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10

오늘의 쉼터 2014. 8. 27. 20:58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10

 

 

 

그러나 김동회는 김두한의 마음을 거기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김기환이 돌아온다고 해서 김두한 체제가 흔들린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경찰에 몰려 쫓겨 간 주먹계의 선배가 돌아올 수 있다면,

그저 반갑고 기쁜 일이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한 것이다.

더구나 그는 김기환에게 대단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

봉천에서 그에게 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잃었던 아편 덩어리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그의 덕분이 아니었던가.

김동회는 그 이후에도 한 차례 더 봉천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가죽 장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마다 이익을 많이 남겨 재미도 톡톡히 보았지만,

이 때문에 두목 하야시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

남은 이익금을 고스란히 하야시에게 바쳤기 때문에

그만큼 두목으로부터의 신임도 두터워졌던 것이다.

봉천에 가서는 또다시 김기환에게 신세를 졌다.

그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도움이 없었던들 가죽을 팔아서 그만큼 많은 이익을 얻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김동회 자신이 다시 봉천으로 갈 수 없어,

이노마가 대신 가기도 했다.

이때도 김기환은 이노마에게 같은 도움을 주었다.

이 때문에 김동회는 김기환에게 호감 이상의 존경심마저 갖고 있었다.

아주 그릇이 큰 두목다운 인물이라고 여겨온 것이다.

때문에 그는 두목 하야시를 만날 때마다,

김기환이 돌아올 수 있도록 간청하듯이 종용했었다.

“참, 좋은 사람이에요.”

기회 있을 때마다, 김기환을 그렇게 소개했다.

김기환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죽이고 싶도록 그를 미워한 야스다 형사가 군의 소집 명령을 받고

조선 땅을 떠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찌 됐든 하야시의 입김으로,

김기환의 지명 수배가 풀려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오야지 하야시의 도움이 컸지.

경찰에서는 소매치기 사건이나 형사 폭행 사건을 불문에 붙이기로 했단 말야.”

김두한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 까닭이 없는 김동회는 김기환이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

자기 힘이기나 한 것처럼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실제로 자기 힘이 주효한 것이기도 했지만…….

“너의 오야지가 내 세력을 견제하려고 일부러 수작을 부린 것인지도 모르지.”

김두한은 골이 난 사람처럼 쓰디쓴 듯 내뱉었다.

김동회는 다소 무색해졌다.

으레 김두한으로부터 고맙다든가,

수고했다는 치하를 들을 줄 알았더니,

뜻밖의 반응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마냥 머리가 무딘 편은 아니었다.

(김두한은 김기환이 돌아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구나.)

그 까닭을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빨리 화제를 돌려야겠구나.)

그는 재빨리 생각하면서,

바꿔야 할 화제를 열심히 궁리했으나 당혹감이 너무 심해서였던지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러는데 그 궁색한 입장을 구해 준 것은 박계주였다.

 

“아아, 오늘은 대단히 피곤한걸. 그만 마시고 일찍 들어가 쉬고 싶군.”

박계주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한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김두한은 박계주를 붙잡았을 것이다.

김동회가 합석을 했으니,

한잔 더 하자며 2차·3차로 밤늦게까지 쏘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박계주가 피곤하니 쉬고 싶다고 한 까닭을 알고도 남았다.

너무나 벅찬 일을 치르고 난 다음의 안도감은 긴장을 하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한 피로감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시죠.”

김두한은 선선히 대답했다.

어차피 그와 단둘이 더 이상의 얘기를 나눌 수 없게 된 이상,

혼자 남아 박계주로부터 들은 얘기의 감동을 되씹고 싶었다.

방금 김동회로부터 들은,

김기환이 돌아온다는 의미와 그 대책을 생각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박계주도 김두한이 말하자 또한 선선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회! 너도 오늘은 일찍 선생님 모시고 들어가보지 그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말끝의 마디마디가 뭉뚝뭉뚝한 것이, 명령조였다.

김동회도 다른 때 같았으면 그 명령조의 말을 거역했을 것이다.

한잔 더 마시고 가자고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분위기가 요상했다.

요컨대 김두한의 기분이 몹시 언짢은 모양이었다.

기분이 언짢을 때, 함께 자리하고 있다간 어차피 좋은 일은 없는 것이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시다면, 제가 일찍 모시고 들어가죠.”

김동회도 눈치 빠르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김두한은 두 사람을 밖에까지 전송했다.

그리고 다시 별실로 돌아왔다.

바 안에는 몇몇 부하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김두한은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

부하들도 두목이 부르지도 않는 터라 얼씬도 하지 않았다.

두목의 표정이 너무 심각하고 불쾌해 있는 듯싶어 조심스러워 큰소리로 떠들지도 못했다.

손님의 자리에 들지 않은 여급들도 많았으나, 김두한은 여자도 부르지 않았다.

여급들 편에서도 김두한이 부르지도 않는 터라 다가갈 수 없었다.

그녀들도 김두한이 무엇인가에 화가 나 있는 듯싶어,

조심하기는 그의 부하들과 마찬가지였다.

별실 소파에 혼자 깊숙이 앉은 김두한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박계주로부터 들은 감동을 되새겨보려 했다.

김동회로부터 들은, 돌아올 김기환에 대한 의미를 반추해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독립 운동가인 중국옷 차림의 사나이도,

두목 김기환의 모습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급했던 것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종로꼬마나 망치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냐?)

사뭇 불길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김두한의 불길한 예감은 불행한 방향으로 적중해 가는 것만 같았다.

김두한은 여전히 별실에 혼자 앉아 술도 마시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제까지 정신 없이 살아온 나날들이 갑자기 송구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동안 보내온 세월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던가.

주먹패의 두목이라는 지위를 지키기 위해 싸워온 나날이 아니었던가.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배우지 못했다는 한스러움을 술에 하소연하면서

술 덤벙 물 덤벙 살아온 것이다.

돈과 권세의 위력 앞에 맥을 못 추며 마구 주먹을 휘둘러온 것이나 아닐까.

(이제 그게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복수에 전념하리라.

그는 어금니를 짓깨물면서, 빈 맥주 컵을 힘껏 움켜쥐었다.

퍽, 하고 맥주 컵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맥주 컵을 탁자 위에다 놓고 어찌나 힘있게 짓눌렀는지,

그 단단한 유리가 속절없이 깨지고 만 것이다.

유리 조각이 어디를 찔렀는지,

손가락 끝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나 그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아니,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계주로부터 받은 감동과, 다시 눈을 뜨게 된 민족 감정의 자각으로

그의 온몸은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식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 거지?)

11시가 가까운 늦은 시간인데도 종로꼬마 이상욱도, 망치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이라면 경성역까지 다섯 번이라도 오고갈 시간이었다.

복수심과 자각의 의식, 거기에 기우와 근심의 감정까지 뒤섞이니,

그의 머릿속은 착잡해져서 천근의 무게로 내리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났다.

“두한이 어딨냐, 두한이?”

헐레벌떡 뛰어든 듯한 목소리는 어김없는 종로꼬마였다.

“나, 여기 있다.”

너무 다급한 종로꼬마의 목소리에 김두한은 반가워해야 할 것인가,

걱정을 해야 할 것인가 모르는 채 허둥거리듯 대답했다.

종로꼬마는 소리가 난 쪽인 별실 쪽으로 뛰어들었다.

이마에 기름 같은 땀이 엉겨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이제 돌아와?”

김두한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성급해져서 물었다.

그러나 종로꼬마는 이에는 대답하지 않고 되묻는 것이었다.

“망치는?”

종로꼬마는 마치 김두한이 망치를 방 안에 숨겨놓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김두한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빈 방을 뒤룩거리는 눈으로 둘러보는 것이었다.

“안 왔어? 어떻게 된 거야?”

김두한은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물었다.

그러자 종로꼬마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힘없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주거서(죽었어)!”

너무 충격적인 일이어서 제대로 말도 할 수 없다는 듯,

그는 발음조차 분명치 않았다.

“뭐라구? 망치가 죽었다구?”

뒤통수를 쇠뭉치로 강타라도 당한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그야말로 망치처럼 단단하고 다부진 망치가 죽다니!

믿으려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종로꼬마의 어깨가 처지고 풀이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후회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망치는 심한 야맹증(夜盲症)이 아니었던가.

언젠가 기꾸스이로 혼마찌깡 아이들을 치러 갔던 밤에도

그는 눈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튀지를 못하고 붙들렸었다.

또 그는 권총 앞에 약했다.

하기야 권총 앞에 약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만 기꾸스이 사건 때도

일본 애들이 권총을 뽑아들고 몇 방을 쏘아대자 맥없이 무릎을 꿇었었다.

김두한은 경성역 개찰구 입구에서 권총을 차고 승객들의 짐을 일일이 수색하고 있던

헌병 보조원의 모습을 생각해 냈다.

(차라리 김무옥이나 문영철을 보내야 했을 것을…….)

그러나 이제 와서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죽다니, 어떡하다가?”

김두한은 힘없이 물었다.

종로꼬마의 다음 대답이 그처럼 두려울 수가 없었다.

“아냐, 그저 한 방씩 가볍게 놨을 뿐인데…….”

종로꼬마는 두목으로부터 지독한 야단을 맞을 것으로 각오했던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사죄하듯이 말했다.

“뭐, 뭐라구?”

김두한은 허기 찬 듯 되물었다.

어쩐지 얘기가 자신의 불길한 예감과 빗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짜아식이……, 권총을 뽑아들기에 발길로 한 방 차고…… 조금 쳤을 뿐인데……,

그리고 망치가 그저 주먹 한 방을 놨을 뿐인데…… 죽었단 말야…….”

종로꼬마는 변명이라기보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라도 하는 듯 울상이 되어서 말했다.

김두한은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죽었다는 것은 망치가 아니라,

헌병 보조원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죽음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때리고 싸워오기는 했었다.

많은 부하들 가운데는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붙잡혀 감옥에도 가고,

만주나 중국으로 도망을 친 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두한 자신이 사람을 죽여본 일도 없었지만,

부하들에게 사람을 죽이도록 명령한 일도 없었다.

주먹패의 거물쯤 되면 사람을 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병신을 만들망정 살인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치는 요령이 아닌가.

그러나 어찌 됐든 사람을 죽였으니 살인자다.

미구에 경찰의 손이 뻗칠 것은 뻔한 일이었다.

더구나 피살자가 헌병 보조원이 아닌가.

(어쩐다지?)

김두한은 암담해지는 심정을 느끼면서,

그러나 표정은 싸늘해 보일 만큼 침착했다.

(사람을 죽였으니 만주나 중국 쪽으로 도망가게 할 뿐이다.)

“그래, 그럼 망치는 어떻게 됐어?”

실상 이날 밤,

종로꼬마나 망치는 헌병 보조원을 죽일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가 권총을 뽑아들었으므로, 종로꼬마는 본능적으로 뛰어올라

권총을 든 팔뚝을 걷어찼을 뿐이다.

어떻게 권총을 뽑아든 놈을 보고,

그가 권총을 쏘도록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내친 김에 그의 급소를 한번 걷어찬 것은 자위 수단인 동시에,

싸움꾼의 순서였을 따름이었다.

나가떨어진 헌병 보조원이 알맞게 망치의 품에 안기듯 쓰러진 것은 그의 지독한 불운이었다.

망치인들, 나 한 방 놔주시오 하고 떨어져 온 놈을 그대로 풀어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의 멱살을 틀어쥐고 보기 좋게 한 방 후려친 것도 싸움꾼의 당연한 순서에 지나지 않는다.

헌병 보조원은 트럭 뒷바퀴 아래로 곤두박질치듯 나가떨어졌다.

거기서 두 사나이는 냅다 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망치는 지독한 야맹증인 것이다.

제대로 뛰지를 못했다.

종로꼬마는 망치를 부축하듯 하며, 손을 붙들고 뛰었다.

그러다가 남대문 쪽으로부터 일단의 사람들이

바로 봉래동 골목 쪽을 향해 떠들썩하게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둘은 역시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의 이목을 두려워하는 것은 범죄자의 공통 심리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반대편 경성역 쪽은 그래도 불빛이 밝혀져 있어,

야맹증인 망치가 도망치기 수월할 것 같아서였다.

이들은 다시 헌병 보조원이 나자빠져 있는 트럭 앞을 지나갔다.

망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종로꼬마의 눈에는 나자빠져 있는 보조원의 모습이 분명하게 보였다.

생명이 없는 검은 물체처럼 여전히 죽은 듯 나가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저 자식 정말 죽은 것 아냐?”

그가 죽었거나 살았거나 그냥 내버려두고 빨리 도망쳐야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종로꼬마는 어쩐지 그의 생사를 확인해 보고 싶은 듯한 야릇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잡은 망치의 손을 놓고, 헌병 보조원 앞으로 다가갔다.

“여보, 여보.”

그는 죽은 듯 움칫도 하지 않는 자를 일부러 흔들어보기까지 했다.

가해자는 자기 자신이지만,

마치 지나가는 행인이 술에 취해 자빠져 있는 취객을 흔들어 깨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러나 죽은 자는 죽은 자였다. 움칫도 하지 않았다.

귀를 그의 코앞으로 디밀어보았다.

들려야 할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죽었구나!)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전혀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냉정해지는 자기 자신을 느꼈다.

(이제 나도 사람을 죽여본 이력을 갖게 되었구나.)

하지만 이 자식이 죽은 것은 내가 찌른 급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망치가 놓은 한 방 때문이었을까,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자기가 찌른 급소 때문이었으면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도망을 치다 말고 하나의 작업까지 시작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