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84. 이런인생(11)

오늘의 쉼터 2014. 8. 27. 18:18

384. 이런인생(11)

 

 

(1362) 이런인생-21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경찰서 정문 앞까지 배웅을 나온 최 형사가 조철봉을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짜고 하는 일이지만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어서 태도가 정중했고 자연스러웠다.

“수고하셨습니다.”

조철봉이 손을 내밀어 최 형사와 악수를 했다.

 

옆에 서 있는 한미옥이 덩달아서 머리를 숙여 보였지만 아직도 몸 둘 바를 모르는 표정이었다.

 

미옥은 최 형사한테서 30분동안 조사를 받았는데 백종수에 대해서 낱낱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백종수가 협박용으로 찍어 놓았던 테이프 세 개까지 감상하고는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말도 못했다.

 

최 형사는 미옥에게 종수한테서 피해를 입은 사실을 묻더니

 

더 조사를 해야 되겠다고 까탈을 부리다가 조철봉이 들어서자 금방 인계를 해준 것이다.

조철봉에게 생색을 내도록 해준 것이며 최 형사는 수배자를 덕분에 잡게 되었으니

 

바로 상부상조한 셈이다.

 

조철봉이 미옥을 데려간 곳은 경찰서 근처의 전통찻집 안이었다.

 

한약재를 달여 파는 곳으로 경찰서 근처에는 이런 찻집들이 많다.

 

구석 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을 때 조철봉이 부드럽게 말했다.

“이러다간 신문에 날 거야, 틀림없어.”

미옥이 눈만 껌벅거렸고 조철봉은 입맛을 다셨다.

“어쩌다가 그런 놈을 알게 되었지?

 

그놈은 다른 여자하고 찍은 테이프를 세 개나 더 갖고 있다는 거야.”

미옥도 최 형사한테서 들었다.

 

이제 긴장이 풀리면서 부끄러움도 느끼게 되었는지 미옥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종업원이 들어왔으므로 조철봉이 주문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 둘이 되었을 때 말을 이었다.

“정리해. 애들을 애 아버지한테 넘기는 조건으로 재산 다 넘겨주고 몸만 오란 말야.

 

그까짓 재산 몇푼 챙긴다고 애들까지 맡긴, 애 아빠한테 박절하게 군다면.”

우뚝 말을 멈춘 조철봉이 미옥을 보았다.

 

그러자 시선을 내리고만 있던 미옥도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마주 보았다.

 

그때 조철봉이 차분하게 말했다.

“나 실망시키지 마, 미옥씨. 알았어?”

“응, 알았어.”

미옥이 머리를 끄덕였다.

 

두 눈에 물기가 가득 고여 있었다.

“시킨 대로 할게.”

“재산 다 넘겨줘. 그리고 몸만 와.”

“알았다니까.”

“난 수백억대 재산이 있어.

 

우리가 결혼하면 다 미옥씨와 우리 자식들 몫이 될 거라고. 알았어?”

“알았다니까?”

“돈 1백만원이라도 갖고 온다면 난 당신을 다시 안볼 거야. 난 그런 여자 싫어.”

“글쎄, 알았다니까 그러네.”

“일주일 내로 정리해.”

“일주일?”

놀란 듯 미옥이 눈을 크게 떴을 때 조철봉이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일주일 후부터는 나하고 살자고.

 

우선 별장에서 같이 있다가 한달쯤 후에 방배동 드림빌라로 옮기자고.

 

거기 1백20평짜리 내 아파트로 가는 거야.

 

그동안에 나하고 가구도 사고 장식까지 될 테니까 바쁠 거야.”

“방배동 드림빌라?”

놀란 미옥의 눈이 커졌다.

 

미옥도 말만 들었지 아직 가 보지도 못했다.

 

드림빌라는 최근에 신축된 서울 최고급 빌라 중의 하나인 것이다.

 

1백20평이면 80억이 넘는다고 들었다.

 

궁전같은 집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나하고 입주하는 거지. 그러니까 서둘러. 일주일 안에 끝내란 말야.” 

 

 

 

 

(1363) 이런인생-22

 

 

 

놀란 김기중이 탁자 위에 놓인 서류를 보았다.

 

오전 10시반, 아이들은 학교에 갔고 집안에는 둘뿐이다.

“이게 뭐야?”

겨우 김기중이 물었을 때 한미옥이 짜증 난다는 표시로 혀를 찼다.

“뭐긴 뭐야? 슈퍼 양도서류하고 아파트 양도서류, 그리고 여주 땅 양도서류야.”

미옥이 서류 밑에서 통장 10여개를 꺼내더니 쪽지 한 장을 옆에 놓았다.

“이건 통장이고 비밀번호야, 도장이 서랍에 있는 건 알지?”

“알아.”

마른 침을 삼킨 기중이 미옥을 보았다.

“이걸 다 어쩌려구?”

“어쩌긴? 다 당신한테 양도한 거지.”

차갑게 말을 뱉은 미옥이 이번에는 노란 대형 봉투 하나를 옆에 내려 놓았다.

“이건 합의이혼 서류야,

 

애들을 당신이 맡아 키운다는 조건으로 내가 모두 당신한테 양도하는 것이라구.”

“아니, 그러면….”

말을 멈춘 기중이 다시 침을 삼켰다.

 

애들은 본래부터 자신이 맡으려고 했다.

 

그런데 미옥이 재산을 다 내놓다니,

 

애들만 주고 다 가져간다고 했던 미옥이다.

 

기중의 시선이 확인하듯 서류를 훑어보았다.

 

다 있다.

 

슈퍼를 하고 있는 건물, 여주 땅, 아파트까지 모두 양도를 해놓은 것이다.

 

기중의 인감도장이며 주민증까지 집안에 다 있는 터라 명의 변경을 하는 건 쉬웠을 것이다.

 

거기에다 통장까지 모두 넘기다니,

 

그렇다면 합계 25억이 넘는다.

“당신은 어떻게 하려구?”

기중이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을 때 미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애들 들어오기 전에 끝내자구.

 

나하고 법원에 갔다가 공증인 사무소,

 

동사무소까지 들러서 오늘 하루에 일 다 끝내잔 말야.”

그러더니 미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래도 또 미련이 있는 거야?”

“아니, 미련보다도….”

“그럼 일어나, 어서.”

미옥이 차갑게 말을 뱉었다.

“내 맘 바뀌기 전에 말이야.”

기중이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있는가?

 

얼떨떨한 중에도 조철봉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러자 기중의 마음도 급해졌다.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할 테니까 택시를 타자고 해서 둘은 먼저 법원부터 들렀다.

 

미옥이 서류를 다 꾸며놓은 데다 수속까지 끝내놓은 터라 기중은 그냥 따라 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 오후 4시가 되었을 때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것으로 둘의 일은 종결되었다.

 

그동안 둘은 다섯시간이 넘도록 같이 다녔지만 말은 몇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다 점심 생각이 없어서 식사도 거르고 주스 한잔씩을 마셨을 뿐이다.

“이제 집에 들어가 봐.”

하고 동사무소 앞에서 미옥이 말했으므로 기중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선뜻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때 미옥이 기중을 보았다.

 

그늘진 표정이었고 눈동자가 깊게 묻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헤어져.”

“아니, 그럼….”

“당신 없을 때 어제 내 물건들은 다 옮겨놓았어.”

“……”

“어젯밤 아이들한테도 다 작별했고, 물론 내 속으로 했지만.”

“……”

“아이들 생각나면 만나러 올게.”

“그야….”

“그동안 미안했어. 잘 살아.”

하고 미옥이 손을 내밀었으므로 기중은 엉겁결에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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