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 저런인생(2)
(1369) 저런인생-3
“으음.”
조철봉의 입에서 저절로 낮은 탄성이 나왔다.
두 여자 다 미인이었다.
밥상에는 소주까지 놓여 있었는데 여자들은 둘 다 조철봉의 좌우에 앉았다.
“아니, 그럴 것 없어.”
조철봉이 좌우의 여자를 차례로 보면서 말했다.
“나만 서비스 받기가 거북하니까 한 분은 저쪽으로 가시는 게 좋겠는데.”
턱으로 앞에 앉은 최갑중을 가리킨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물론 두 분 다 욕심이 나지만 말이야.”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때 좌측에 앉았던 여자가 조철봉에게 말하더니 우측 여자에게 눈짓을 했다.
우측 여자가 일어나 갑중의 옆에 앉았을 때 조철봉의 옆을 차지한 여자가 먼저 인사를 했다.
“전 유경진이라고 합니다,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나도 반갑습니다.”
여자의 옆모습을 보면서 조철봉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수백명의 여자를 겪었으면서도 언제나 처음은 새롭다.
그리고 감동도 줄어들지 않았다.
경진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한복 차림에 파마한 머리를 뒤에서 묶어 올렸는데 얼굴 윤곽이 선명했다.
세상의 미인은 수백만이 될 것이고 제각기의 매력이 있는 법이다.
흥이 난 조철봉이 소주잔을 쥐자 경진이 술을 따랐다.
조철봉의 분위기를 눈치챈 갑중의 표정도 밝아졌다.
“저도 이곳에서 서비스를 받는 건 처음입니다.”
갑중이 말했다.
“강 사장이 최근에 한국에서 모집해왔다는 말만 들었지요, 그래서….”
이곳 한정식당은 조철봉이 투자한 업체 중의 하나였지만 관리는 강상규가 맡는다.
강상규는 조철봉과 갑중이 투자한 자금으로 건설한 수십개의 사업체를 공동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저도 사장님이 첫 손님입니다.”
경진이 갑중의 말을 받았다.
“저희들은 서울에서 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한국에서는 뭘 했지요?”
하고 갑중이 묻자 경진이 소리없이 웃었다.
“조그만 식당을 했지요, 그래서 식당일 시중에는 익숙합니다.”
“여기서는 남자 접대가 주 업무일 텐데.”
“자신 있습니다.”
그러자 힐끗 조철봉에게 시선을 준 갑중이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강 사장한테서 어떻게 이야기 들었습니까? 식사 시중만 들라고 하던가요?”
“아뇨.”
경진이 정색하고 머리를 저었다.
“다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2차까지?”
“네.”
그때 소주잔을 비운 조철봉이 갑중의 옆에 앉은 여자를 보았다.
경진보다 두어살 아래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아까부터 시선을 내린 채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거기도 서울에서 같이 오셨나?”
“네.”
대답을 한 것은 경진이다.
여자는 시선만 들었고 경진이 말을 이었다.
“제 동생입니다.”
“진짜?”
놀란 갑중이 눈을 크게 뜨자 경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네, 친동생이에요. 얘도 혼자라 저하고 같이 왔어요.”
그러더니 덧붙였다.
“새 세상에서 새롭게 시작하려구요.”
(1370) 저런인생-4
사람마다 갖가지 사연이 있고 모두 제 인생을 소설로 쓴다면 10권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정말 듣고 보면 다 기구하고 절절한 사연이다.
눈물없이는 듣지 못할 비극도 많다.
그러나 조철봉이 나이 들면서 느낀 점이 있다.
상대의 기가 막힌 곡절에 대해서 점점 감동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당사자는 세월과 함께 기구한 사연의 두께가 두꺼워지는 것과 반비례해 이쪽은 시시해진다.
면역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조철봉 또한 제 이야기에 대해서 말할 기회가 있다면 남들의 감동을 열심히 기대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경진에게 잔을 내민 조철봉이 술을 따라 주면서 물었다.
“영하 50도의 새 세상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려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그러자 갑중이 덧붙였다,
“그만한 술안주가 없지요. 어디, 한번 들읍시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경진이 한모금 소주를 삼키고는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한국 땅 거의 전부에 그 사람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떠난거죠, 뭐.”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을 때 경진의 말이 이어졌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그러네요. 거기에다 환경까지 확 달라지니까 효과가 커요.”
“그렇겠네.”
갑중이 정색하고 말했다.
“밖에 나가면 너무 추워서 이것저것 생각할 정신이 어디 있겠어? 그러면.”
머리를 돌린 갑중이 제 파트너를 보았다.
“거긴 언니따라 여기 온건가?”
“그런 셈이죠. 세상에 혈육도 걔하고 나 둘뿐이니까. 아니, 또 있네.”
말을 받은 경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아들 혁이. 지금 다섯살이죠.”
“아이도 데려왔나?”
조철봉이 묻자 경진은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 안쪽 대기실에서 잡니다. 일 끝나면 저하고 같이 숙소로 가지요.”
“숙소는?”
“근로자 아파트. 30평형인데 아주 좋아요. 난방도 잘되고.”
“셋이 같이 사나?”
“네, 셋이.”
그러자 조철봉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뱉었다.
“그럼 밥먹고 그쪽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할까?”
“어디로 말입니까?”
갑중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이 정색했다.
“근로자 아파트.”
“그, 그럼.”
그때 경진이 웃음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아이 생각하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 다 알아요.
하지만 사장님께서 가시기에는 너무 집이.”
“아니, 그것 때문이라면 괜찮아.”
“지배인한테 말해서 술하고 안주를 그곳에 가져가라고 하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벨을 누르면서 갑중이 대답했다,
“그것이 낫겠습니다.”
곧 지배인이 들어왔으므로 갑중이 지시했다.
누구 지시라고 감히 토를 달겠는가?
조철봉 일행이 한정식당을 떠난 것은 그로부터 30분도 안되었다.
한랜드의 밤은 영하 50도로 내려간다.
얼어붙은 동토였지만 드문드문 불빛이 휘황했고 스쳐 지나는 차량들도 많았다.
조철봉이 잠든 아이를 안고 벤의 옆좌석에 앉은 경진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이번 경진의 사연에서는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서울에 남겨둔 자식 영일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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