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17

오늘의 쉼터 2014. 8. 27. 21:04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17

 

 

 

관철동 조양 여관은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라 하지만,

별일이 없는 한 김두한이 묵는 여관이었다.

그가 묵고 있지 않는 밤이라도 망치며 종로꼬마, 김무옥과

그 밖에 많은 그의 부하들이 합숙하듯 모여 자는 곳이었다.

여관 앞 작은 골목 안에는 아직 어둠이 덜 걷힌 시간인데도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밤새껏 교대로 망을 보는 똘마니급 주먹패들이었다.

김동회는 이들을 무시하듯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똘마니들은 물론 김동회를 잘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이른 새벽에 찾아온 혼마찌깡패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안녕하셨어요? 이렇게 이른 아침에 웬일이시죠?”

두셋의 똘마니들이 웃는 낯이면서도 앞길을 가로막았다.

김동회는 이들이 귀찮아졌다.

그렇다고 힘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나, 너의 오야붕 만나러 왔어.”

그는 짜증스러운 듯 말했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는데요.

좀 있다가 깨시거든 만나보시죠.”

똘마니들이라고 해서 섣불리 길을 열어줄 리 없었다.

모처럼의 중대한 결단이 똘마니들 때문에 차질이 오는 듯싶어 욱, 부아가 치밀었다.

정말로 앞의 몇 놈을 후려치고 힘으로 밀어붙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수고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야, 누구?”

여관의 문소리가 나면서 소리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이다.

넓은 대문이 어깨에 거치적거리기나 한 듯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나타난 것은 망치였다.

옆으로 퍼진 땅딸막한 모습만 보아도 어슴푸레한 속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나요, 나. 김동회요.”

“웬일이시오? 이 이른 시간에?”

망치는 단단한 근육으로 터져 나갈 것 같은 운동복 차림의 어깨를 다바라뜨리며 물었다.

운동복 앞가슴에 무엇을 대표한 것인지 ‘全朝鮮(전조선)’의 마크가 붙어 있었다.

“나도 함께 아침 운동이나 할까 하구…….”

김동회가 망치의 그 탐스러운 체격을 부러워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거 좋군.”

하지만 그렇게 대답한 것은 망치가 아니었다.

종로꼬마·김무옥·왕발 등 낯익은 주먹패 동료·부하들을 거느린 김두한이었다.

그 역시 언제나처럼 아침 운동을 하러 가기 위해 삼청 공원으로 나서려 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대문을 나온 그의 작은 눈이 야릇하게 보일 만큼 경계의 빛을 띠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가 새벽에 찾아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 새벽같이 왔지?”

경계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리를 두고 묻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긴급한 일이 있어, 하야시의 심부름으로 온 것이려니 생각한 모양이었다.

“응, 오늘부터 매일 새벽 함께 운동하면 어떨까 하구…….”

 

새벽 어둠이 채 벗겨지지 않은 이른 아침,

김두한을 비롯한 김동회 등 대여섯의 거한들이 새벽 운동을 하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야수의 무리처럼 떼지어 삼청 공원을 향해 올라갔다.

삼청 공원은 지금도 그 면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서울 북촌의 다시없는 명승지였다.

우러러 보이는 북악의 중첩된 산봉우리 아래 푸른 송림 사이에 묻혀 있는 크고 작은 산골짜기,

골짜기마다에 흐르는 맑은 시냇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암괴석 등

그대로 아름다운 자연 공원이었다.

이 삼청동에 서울 북부의 공원 설치 계획이 추진되면서부터 경성부에서는

총독부로부터 ‘삼청동문’ 안의 임야 약 5만 평을 사들여 본격적인 공원 설치에 착수하게 되어

순환 도로며 산책 도로가 생기게 되었고, 조명 시설이며 정자·벤치 따위 시설도 갖추게 되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의 일로 안다.

그후 다시 산에서 흐르는 자연수를 이용한 풀장이 만들어져 여름에는 수영을,

겨울에는 스케이팅을 즐기는 청소년들의 낙원이 되기도 한다.

그 풀장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틈에서 콸콸 새어 나오는

질 좋은 약수물의 약수터가 있었다.

이 약수터는 옛날에는 시인 묵객들이 모여들어 풍월을 읊는 자리였으나,

이제는 새벽이면 주먹패들이 모여드는 아침 운동장이 되었다.

약수터 바위와 바위 사이에 제법 펑퍼짐한 공터가 있었는데,

여기에 철봉틀·평행봉을 세워놓고 이들은 운동을 했다.

아령이며 크고 작은 역기도 갖추어져 있었다.

그 역기는 쇠붙이로 된 제대로의 것일 수 없었다.

모두 수제품(手製品)이었다.

쇠 파이프에 자갈을 박아 콘크리트로 만든 것이어서,

좌우의 무게가 같을 수가 없었다.

역기를 들어올리는 쪽에서 쇠 파이프의 폭을 넓게 잡고 좁게 잡기도 하면서

좌우의 균형을 잡아야만 했다.

이 역기를 말하여 ‘뀨깐’이라 했다.

이들은 뀨깐을 들어올리기도 하고,

철봉틀이며 평행봉에 매달리기도 했다.

흔히 ‘라지오 체조’라는 도수 체조도 했고 줄넘기도 했다.

샌드백은 없었지만 권투하는 시늉도 했고, 중국 무술 십팔계며 태껸 연습도 했다.

그러한 연습은 매우 진지하고 격렬해서 1시간 남짓 운동을 하면 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렸다.

그 무렵쯤 되면, 동네의 학생이며 청년들이 그 장소로 운동을 하러 모여들었다.

이들과 함께 어울려서 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는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는 약수터를 내려왔다.

약수터에서 내려오면, 으레 화신 백화점 뒤의 ‘이문 설렁탕’집이나,

청진동 골목의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들었다.

지금도 대를 물린 이문 설렁탕집이 남아 있고,

청진동 골목에도 여러 해장국집이 있어 아예 청진동 해장국 골목이라 부르고 있다.

현재는 서로가 원조라고 주장하여 어느 쪽이 원조인가 아리송하지만,

당시에는 청진동 입구에서 조금 들어선 왼쪽 편에 허름한 초가집 두 채가 나란히 붙어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 청진동 해장국집에서였다.


“야, 청진동 해장국, 말로만 들었지 정말 맛이 좋구나!”

김동회가 커다란 쇠뼈다귀를 빨다 말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것이다.

그는 노는 바닥이 역시 달라,

청진동 해장국을 먹어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옛날의 청진동 해장국은 정말 맛이 좋았다.

커다란 뚝배기 질그릇에 선지, 콩나물과 배춧잎,

시래기만 넣고 끓여 내놓는 맑은 국물이 그처럼 시원하고 구수할 수가 없었다.

핏국에 소금으로 간을 하면 핏국이 엉기면서 굳는다.

그 선지는 하늘하늘 부드러운 게,

이를 씹으면 안에서 선지에 밴 국물이 열매를 씹을 때처럼 툭 터지면서 입 안에 퍼진다.

그 선지맛이며, 뚝배기마다에 넘쳐서 굴러 떨어질 듯한 커다란 쇠뼈다귀를 몇 개 얹어주는데,

살점도 그다지 붙어 있지 않은 뼈다귀를 빨아먹는 맛이 또한 그렇게나 좋았었다.

더구나 땀을 뻘뻘 흘리며 새벽 운동을 하고 난 다음의 아침식사인 것이다.

한창 젊은 시절의 그에게 맛없는 것이 있을 수가 없었다.

“뭐, 이제 매일 아침 먹을 수 있게 될 텐데…….”

마주 앉은 김두한은 그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글쎄 말야.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는데…….”

“그게 무슨 소리지?”

뚝배기를 집어 들어 훌훌 국물을 마시고 있던 김두한의 특유한 작은 눈이

뚝배기 위로 김동회를 쳐다보았다.

생각 탓인가, 김동회의 표정이 자못 심각한 듯이 보였다.

실상 김두한은 처음부터 이상하게는 생각했었다.

간밤에 가찌도끼 바에서 헤어질 때까지도 아무 말이 없었는데,

새벽부터 아침 운동을 함께 하겠다고 달려온 것부터가 이상했다.

더구나 이 아침이 어떠한 아침인가.

종로꼬마와 망치가 헌병 보조원을 살해한 다음날 아침인 것이다.

김두한은 두 동료의 알리바이를 성립시켜 주고,

평소와 다름없는 거동을 보여주기 위해서 전날처럼 새벽 운동에 나온 것이다.

물론, 가찌도끼 바에서 박계주와 먼저 집으로 돌아간 김동회였다.

때문에 그가 그 살인 사건의 정보를 얻어들었을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혼마찌깡의 넓은 손이 어떤 수단을 강구했는지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하야시의 지령을 받고, 정보를 얻거나 무슨 수단을 강구하려고 온 것이나 아닐까,

그를 믿으면서도 충분한 경계를 하고 있는 터였다.

특히 그는 그의 허리춤에 찬 단도를 본 것이다.

주먹패가 단도쯤 차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어서 놀랄 것은 없었다.

그러나 때가 때이니만큼 칼잡이도 아닌 그가 칼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의혹은 더 짙은 상태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심각한 표정의 김동회는 입을 닫은 채 말이 없었다.

“너 오늘 아침 참 이상하구나?

오늘부터 운동을 함께 하겠다더니,

이제는 함께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칼잡이도 아니면서 도스(단도)를 품에 품고 다니고.”

작지만 예리한 김두한의 눈이,

기어코 무엇인가를 잡아내고 말겠다는 듯이 번뜩거렸다.

“사실은 말야. 나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김동회는 김두한의 예리한 시선에 쫓기듯이 대답했다.

자못 심각한 표정이었다.

“죽어?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너무 뜻밖의 말이었기 때문인지 김두한은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응. 나, 오늘로 혼마찌깡에서 발을 씻으려고 말야.”

그 한마디는 과연 충격적이었던 듯 김두한의 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열심히 쇠뼈다귀를 빨고 있던 김무옥이며 망치, 종로꼬마의 눈길이 빨리듯

김동회에게로 건너왔다.

“허어! 웬일로?”

김두한은 더 이상 물을 말이 없었다.

김동회의 대답을 기다릴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혼마찌깡이 몸에 맞지 않는 옷만 같아서 말야……,

벗어 버리기로 했어.”

“뜻밖인데…….”

“차라리 내 발에 짚신이 어울리면 어울렸지,

내 발가락에 게다 끈을 꿸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거야.”

“뒤늦게 철이 들었다, 이건가?”

“그렇대두 좋지! 누가 뭐라 해도 난 조선 사람이니까,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조선 사람이니까.

민물고기는 민물에서 놀아야지,

바닷물에서 놀 수는 없다고 깨달은 거야…….”

“거, 한번 잘 생각했구나. 하지만…….”

김동회는 성급히 김두한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너 같으면, 네가 하야시라면, 날 용서하겠냐?”

“나? 난, 떠나겠다는 놈을 붙잡지도 않고,

남아 있겠다는 자를 내쫓지도 않는 성미니까…….

단, 한번 떠난 놈은 다시 받아들이지를 않지.”

그것은 김두한의 진정이었다.

부하들이 주먹계에서 발을 씻고 나가겠다 하면,

그는 한 번도 붙잡아본 일이 없었다.

오히려 다시 주먹계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다짐을 받아두고

두둑한 전별금까지 내주는 것이 이제까지의 상례였다.

하긴 이제까지 주먹계에서 발을 씻고 떠나겠다는 자들은

대체로 연령적으로 선배급에 속하는 별 보잘것없는 고령자거나,

물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는 풋내기 똘마니급들이긴 했다.

김무옥이나 문영철, 망치나 종로꼬마 같은 참모급들이 발을 씻고 떠나겠다 하면

어떠했을까는 모른다.

“넌 참 너그러운 두목이구나. 하지만 하야시는 그렇지 않아!

일본 야꾸자의 계율은 무서워서 말야.

 죽일 거야! 죽이기 전에 죽으라고 할 거야!

바로 이 단도가 배신할 때의 셋뿌꾸용으로,

하야시가 내게 건네준 맹세의 선물이니까…….”

김동회는 옷자락을 들어올리며 허리춤의 단도를 살짝 보여주었다.

“죽음까지 각오하면서 혼마찌깡을 뛰쳐나올 것은 없지 않냐?

난, 네가 혼마찌깡에 있으니까 여러 가지로 편리하기도 한데…….”

이것도 김두한의 진정이었다.

아무래도 일본의 지배하에 있는 조선 땅에서 일본 야꾸자의 세력은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세력 안에 믿을 만한 친구 하나가 있다는 것은 첩자 하나를 적의 심장부에 박아놓은

것만큼이나 든든한 일이었다.

그러자 김동회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내가 혼마찌깡의 정보를 뽑아준대서 말이냐?

하지만 난 언제까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박쥐와 같은 생활은 할 수 없어.

나도 남자란 말야, 남자."
 
"……"
 
"한번 마음먹은 것을 꺾을 수가 없다구.

 혼마찌깡을 뛰쳐나오기로 했어.

하지만 혼마찌깡을 뛰쳐나온다고 해서,

이미 의형제를 맺은 하야시 형님을 배반하겠다는 것은 아니지.

하야시 형님과의 의리는 지켜 나갈 거야.

그런데도 하야시 형님이 날 죽이겠다면, 죽여보라지.

그까짓, 죽기밖에 더하겠어? 내가 죽거든 울 것까지는 없지만 장례식에나 나와줘.

김동회가, 이 김동회가 그래도 비겁하게 죽지는 않았다고 기억해 주고 말야.

그리고 말이다.

내가 살아서 돌아오면 이제까지보다도 더 진한 우정으로 받아줘야 해.

난, 이래 봬도 쓸모 있는 사내니까 말야.”

김동회는 자기 자신의 비장한 마음과 스스로의 용기 있는 결의에 고무되어서인지,

말의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고 격정적이 되었다.

김두한은 오히려 그 기세에 압박감과도 같은 수세에 몰린 듯한 기분마저 느꼈다.

“헛헛.”

그 긴박감을 누그러뜨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는 수더분한 웃음부터 웃었다.

그리고 김동회의 만용과도 같은 용기를 우정의 이름으로 만류해 주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격려로 고무해 주어야 할 것인가 웃으면서 생각했다.

“너, 배짱 한번 좋구나. 죽기로 마음먹었다면 무서울 게 뭐 있어?

한번 승부해 봐. 죽기 살기로 말이지.

네가 만약 죽었다면 영원히 널 기억할 거야.

용기 있는 우리 조선의 사나이라고 말이지…….

만약 하야시가 너의 배짱에 꿀려서 풀어준다면 받아주지. 받아주고말고.

앞으로 혼마찌깡에서 너에게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지.”

김두한은 김동회의 비장 어린 결의에 그 자신도 휘말리기나 한 것처럼

똑같이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격정적이 되었다.

“됐어. 이제 난 죽어도 살아도 김두한패야.”

중얼거리듯 내뱉은 김동회는 이제 더 이상 남길 말도,

다짐을 받아둬야 할 말도 없다는 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훌쩍 나가면서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동회, 동회!”

김두한은 그의 등뒤에다 소리쳤다.

그래도 무엇인가 못다 한 말이 남아 있는 듯한 생각에서였다.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비장한 각오로 떠나는 그가 아닌가.

손목이라도 잡으면서 격려할 말이 있을 것도 같았고,

만약을 대비한 충고의 말이라도 있을 듯싶어서 였다.

그러나 이미 해장국집의 얕은 문지방을 넘어간 김동회는

더 이상 나눌 말이 없다는 듯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김두한은 더 이상 불러 세우지 않았다.

뒤쫓지도 않았다.

그저 잠자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남자의 담력에 탄복한 것이었다.

“키 큰 놈치고 싱겁지 않은 놈 없다는데,

김동회 그 자식은 보통내기가 아닌데.”

종로꼬마 이상욱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