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6

오늘의 쉼터 2014. 8. 27. 20:55

제3부 黑龍의 失墜-자각 6

 

 

 “……중요한 것은 장군이 살아 계시든 돌아가셨든,

장군의 뜻을 계승한다는 바로 그것이란 말이오.”

박계주는 선언하듯 말끝을 여몄다.

너무나 감명을 받아서인지, 충격을 입어서인 것인지,

김두한은 아랫입술을 아플 만큼 짓깨물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장군의 뜻이 무엇이었겠소? 자나깨나 조선 독립, 그것뿐이셨소.

살아 계시든 이미 돌아가셨든 조선 독립, 그것뿐이셨단 말요…….”

“음!”

김두한은 신음과도 같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장군의 그 뜻,

그 정신을 계승하는 일에 아들인 김두한이 앞장서지 않고 누가 먼저 선단 말요?”

박계주의 눈이 번뜩이는 것만 같았다.

“나도……, 왜놈들이 미워서…… 쪽발이놈들이 미워서, 흠씬 두들겨패 주고 있단 말예요.”

평소에는 김두한도 구변이 좋았으나,

너무 가슴속이 복받쳐 올라서인지 더듬거리며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흠씬 두들겨팬다? 사람을 개 패듯 패는 것은 감정이지 사상이 아니란 말야.

정신이 있어야지. 독립 정신이 깃들여 있지 않은 그저 감정만의, 증오만의 구타는

거리의 불량배의 폭행일 뿐이지 사상이 아니란 말야. 독립 정신이 깃들여 있다면,

설령 살인을 한다 해도 그건 신념이며 사상이지 살인이 아니란 말요.

안중근 의사(安重根義士)가 이등박문(伊藤博文)을 하얼빈 역두에서 쏘아 죽였어도,

우리 민족은 그 어른을 의사로 받들어 모시고 있지 살인자로 몰지는 않지 않소?

그 어른을 살인자로, 범법자로 모는 것은 일본놈, 일본놈들뿐이지.”

박계주도 스스로의 말에 고무되어 흥분이 된 듯 말의 속도가 빨라졌다.

“그 일본놈들은 조선을 먹고, 중국 대륙을 먹고도 모자라서 대동아 번영권(大東亞繁榮圈)이란

허울 좋은 이름 아래, 또다시 전쟁을 일으켰단 말야. 일본이 끝내 전쟁에 이길 것인가, 어떨까,

내가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라 하지만 일본이 이기면 이길수록, 조선 독립의 길은 그만큼

멀어지는 게 아니겠어?

아, 조선 독립의 길이 그만큼 멀어져 가는데…….

일본이 진주만을 까부수고, 싱가포르를 함락했다고,

우리가 미쳐 날뛸 게 뭐냔 말야.

아버지 김좌진 장군은 조선 독립을 위해 피 흘려 싸우시고 죽으셨을지도 모르는데,

그 아들은 독립의 길이 그만큼 멀어졌는데,

뭐가 좋다고, 덴노헤이까 반자이를 부르고,

군가를 합창하느냐 말야.”

격류가 넘쳐흐르는 듯 거침이 없는 달변, 능변이었다.

진정과 격정이 깃들여 있는 말만큼 달변, 능변이 어디에 있겠는가.

“알겠습니다, 선생님. 저도 아버님의 뜻을 이어받아 조선 독립을 위해 몸 바쳐 싸우겠습니다.

무엇이 독립에의 길이고, 어떻게 싸우는 것이 조선 독립의 길인가 가르쳐주십시오.

앞으로 선생님을 형님으로 모시고,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김두한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고 박계주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박계주는 껄껄, 웃기부터 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매끈하지 않은, 껄끄러운 웃음소리만 같았다.

 

“헛헛헛! 날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난 주먹패의 형님이 될 자격이 없는 몸이라오.

독립에의 길을 함께 연구하고 생각하는 선생의 길은 갈 수 있어도…….”

그 말은 곧 박계주의 작가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의 발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오기가 있는 박계주였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독립의 길을 함께 생각하는 선생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김두한은 먼저 두 손으로 박계주의 손을 잡았다.

박계주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서며 김두한의 손을 꽉 마주 잡았다.

순전히 펜대와 자막대기(편집을 위한)만 휘둘러온 손과,

거리의 주먹계 두목과의 손이 잡은 기묘하지만 굳은 악수였다.

좀 얘기를 비약하지만 이 악수 이후,

박계주와 김두한의 우정은 광복 이후까지 오래오래 지속되었다.

박계주를 사상적인 지주로서 받아들였다는 것은 김두한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주먹계의 두목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은 박계주로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박계주가 차츰 대주가로 변모하고 성격이 다소 난폭해진 것도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서울 장안 어디를 가서 주정을 부리든,

다소의 난폭한 실수를 저질러도,

언제나 그의 뒤에서 주먹계의 두목 김두한이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두목 김두한이 그를 선배, 선생으로 모시는 터에 그 부하들이

그의 앞에서 오금을 못 펴고 쩔쩔맸던 것은 오히려 당연했는지 모른다.

이야 어찌 되었거나 이날 밤,

김두한은 박계주를 요정 명월관으로 모셨다.

사상적인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은 자축연이라 할 것이다.

술자리는 미리 예약도 해놓았지만,

김두한의 동료나 부하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김두한이 삼천리사로 박계주를 모시러 갔다.

두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주먹패들은 요정 사람들에게 단단히 일러 놓았다.

“오늘 밤은, 오야붕이 가장 존경하는 귀빈을 모시고 온단 말야. 특별히 잘 모셔야 해!”

많은 기생들을 비롯한 요정 사람들이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나타날 귀빈을 기다렸다.

주먹계의 두목 김두한이 가장 존경하는 귀빈이란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거기에 김두한이 정말 박계주를 모시듯 하며 명월관에 나타났다.

그다지 체구가 작지는 않았지만, 김두한에 비하면 사뭇 빈약한 박계주가

김두한의 안내를 받으면서 명월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놀란 것은 기생들이었다.

“어머나! 박 선생님이 웬일이세요?”

“박계주 선생님이 오라버님(김두한)과 함께 오시다니.”

기생들이 박계주를 에워싸듯 하며 한편으론 놀랐고, 한편으론 반겼다.

《순애보》의 작가 박계주가 주먹계 두목의 가장 존경하는 귀빈으로

나타날 수 있는 수수께끼를 풀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명월관 기생들이 박계주를 보고 놀란 것 이상으로,

김두한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김두한은 기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서울을 대표할 만한 대요정 명월관 기생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이 주먹계의 두목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소상하게 밝힌 대로다.

아무리 화류계의 기생이라 하지만 여자로서 존중했고, 돈에 인색하지 않은 호방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계주와 함께 요정으로 들어서자 판이 달랐다.

박계주의 인기도는 김두한 자신이 무색해질 만한 것이었다.

그야, 오야붕의 귀빈으로 각별히 모시라는

주먹패들의 사전의 귀띔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명월관을 처음 찾는 손님 같지 않은 단골손님 같은 친숙한 환대가 아닌가.

기실, 그 무렵 박계주는 명월관 출입이 잦았다.

스승인 이광수(李光洙)를 위시해서 방인근·박태원·이태준·김동인 등

선배 작가를 모시고 드나들기도 했고,

삼천리사 사장인 김동환과 함께 오기도 했었다.

그 시절의 문사들은 호연(浩然)의 기가 있어서,

술을 마시는 데도 쩨쩨하지가 않았다.

명월관 같은 대요정은 단골손님으로도 앞자리를 차지할 만했다.

문사에 대한 기생들의 존경심도 사뭇 높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박계주는 젊고 미남이며 인기 절정의 작가였으므로,

그를 향한 그녀들의 환대가 대단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예비 지식이 없었던 김두한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으리으리한 요정으로 모시고 와 은근히 기라도 꺾어볼 생각이었던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새삼 박계주의 존재를 재확인한 듯싶었으며,

그러한 그를 선배 선생으로 맞을 수 있게 된 것을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김두한이 박계주를 앞장세우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주먹패들이 총기립을 하며 맞았다.

김무옥·문영철·종로꼬마·망치·정진영·돼지·팔찌·심청·머리 빠진 개고기·다루마찌·장대·

잔잔바라바라 등 내로라 하는 우미관패들이 총집결되어 있었다.

박계주는 대장정들의 앞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어두컴컴한 숲 속을 헤치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양옆이 가로막힌 협곡의 바위 틈을 헤집고 가는 느낌이었다.

그가 김두한과 함께 상석에 앉게 된 것은 물론이다.

“모두들 인사드려. 내가 앞으로 선생님으로 모실 소설가 박계주 선생님이셔.

알지? 《순애보》를 쓰신 소설가시란 말야.”

김두한은 《순애보》란 말에 한층 힘을 주며 말했다.

그 대목에서 힘 주어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사뭇 자랑스러운 느낌이었다.

바위 같고, 숲과 같은 장정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종로꼬마 이상욱입니다.

어제는 그만 몰라뵙고 큰 실례를 했습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고…….”

종로꼬마가 먼저 사과의 말을 하자,

김두한이 그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형님이 아냐, 선생님이시지.”

“아, 선생님! 알겠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체로 인간이란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남이 갖고 있으면 부러워한다.

그것은 비단 물질에 한한 일은 아니다.

가령 열창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그 가수를 부러워하고,

열연하는 배우의 연극을 보면 그 배우를 부러워하며,

감명받은 소설을 읽으면 그러한 소설을 쓸 수 있는 소설가를 부러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러한 가수, 그러한 배우, 그러한 소설가가 되어봤으면 하고 선망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그러한 소질이나 재능이 있거나 말거나 그저 꿈을 한번 가져보는 것이다.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남이 갖고 있으면 부러워하는 마음은,

싸움을 밥보다 좋아하는 주먹패도 마찬가지다.

김두한은 실로 박계주가 부러웠다.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그는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배움’이었다.

보통학교 1학년의 학력밖에 갖고 있지 못한 그는,

어엿한 고등교육을 받고, 진짜 선생님으로 교편을 잡았으며

잡지사의 편집국장으로 있는 그가 부러웠다.

무엇보다 《순애보》 같은 소설을 쓸 수 있는 그가 우러러 보일 만큼 부러웠다.

그러한 소설을 쓸 수 있는 소설가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러나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남이 갖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소설가인 박계주도 마찬가지였다.

김두한이 부러웠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한 힘을 갖고 있었다.

힘뿐만 아니라 무서운 싸움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힘과 싸움의 실력이 있어 주먹패의 두목 자리에 오른 것이다.

우락부락하고 무지막지한 주
먹패·싸움패를 다스릴 수 있는 두목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그가 그처럼 부러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막강한 힘을 갖고, 나중에야 감옥이나 유치장에 가거나 말거나,

수틀리면 기분 내키는 대로 남을 후려팰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남자다운 후련한 일일까.

무식하되 의리를 생명보다 중히 여기는 주먹패들.

그 주먹패를 눈짓 하나 손끝 하나로 다스릴 수 있는 두목,

그 두목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역시 음악가의 소질이나 재질도 없이 음악가가 한번 되어봤으면 하는 소년의 꿈과 같은 것이었다.

김두한이 박계주를 부러워하고, 박계주가 김두한을 부러워하는 것은

질은 같지 않지만 공통의 것이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곧 존경의 마음과 통하는 것일 수 있었다.

이날 밤, 명월관에서 가진 주연은 김두한이 지성을 다한 일대 향연이었다.

교자상이 휠 정도로 진수성찬이 올랐대서가 아니다.

미희·가희가 그들을 에워싸고 있대서도 아니었다.

서로 부러워하고 서로 존경하는 남자와 남자가,

가슴을 열고 술잔을 기울인 자리가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 박계주는 김두한에게 독립 사상을 불어넣었으며 김두한은

이를 받아들여 투쟁을 행동으로 옮길 일만이 남은 것이었다.

실로 이를 다짐하는 향연이었던 것이다.


(독립 운동을 한다?)

김두한은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조선 민족으로 태어나서 그까짓 왜소한 일본놈들에게 짓밟히며

산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의 쇠사슬에서 풀려나야만 한다.

거기까지는 안다.

박계주로부터 독립 사상을 주입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당위성만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대로 민족 본능이라 할 만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독립 투사이신 아버지 김좌진 장군의 뜻을 이어받아,

실질적으로 독립 투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도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투쟁을 해야 하는가,

생각하면 젊은 가슴만 뒤끓을 뿐 굴뚝 속을 들여다보듯 암담하기만 했다.

그럴 때면 김두한은 박계주가 보고 싶었다.

삼천리사 편집국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좁은 종로 바닥인 것이다.

대개 술집에서 만났다.

박계주가 종로 뒷골목 어디에서 술을 마시든지 김두한은 훤히 알고 있었다.

부하들에게 그가 어디에서 술을 마시든 보고하라고 명령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박계주가 술을 마시고 있는 술집의 분위기가 좋으면, 김두한이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부하를 시켜 박계주를 모셔오게도 했다.

박계주는 영 어울리기 거북한 자리가 아니면, 찾아온 김두한을 기꺼이 맞아들였다.

김두한이 모시는 자리에 가는 것을 마다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김두한이란 사나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최고의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박계주와,

어쩔 수 없이 무식할밖에 없는 김두한과의 대화가,

조화를 이루는 순조로운 것이 될 수는 없었다.

대체로 박계주가 일방적으로 많은 말을 했다.

박계주는 원래 말이 많은 편의 사나이였다.

한번 말문이 열렸다 하면 앉은자리에서 두 시간도 좋고 세 시간도 좋았다.

그만큼 입심이 좋았던 것이다.

이에 질린 가까운 친구는 “이제 상권(上卷)은 그쯤 하고 하권(下卷)은 다음번에 하자”고

중단시킬 정도였다.

그러나 김두한은 박계주의 말을 가로막는 일이 없었다.

한일합방이 어떠했다느니 민비 시해 사건의 경위가 어떠했으며,

영친왕(英親王)·고종황제(高宗皇帝)에 대한 이야기 등 평소에 들어 보지도 못한

신기한 이야기를 지치지 않고 들려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대로 김두한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만 같았다.

“싸움에 대해선 나보다 더 잘 알 것 아냐?

전쟁도 싸움과 마찬가지거든. 최후로 이기는 자가 이기는 것이지……,

서전에 후이우찌(기습 공격)로 좀 이겼다고 해서 끝내 이길 수 있다고는 할 수가 없지.

지금 일본이 이기고 있다고 우쭐대고 있지만,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 수 있을까,

그건 뻔한 일이지…….”

이런 말을 할 때면 주위를 꺼리는 듯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그러면서도 목소리 속에는 뼈가 있고, 심지가 있었다.

이렇게 해가면서, 그들의 우의는 날이 갈수록 두터워갔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이미 깊숙이 접어든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