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11

오늘의 쉼터 2014. 8. 27. 20:59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11

 

 

 

별안간 무슨 생각이 들어서였던지,

종로꼬마는 시체를 번쩍 쳐들어 일으키고는 들어 안았다.

축 늘어진 시체는 생각보다 무척 무거웠다.

그러나 그 작은 몸집에 무슨 힘이 그렇게나 센지 가뿐하게 안고서는

골목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두자니,

누가 지나가다 시체의 발에라도 걸려 까무라쳐 죽으면 어쩌나 싶은 친절에서였다.

트럭 운전사가 뭣도 모르고 반대쪽으로 들어섰다가,

트럭 바퀴 앞에 시체가 나둥그러져 있는 것도 모르고 그대로 깔아뭉개면

어쩌나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체가 일찍 눈에 띄지 않도록 감추어놓자는 속마음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그는 골목 안 어느 집 대문 앞에 있는 콘크리트로 된 쓰레기통 옆에 시체를 내려놓고는 급한 걸음으로 골목을 나왔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어야 할 망치가 어디로 숨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망치, 망치.”

커다랗게 소리칠 수도 없는 종로꼬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나직이 불러보았으나,

아무 쪽에서도 대답 소리는 없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전차도 타지 않고 골목길과 골목길로만 누벼 가찌도끼 바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으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 줄로만 알았던 망치는 아직도 돌아와 있지 않은 것이었다.

“나도 몰라. 그럼, 망치 자식 아직 안 돌아왔단 말야?”

종로꼬마는 걱정스러운 듯 되물었다.

사람 하나쯤 죽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망치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 더 걱정스럽다는 듯이…….

“망치 그 자식, 밤이면 눈 뜬 소경이어서 말야…….”

김두한 역시 부하들이 살인이라는 큰 사고를 저질렀는데도,

그보다는 망치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 더 염려스럽다는 표정이었다.

“할 수 없지. 더듬어오든 기어오든 어떻게 돌아오겠지 뭐.

아, 목이 탄다. 나 맥주 한잔만 줘.”

그야, 목도 탈 것이었다.

사람을 죽여놓고 헐레벌떡 도망쳐 왔으니…….

김두한은 유리 컵에 베어 피가 난 손으로 김동회가 마시지도 않고 나갔기 때문에

비어 있는 새 컵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웬 피야? 너도 한바탕했냐?”

종로꼬마는 자기가 저지른 죄보다도 두목이 다친 손가락이 더 걱정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고는 따라준 맥주를 기분 좋게 벌컥벌컥 마시는 것이었다.

“야, 거기 누구 없냐?”

맥주를 마시고 난 종로꼬마는 입에 묻은 맥주 거품을 손등으로 뻑 문질러내며 소리쳤다.

김두한의 손의 상처에 약이라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줄 생각이었다.

“네, 부르셨습니까?”

상길이 몸보다도 목소리가 먼저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진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상길보다도, 뜻밖에도 망치였다.

“아니, 꼬마. 너 먼저 와 있구나? 죽여버릴 테야.”
 

땀을 뻘뻘 흘리며 불쑥 나타난 망치는 그러나 말투만큼 험상스럽지는 않았다.

김두한은 망치를 보자,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뭐, 죽여?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한 사람만도 너무 많아.”

종로꼬마가 웃으면서 마주 받았다.

“그래, 그 자식 정말 뻗었냐?”

망치는 헌병 보조원이 죽었건 살았건

자기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심상하게 되물었다.

“정말 갔어.”

“허어, 그 자식 되게 재수 없는 놈이군.”

망치는 몹시 숨이 차고 목이 마른지 맥주병을 거꾸로 하고, 병째로 꿀컥꿀컥 마셨다.

“그래, 너 도대체 어딜 갔다 왔냐?”

“역에. 두한 형님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고…….

그런데 그 중국 사람 무사히 빠져나갔어?”

문제는 헌병 보조원이 살았느냐 죽었느냐에 있지 않고,

그 중국인이 무사히 탈출했느냐 아니냐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망치는 물었다.

“그럼. 너희들이 그렇게 하면서까지 길을 열어주었는데……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하면 어떻게 해. 하지만 이 일을 어쩐다지?”

김두한은 두 부하들이 안전한 것을 보자 새로운 걱정거리가 떠올랐다.

물론 헌병 보조원을 죽인 일을 두고 한 말이었다.

“무얼 말야?” “왜?”

그러나 망치나 종로꼬마는 똑같이 딴전을 부리듯 되물었다.

“정말 죽었으면 사고 아냐?”

김두한은 밖에서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뭐, 까짓 것 콩밥 좀 먹지.”

종로꼬마가 태연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콩밥만 먹고 끝날 일이 아니지 않아?”

“그렇다면 달라지(목을) 뭐.”

망치는 한 손으로 자기 목을 옭아매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래, 그래. 목이 달리기 전에 실컷 마셔나 두자.

야아 상길아, 맥주 좀 가져와.

한 병 두 병 찔끔찔끔 가져오지 말고 한꺼번에 열댓 병 듬뿍 가져오란 말야.”

종로꼬마가 바깥쪽을 내다보며 커다랗게 소리쳤다.

상길이 시키는 대로 얼음 상자에 넣어두었던 듯싶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맥주병을 잔뜩 안고 들어왔다.

망치가 비어 있는 컵마다에 맥주를 채웠다.

“자, 그럼 마시자. 어차피 목이 달리면 마시지 못할 테니까.”

그는 컵을 높이 들었다.

세 사나이가 똑같이 잔을 올렸다.

그러나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손이 어쩔 수 없이 떨렸다.

망치도 종로꼬마도.

이들은 마치 개구쟁이 악동들이 개구리 한 마리를 패대기쳐 죽인 것처럼,

사람 하나를 죽여놓고도 태연한 채 가장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초조하고 불안해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김두한은 이들을 위로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나 무슨 말로 위로를 해주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맥주로 입술을 축이고 나서,

번갈아 두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하자구.

범에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라 하지 않았던가?”

김두한은 나직한 목소리로 조용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종로꼬마와 망치는 연거푸 맥주잔을 기울이기만 했다.

역시 그들도 한갓 인간인 것이다.

불안하고 초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말이지……. 뭐 너희들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말야.

이등박문을 죽인 안중근 의사를 우리는 아무도 살인자라 부르지 않지. 의사야 의사!”

김두한은 박계주로부터 들은 안중근의 이야기를 소상히 들려주면서 말을 계속했다.

“너희들이 아니면 어쩔 뻔했냐?

그 독립 투사는 붙들렸거나,

탈출에 실패했을 거야.

독립 투사를 무사히 탈출시키기 위해 그 헌병놈의 끄나풀을,

그저 보낸 것뿐이니까.

너희들은 의사이지,

살인자가 아냐!

의사는 의사답게 용기를 내자구.”

밖에서 누가 들을세라 조심스럽게 나직이 속삭이는 말이었으나,

다부진 신념이 배어 있기 때문인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탄력이 있었다.

“그래, 우리는 의사야!”

종로꼬마는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폈다.

“우리가 의사라구? 그럼 됐어!

우리 때문에 그 독립 투사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면, 됐어!

우리는 의사야, 의사! 핫핫핫!”

망치 역시 누가 밖에서 엿들을까 봐 목소리를 낮추었으나 웃음소리만은 헌걸찼다.

불안과 우울을 한꺼번에 날려보낼 듯한 웃음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예상했던 대로,

그리고 당연한 일로 헌병대는 발칵 뒤집힌 모양이었다.

쓰레기통 옆에 방치된 헌병 보조원의 시체는 물론 그곳 주민들에 의해 즉시 경찰에 신고되었다.

역시 당연한 일로 경성역 주변의 불량배며,

서대문 일대의 우범자들이 용의자로 몰려 여러 명이 붙들려 갔다는 소문이었다.

종로 경찰서에서도 우미관 골목 쪽으로 형사들을 보내,

어떤 단서라도 잡으려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이 일로 해서 종로패들을 붙들어가지는 않았다.

경찰서에서도 종로패가 경성역 주변으로 진출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다께다구미패와 협상을 이룬 후,

결코 남대문통으로 발을 뻗은 일이 없었기 때문에,

종로패에 혐의를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김두한도 그랬지만,

종로꼬마도 망치도 평소와 다름없이 백주의 거리를 어깨를 흔들며 쏘다녔고,

밤이면 여전히 술을 마시고 다녔다.

이 사건은 물론 신문에도 보도되었다.

그러나 신문의 보도 경향은 살인 사건의 내용보다도,

헌병 보조원이 열차 승객들의 검색을 하다 말고,

어떻게 해서 경성역을 떠나 봉래동 어두운 골목으로 가게 되었는가,

그 의문을 좇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듯한 인상이었다.

반드시 그래서였던 것은 아니겠지만,

이로써 사건의 핵심이 흐려지기 시작해 사건 자체가 제물에 가라앉은 듯 조용해졌다.

바로 그날 밤,

박계주와 함께 일찍 가찌도끼 바에서 자리를 뜬 김동회는

헌병 보조원의 살해 사건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것은 박계주도 마찬가지였다.

사건 자체가 그의 사주에 의해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일이 살인 사건으로까지 발전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다만, 그 독립 투사가 무사히 경성역을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것만이 대견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협조해 준 김두한이 고마울 뿐이었다.

그동안 쌓인 피로와 긴장으로 하여 좀 쉬고 싶다고 일찍 술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이내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역시 흥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부인을 시켜 주안상을 보게 했다.

그리고 김동회를 상대로 다시 한잔 기울이는 것이었다.

김동회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박계주와 대작을 하면서 이야기하면 배울 만한 것이 많기는 했지만,

한번 얘기 보따리의 끈을 풀었다 하면,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다할 수는 없었다.

그 자신, 술도 모자랐지만 밤늦게 돌아올 송채환을 기다려야 했으니까…….

“동회, 거 당신 아까 오야지, 오야지 하던데, 그 오야지가 도대체 뉘요?”

박계주가 취중 함경도 사투리를 섞으며 불쑥 물었다.

오야붕 하야시의 도움으로 김기환이 풀려나게 됐다는 말을 듣고 하는 말이었다.

“혼마찌깡의 두목 하야시를 두고 하는 말이죠.”

“하야시? 혼마찌깡의 두목?”

박계주는 취기가 올라 몽롱해진 눈으로 김동회를 바라보았다.

납득이 안 된다는 듯한 눈길이었다.

“아니, 혼마찌깡의 두목이 어떻게 당신의 오야지가 된단 말이오?”

“하야시와 저는 형제의 의를 맺은 사이입니다. 그는 …….”

김동회는 하야시가 조선인이며,

일본 협객 조직의 총본산인 도야마 미쓰루의 직계라는 얘기며,

자기 자신과 의형제를 맺은 경위,

그리고 자신의 중재로 혼마찌깡과 김두한패가 화해를 이루게 되었다는

전후 사정을 비교적 소상히 말해 주었다.

평소에 말이 많고, 주로 얘기하는 쪽에 섰던 박계주도

그 말에는 흥미가 있었던지 듣는 편이 되었다.

듣는 태도 또한 사뭇 진지했다.

“그럼 동회, 당신은 도대체 혼마찌깡과 김두한 중 어느 쪽…… 소속이오?”

박계주는 어느 쪽 패냐 물으려다가,

잠시 머뭇거리며 점잖게 어느 쪽 소속이냐고 물었다.

그 간단한 질문에 김동회는 말이 막혔다.

자신의 최대 약점이 찔린 것이다.

“인…… 인연은 먼저 하야시와 닿아……

몸은 비록 혼마찌깡에 속해 있다고는 하지만……,

마음만은 김두한에게……, 김두한에게 우정을 느끼고 있지요.”

김동회는 가까스로 말했다.

“허허, 놀랐는걸! 당신과 같은……

의리를 안다는 사나이가 박쥐와 같은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러한 당신을 받아들이고 있는 김두한도 놀랍군.”

원래가 말이 많은 박계주이기도 했지만,

빈정거리기도 잘해서 술에 취해 있을 때는 남의 비위를 확 뒤집어놓기도 잘하는 그였다.

그럴 때의 그의 입술 꼬리는 오른쪽 한편이 일그러져서 삥긋거렸다.

냉소를 지나 완전히 경멸하는 비웃음이었다.

김동회는 머리끝이 곤두서는 것과 같은 모욕감을 느꼈다.

박쥐와 같은 이중생활이라니,

이보다 모욕적인 언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벌써 술상을 뒤엎거나,

앞뒤를 가릴 것 없이 주먹이 날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분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박계주는 똑같은 어투로 빈정거리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일본 애들 패인 당신을, 나의 요진보(보디가드)로 보내다니!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고 꺼려온 것은 바로 일본 애들, 그놈들인데…….”

박계주의 입가는 여전히 실룩거리고 있었다.

이제 김동회의 머리끝은 곤두설 정도가 아니었다.

냉수를 머리로부터 끼얹힌 듯한 모욕이었다.

아니, 가래침이 얼굴에 뱉어진 듯한 철저한 모욕감이었다.

그는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술상을 뒤엎을 수도 없었고, 주먹을 날릴 수도 없었다.

“박 선생, 꼭 그렇게 말하셔야 합니까?”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무릎걸음으로 다가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내가 싫어하는 것은 일본 애들이지만,

 일본 애들보다 더 싫어하는 것은,

조선 사람이면서 일본 애들처럼 행세하고 그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들인데……,

당신이……, 김동회 당신이 그 앞잡이 노릇 하는 사람 편에 서 있다니!

내가 어리벙벙해질밖에 더 있겠소?”

이제 박계주의 입꼬리는 삥긋거리지 않았다.

그 대신 취기로 몽롱해 있던 눈빛이 이글거리며 타고 있는 듯이 보였다.

김동회는 세웠던 무릎을 내렸다.

불끈 쥔 두 주먹이 풀리면서 또한 두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혼마찌깡에서 발을 빼야겠다고 생각해 왔죠.

발을 씻으려고 생각해 왔단 말예요.

하지만, 하지만 선생은 야꾸자계의 계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모르신단 말예요!

난 두목 하야시로부터 단도 한 자루를 선물로 받았죠.

사람을 찌르라는 것이 칼이 아니라,

두목을 배신했을 때의 셋뿌꾸(切腹)용의 자살용 단도지요.”

김동회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주기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박계주로부터 받은 철저한 모욕감 때문만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계주는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그리고 냉소를 담은 듯한 입가가 또다시 삥긋거리는 것이었다.

“허어! 과연 야꾸자계의 계율은 무섭군…….

무섭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지.

더구나 배반의 보복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하지만 당신은 두목을 배반하는 것의 무서움만 알았지,

민족을 배반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모르고 있는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