방망이와 휘발유통이었다.

정진영이 회중 전지의 불빛을 밝히며 먼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윤병철과 시구문돼지가 솜방망이와 횃불, 휘발유통을 들고 좇았다.

안쪽 깊숙이 구석구석까지 휘발유를 뿌리고 다녔다.

휘발유를 다 뿌리고 난 대원들이 다시 출구 쪽으로 빠져나왔다.

휘발유를 뿌리는 작업이란 그다지 힘이 드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너무나 긴장하고 흥분해 있는 탓인지

대원들의 이마에는 누구나 기름 같은 진땀이 배어 있었다.

“자아, 너희들은 빨리 도망쳐. 알지, 되도록 멀리. 미리 정해진 그 길로 말야.”

입구 앞으로 대원들이 다 모여들자 김두한은 침착하게 말했다.

일이 무사히 성공된다 하더라도 대원들 7명이 한꺼번에 같은 길로 철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한밤중의 일이라 하지만 경찰이나 남의 이목이 두려워서였다.

그들은 거사 후의 철수 방법까지 미리 짜놓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짝을 이루었던 패들끼리 머뭇거림 없이 먼저 떠나기 시작했다.

대원들이 외등 불빛 밖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을 본 김두한은 얼굴에 승리자와도 같은

회심의 미소를 띠고는 활활 타오르는 솜방망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김두한과 짝을 이룬 김동회도 똑같이 솜방망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투창 선수들처럼 솜방망이를 안쪽 흥건한 휘발유 구덩이를 향해 힘껏 던졌다. 
 
확, 기름 구덩이에 불이 붙는 것을 김두한은 보았다.

섬광처럼 눈이 부신 것이 눈 안으로 박혀드는 것만 같았다.

“가자.”

김두한은 김동회에게 짤막하게 한마디 하고는 벌써 뛰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지체할 수도 없었다.

불붙은 탄약고가 어떠한 모양으로 폭발할지 그 자신도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폭발하기 전에 한 걸음이라도 멀리 도망을 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망치는 일은 엎드려서 땅을 기는 것보다는 사뭇 수월한 일이었다.

호박밭 끝 쪽까지 단숨에 치달았다.

뒤돌아볼 것도 없었다.

다른 대원들이 어느 방향을 향해 어느 길로 도망쳤을까 생각도 하지 않았다.

김동회가 제대로 뒤쫓아오는가 염려할 것도 없었다.

누구나 제 앞가림은 할 줄 아는 위인들이니 어련히 알아서 도망칠까 하는 안심도 있었지만,

김두한 자신도 급했기 때문이다.

이제 폭발할 폭음에 자신의 몸이 하늘로 날 것도 같았고,

폭발한 불길이 자신의 목덜미라도 잡으려는 듯 뒤쫓아올 것만도 같았던 것이다.

한참을 정신 없이 뛰는데 뒤쪽에서 쿵,

지축이 안쪽에서 곪아 터지는 듯한 둔중한 소리가 들렸다.

폭발음 소리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김두한은 그제야 멈추어 서서 뒤돌아보았다.

아직도 희미한 외등 불빛이 밝혀져 있는 탄약고 앞은 그대로 검은 야산이 엎드려 있을 뿐,

아무런 변화도 아무런 이상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야, 너 걸음 한번 재구나.”

헐레벌떡 뒤쫓아온 김동회가 가쁜 숨소리로 말했다.

이에는 대답하지 않고 김두한이 물었다.

“거, 지금 무슨 소리지?”

그러나 김동회는 이에 대답할 것이 없었다.

보다 요란한 소리가 쾅 울려 퍼지더니,

탄약고가 묻힌 야산 한쪽 모퉁이에서 날름거리는 뱀의 혓바닥 같은

불길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방금 화산이 폭발을 했고 불기둥 같은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과 함께 불덩이 같은 바윗돌이 금세 날아들기라도 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날아드는 것은 없었다.

그 대신, 크고 작은 폭음이 쉴 새 없이 터졌다.

야산 한모퉁이에서 날름거렸던 불길은 점점 커져 불기둥으로 변해 갔다.

크고 작은 폭음은 쉴 새 없이 연신 터지고만 있었다.

그 불기둥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김두한은 갑자기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별안간 배가 터져라 하고 웃기 시작했다.

“동회야, 됐어, 됐어. 성공이야, 대성공이야, 아핫핫핫! 핫핫핫!”

당장 미칠 것만 같은 사람처럼 웃어댔다.

아니, 정말 미친 사람만 같았다.

김동회가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를 만큼 웃어댔다.

후일 김동회가 이처럼 미친 듯이 웃어대는 김두한을 본 일이 없었다고 술회했을 만큼

그는 마음껏 웃어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