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83. 이런인생(10)

오늘의 쉼터 2014. 8. 27. 18:16

383. 이런인생(10)

 

 

(1360) 이런인생-19

 

 

 

여관 옥상방은 장기 투숙객 중에서도 신용이 좋고 주인의 호감을 산 인물한테 주어졌는데

 

백종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백종수의 매너는 깔끔했으며 신용도 좋았으므로 지금 넉달째 옥상방을 사용하는 중이었다.

 

행운여관의 옥상방은 비록 시멘트 바닥이지만 사방 10여미터의 마당도 있는데다 옆쪽에는

 

운동기구도 놓여졌고 집 안에는 화장실과 주방, 응접실에다 침실까지 구분되어 있어서

 

단독주택이나 같았다.

그래서 백종수는 월 30만원으로 단독주택에 세를 사는 셈이었다.

 

백종수가 여관 현관으로 들어섰을 때는 오후 4시반이었다.

 

깔끔하게 이발은 했지만 종수의 표정은 어두웠다.

 

한미옥으로부터 난데없는 대접을 받았기 때문인데 이발소에서 마음을 굳혔다.

 

한미옥이 다니는데는 샅샅이 꿰고 있는 터라

 

오늘 저녁부터 미옥을 잡으러 다니기로 작심을 한 것이다.

 

미옥이 변심했다면 테이프를 들이대고 한밑천을 뜯어낼 작정이었다.

 

미옥과 정사를 하면서 찍어 놓은 테이프만 세통이다.

“잠깐 봅시다.”

갑자기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종수는 몸을 돌렸다.

 

형사다.

 

사내를 본 순간 종수의 몸이 굳어졌다.

 

종수쯤 되면 형사는 첫눈에 알아본다.

 

머리를 돌린 종수는 옆쪽 비상구에서 나오는 또 한명의 사내를 보았다.

 

막혔다.

 

그때 종수의 표정을 살핀 사내가 빙그레 웃었다.

“백종수, 빠져나갈 길 없어.”

“왜 이러는거야?”

종수가 날카롭게 소리쳤지만 목소리 끝이 약해졌다.

 

기가 꺾였다는 증거였고 그것을 형사들이 모를리가 없다.

“백종수, 당신을 강도 강간, 상해, 사기 혐의로 체포한다.”

옆으로 다가온 사내가 말했지만 두 손을 조금 벌리고 있는 것이 긴장을 아직 풀지 않았다.

 

종수가 지난번 체포될 때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는 것도 아는 눈치였다.

 

그때 종수가 휘두른 칼에 형사 둘이 찔렸다.

“자, 반항 말고.”

하면서 앞에 선 형사가 가슴의 권총 홀더에서 재빠르게 6연발 리볼버를 꺼내들더니

 

종수를 겨누었다.

“지난번에도 한방 맞았지? 이번에는 무릎쯤을 겨누고 쏴줄거다. 그럼 병신이 되는거지.”

그때 옆으로 다가선 형사가 종수의 팔을 잡더니 익숙한 솜씨로 꺾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수갑을 채웠다.

“자, 가실까?”

하고 아직도 권총을 쥔 형사가 종수의 어깨를 밀었다.

 

형사의 얼굴은 환해져 있었다.

“에이, 시발놈들.”

종수가 잇사이로 욕을 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방심했다.

 

반년 가깝게 도망 다니다가 이곳 행운여관에 자리잡고 나서는 지난 일을 잊고 살아온 것이다.

 

일년전에 저지른 일이 지금은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여관 현관을 나왔을 때 그때서야 뒤쪽 마당에서 주인여자가 얼굴만 내 보였다.

 

그러나 종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기겁을 하더니 머리를 움츠렸다.

 

여관 정문 앞에는 형사 둘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종수가 튈 경우를 대비해서

 

지키고 있었을 것이었다.

“야, 백종수, 이제 한 10년 살겠구나.”

형사 하나가 아는척 했지만 종수는 초면이었다.

 

땅바닥에 침을 탁 뱉은 종수가 그들을 향해 물었다.

“어떤놈이 날 찾은거야? 일계급 특집 하겠는데.”

그러자 형사들이 빙글빙글 웃기만 했으므로 종수의 기가 다시 꺾였다.

 

맞다. 지금 가면 10년쯤 살다 나올 것이다. 

 

 

 

 

(1361) 이런인생-20

 

 

 “백종수는 10년형은 받을 것 같습니다.”

다가선 박경택이 말하자 조철봉은 길게 숨부터 뱉었다.

 

오후 6시반,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조철봉은 경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철봉의 눈치를 살핀 경택이 말을 이었다.

“최 형사한테서 백종수의 여관방에서 나온 비디오 테이프 세개를 복사해서 받았습니다.

 

원본은 최 형사가 가져갔고요.”

말을 멈춘 경택이 눈을 껌벅였을때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복사한 건 가져왔나?”

“예, 여기.”

테이프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경택이 여전히 정색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다른 여자하고 장면을 찍은 테이프도 세개가 더 있었는데 그것도 협박용인 것 같았습니다.”

“나쁜 놈.”

했지만 조철봉의 얼굴에 다시 쓴웃음이 번졌다.

 

백종수의 거처를 알려준 사람이 경택이었으니 최 형사는 적극 협조해주었을 것이다.

 

비디오 테이프쯤 복사해주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때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으므로 조철봉이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자기야. 난데.”

수화구에서 한미옥의 목소리가 울렸는데 말끝이 조금 약해져서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응, 그래. 나, 지금 나가려는데.”

하고 조철봉이 말을 받았을 때 미옥의 목소리가 조급해졌다.

“나, 어떡해? 조금 전에 경찰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응? 아니. 왜?”

“나, 어떤 질 나쁜놈하고 사귀었거든? 그런데 그놈이 지금 경찰에 잡혀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힐끗 경택에게 시선을 준 조철봉이 눈짓을 해 보이더니 소파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오늘 저녁 8시에 다시 미옥과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때 다시 미옥이 말이 이어졌다.

“나한테 경찰서에 나오래. 조사할 것이 있다고.”

“아니, 왜?”

놀란듯 조철봉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놈하고 뭐 나쁜짓 같이 한 것 있어?”

“아니, 그런 일 없다니깐.”

“어느 경찰서인데?”

“강남경찰서.”

“몇시에 오래?”

“저녁 8시까지 형사과 최문규 형사한테.”

“알았어. 나도 갈테니까 7시반에 경찰서 앞에서 만나.”

“자기야. 고마워.”

미옥이 이제는 울먹였다.

“나, 나쁜짓 안했어. 자기야.”

“아니, 했어도 다 잘 될거야. 내가 알아서 처리해줄테니까. 그럼 7시반이야.”

그러고는 전화를 끊은 조철봉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뱉었다.

“예상했던 대로 연락이 왔군.”

미옥이 전화를 안 했다면 이쪽에서 전화를 했을 것이었다.

 

8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한 터라 연락은 해야 될테니까.

 

그때 경택이 입을 열었다.

“최 형사는 30분 안에 겁만 줘서 돌려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미옥은 최 형사가 보여주는 테이프를 보고 대경실색을 할 것이었다.

 

손톱끝만한 정이 남아 있었다면 그것마저 다 떨어질 것이다.

 

경택이 말을 이었다.

“사장님께서 손을 쓰신 것으로 생색이 나게 최 형사가 처신해줄 것입니다.”

조철봉은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다.

 

이제 미옥은 이쪽에 매달리게 될것이다.

 

믿고 모든 것을 맡긴다.

 

다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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