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86. 저런인생(1)

오늘의 쉼터 2014. 8. 27. 18:32

386. 저런인생(1)

 

 

(1367) 저런인생-1

 

 

 조철봉이 한랜드에 입국한 다음날 아침,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뉴서울의 중심지역 빌딩안은 긴장감 속에서도 활기띤 분위기로 덮여있었다.

조철봉은 한랜드의 통치자였지만 소탈했다.

 

아직도 건설중인 각 지역은 그야말로 눈에서 불이 나도록 바쁘게 움직였는데 조철봉은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았다.

 

공사와 운영의 큰 그림만 결정해주고 나머지는 책임자에게 일임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문성이 부족한 최고 경영자의 자세라고 조철봉은 믿었다.

 

밑바닥에서부터 정상에 오른 경영자의 대부분이 이런 경영 방침을 유지하고 있기도 했다.

과장에서 부장으로 진급이 되었을 때는 과감히 과장 때 닦아서 굳혀온 기반을 넘기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부장의 직위에 맞는 업무를 스스로 개발하여 익혀야 한다.

 

과장 때 뜯어먹던 리베이트를 놓치기 싫어서 과장하고 티격대는 부장은 대부분 그자리가 끝이었다.

직위가 높아질수록 그만큼 희생과 도전이 따르는 법이다.

 

사장 때 큰 건을 결재하는 것이 부담과 함께 낙이었지만 지금,

 

한랜드를 책임진 조철봉은 다 내놓았다.

 

한국에 부동산 두어개와 가족이 먹고살 만큼의 재산만 남겨놓고 모든것을 한랜드에 다 쏟았다.

그러고는 경영을 전문 경영인 세명에게 맡긴 것이다.

 

그들은 건설책임자 이동호와 기획책임자 김재석, 그리고 운영책임자 강상규였다.

 

사기꾼 조철봉이 남한보다 큰 대륙의 지배자가 될 줄은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한랜드는 한국인의 이상향이 될 것이었다. 즐거움이 다 있는데다 이곳은 삶의 희망이 넘쳐났다.

 

욕망을 채워주면서도 퇴폐하지 않았으며 관리자는 헌신적이었다.

 

지금 조철봉의 앞에 선 사내가 바로 그 모범이 될 것이다.

59세의 유정훈은 한국에서 근로복지공단 임시직을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마친 후에

 

한랜드로 이주했다.

 

한랜드에는 정년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그보다 한국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랜드로 이주한 유정훈은 곧 뉴서울시의 제5소방대에서 관리직을 맡게 되었는데

 

이틀전에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소방대원에게 지급될 월급을 도난당한 것이다.

사무실에는 유정훈외에 관리직 사원 두명이 더 있었지만

 

잠깐 모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조철봉은 그늘진 표정으로 서있는 유정훈을 보았다.

 

유정훈의 목에는 흰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그날밤 숙소에서 목을 매었다가 소방대원에게 발견되어 자살이 미수로 그친 흔적이었다.

“앉으시지요.”

조철봉이 자리를 권하자 유정훈은 조심스럽게 앞쪽에 앉았다.

 

방에는 조철봉과 최갑중, 그리고 한랜드의 기획책임자인 김재석까지 셋이 둘러앉아 있었다.

 

조철봉이 다시 유정훈을 보았다.

 

유정훈의 사건을 듣고 조철봉이 부른 것이다.

“유과장님의 책임감은 이해합니다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었을텐데요.”

조철봉이 부드럽게 말하자 유정훈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그건 제 영웅심이었습니다. 한랜드의 역사에 남고 싶었지요.”

그러고는 유정훈이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한랜드 공무원으로 업무에 책임을 지고 자살한 첫 사례로 말씀입니다.

다시 쓴웃음을 지은 유정훈이 손으로 뒷머리를 만졌다.

“하지만 미수에 그쳐 버렸으니 모양만 사납게 되었습니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둘러앉은 최갑중과 김재석의 표정도 굳어져 있다.

 

한랜드에는 이런 공무원이 필요한 것이다. 

 

 

 

(1368) 저런인생-2

 

 

 

 

유정훈은 일남일녀의 자식을 각각 분가시켜 한국에 남기고는 단신으로 한랜드에 이주했다.

 

5년전에 아내를 암으로 잃었기 때문이다. 조철봉은 유정훈의 과거사와 환경을 이번 자살사건에

 

연결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영웅이나 의인은 몇사람 남지 않을 것이었다.

 

내일부터 유정훈은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을 지려고 했던 한랜드의 공무원으로 선전될 계획이었다.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유 과장께서 한랜드 행정부의 관리실장을 맡아 주시지요. 부탁합니다.”

정색한 조철봉이 앉은 채로 머리를 숙여 보였다.

“잘 아시겠지만 행정부의 관리실장은 한랜드 공무원을 관리하는 요직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당황한 유정훈의 얼굴이 노랗게 굳어졌다가 금방 붉어졌다.

 

그때 김재석이 거들었다.

“한랜드 운영본부에서 합의된 사항입니다. 어려우시겠지만 받아들여 주시지요.”

“저, 저는.”

유정훈이 겨우 말을 꺼냈다가 다시 막혔다.

 

그러고는 침을 삼켰는데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앞쪽까지 들렸다.

 

조철봉은 유정훈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한랜드는 유정훈 같은 공무원을 필요로 한다.

 

조철봉이 예상했던 대로 유정훈은 제의를 받아들이고는 방을 나갔다.

“한랜드 공무원의 표상이 될 것입니다.”

유정훈이 방을 나갔을 때 김재석이 말했다.

 

그가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유정훈씨는 공무원 생활을 33년동안 했지만 구청 계장이 최고위직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공단의 임시직으로 근무하다가 퇴직을 했지요.”

조철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한랜드 행정부 관리실장은 정부 국장급이다.

“우리가 운이 좋은 거요.”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한랜드 개국 초창기에 유정훈씨 같은 분을 만난 것이 말입니다.”

유정훈의 사고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 될 것이다.

 

머리를 돌린 조철봉이 잠자코 앉아있는 최갑중을 보았다.

“이런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 처음 시작이 중요한 거야.”

“예, 알겠습니다.”

갑중이 머리를 숙였다.

“한랜드가 새로운 한국이 되어야 할테니까요.”

조철봉을 대신해서 한랜드에 남아있던 갑중은 그동안 여위었다.

 

갑중 또한 그동안 모은 재산을 모두 한랜드에 쏟아부은 것이다.

 

그날밤 조철봉과 갑중은 한랜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한정식당에 들러 식사를 했다.

 

홀은 손님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대부분이 관광객이었다.

 

방에 들어가 둘이 마주 앉았을 때 갑중이 말했다.

“나이트클럽으로 모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룸살롱에 가는 것도 그래서 제가 오늘은.”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갑중이 멋쩍게 웃었다.

“곧 들어올테니까 보시죠.”

“뭐가 말이냐?”

정색한 조철봉이 묻자 갑중도 정색했다.

“여자 말입니다.”

“무슨 여자?”

“형님을 오늘밤 오실 여자지요.”

“이 자식이.”

했지만 조철봉은 곧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져도 이렇게 변함없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심복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물론 그만큼 절제도 해야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럴 단계도 아니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한정식 밥상을 받쳐든 두 여자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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