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79

오늘의 쉼터 2014. 8. 27. 12:42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79

 

 

 

그렇지 않아도 모든 싸움에 무관심할 수 없는 김두한이었다.

왁자지껄 웅성거리는 와중으로 그는 어슬렁거리며 다가갔다.

그의 작은 눈이 호기심으로 반들반들 빛났다.

그러나 지게꾼들의 싸움이란 보잘것이 없었다.

남의 물건을 져 나르는 무리들이라 기운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싸울 줄은 몰랐다.

빈 지게를 등에 진 채, 여자들이 머리끄덩이를 붙들고 서로 늘어져 싸우듯이

서로 멱살이나 움켜잡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는 것이었다.

지겟다리라는 좋은 무기가 있는데도 이것조차 휘두르지를 못했다.

아마도 이를 잘못 휘둘렀다가 상대방이 다치지나 않을까 염려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닭싸움과도 같은 이 싸움판에 뛰어든 김두한은 양쪽 지게꾼을 한 손으로 붙들어 세웠다.

“같이 벌어먹지, 왜 싸워.”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던가,

그는 그다지 소리치지도 않으며 뜯어말린 것이다.

김두한은 자기 자신이 싸우는 것을 말리는 것은 질색이었지만,

싸움 같지도 않은 싸움을 보면 싱거워서도 뜯어말리지 않고는 못 견뎠던 것이다.

맞붙어 엉켜 있던 두 지게꾼은 다부진 김두한의 팔에 붙잡히자

몸을 뒤뚱거리면서 떨어졌다.

이 두 지게꾼을 떼어놓으려다 김두한은 그만 일본인 지게꾼을 밀어제치게 되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은연중 그의 마음이 조선인 지게꾼을 편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인 지게꾼이 보기 좋게 나둥그러졌다.

빈 지게를 그대로 등에 업은 채였으므로,

자기 지게에 짓찧여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아, 이따따(아, 아야 아야)!”

엄살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건장한 편의 사나이가 넘어진 지게꾼의 손에서 지겟다리를 빼앗아들고,

김두한을 후려치려고 지겟다리를 머리 위까지 치켜들며 소리쳤다.

“고노 야로(이 자식아).”

김두한은 머리 위의 지겟다리를 쳐다보았을 뿐 몸을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오른발이 허공을 가르면서 머리 위까지 치켜 올라갔다.

그 결과는 너무나 간단했고, 너무나 뻔한 것이었다.

“어이쿠!”

손목을 걷어차인 사나이가 그 자리에 폭삭 엎어졌을 뿐이었다.

김두한은 이 무기력한 사나이에게 더 이상 가격하려 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그놈이 어떤 놈인가 확인해 보려는 것처럼 한두 걸음을

그의 쪽으로 옮겨 디뎠을 뿐이었다.

실은 김두한에게 떼밀린 일본인 지게꾼은 그들 지게꾼 사이에서는

왕초 노릇을 해온 사나이였다.

또한 일본 주먹패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해 주는 똘마니급의 주먹패이기도 했다.

그가 나둥그러진 것을 본 배후의 일본 주먹패가 김두한을 잘못 알아보고

대들려다가 속절없이 봉변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김두한이 그 나자빠진 사나이에게로 몇 걸음 다가서려 하자,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틈을 헤집고 앞으로 나서는 사나이가 있었다.

“형님! 고정하시죠.”
 

김두한은 잠자코 고개만 돌려 소리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 한순간은 깜짝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곧 벙싯 미소지었다.

처음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그렇지 않아도 번잡하기 짝이 없는 시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소동이어서 사람들이 몰려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아우성치는 인벽을 헤치고 나타난 사나이가 너무나 우람했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벙싯 웃어준 것은 바로 그가 호오따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른쪽 주먹에 새하얀 붕대를 어김없이 감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적의라고는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적의는커녕, 머리는 숙이지 않았지만 건네온 한마디가 머리를 숙인 것보다도 더 저자세였다.

‘형님! 고정하시죠.’

그 한마디보다 더 자세를 낮춘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김두한은 호오따이에 대해 말을 들어 알고는 있었으나,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남대문 시장엘 들르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호오따이가 종로 바닥에 얼씬거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대문 시장 바닥에서 나름대로 주름을 잡고 있었던 호오따이는

그만큼 콧대가 세어 먼저 고개를 숙이고 김두한에게 찾아들기가 싫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는 달리 말하면 김두한이 두려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양 두목이 시장 바닥 안에서 딱 맞닥뜨린 것이다.

김두한은 호오따이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와 마주친 순간 이미 그가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호오따이는 이미 그의 상전인 하야시에게 침을 맞았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저자세일 수가 있을 것인가.

이제까지 자기 자신이 관리해 온 자전거 보관소의 이권까지 빼앗긴 데다가

자신의 나와바리 내에서 자기 부하가 나가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이토록 고분고분 얌전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호오따이요? 나, 종로의 김두한이오.”

김두한은 교만까지는 아니더라도,

강자가 갖는 넉넉한 여유로 먼저 악수를 청하는 손을 내밀었다.

호오따이는 붕대를 감은 두 손으로 황송하다는 듯이 김두한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나, 사실은 호오따이 당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소.

거, 자전거 보관소를 우리에게 선선히 양도해 주어서 말이오.”

“그야 어디 제 것입니까? 잠시 맡고 있었다뿐이지…….”

“그랬던 것이 뜻밖에 지게꾼의 싸움판에 끼어들게 되어,

싸움을 말리려던 것이 그만 당신의 아이들을 다치게 해서 정말 미안하게 됐소.”

“원 별 말씀을. 감히 천하의 김두한을 못 알아모신 제놈들의 실수이지, 헛헛.”

호오따이는 여유 있는 웃음까지 짓고는 김두한의 손을 놓고 이번에는 김무옥 쪽으로 다가갔다.

“무옥, 웬일이지? 이렇게 형님을 모시고 찾아올 일이라면 미리 기별을 하고 올 일이지.

안 그래요? 우메하라 상.”

호오따이는 김무옥이나 김동회와는 구면인 듯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


“하지만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오야지(영감)께서 김두한 형님을 한번 만나뵙고 싶다 하셨는데…….”

호오따이는 김두한보다 구면인 김무옥에게 동의라도 구하려는 것처럼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야지라니,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일까.

김두한은 잠시 생각했으나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뺀 칼인 것이다.

어떻게든 남대문 시장을 손 안에 넣기 위해서 탐색차 오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시장패의 두목이라는 호오따이에게서 뜻밖의 환대를 받으며,

그의 배후 인물인 오야지까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오야지가 누구라도 좋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지 않았는가.

내친걸음에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이 잘만 되면, 이야말로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 아니겠는가.

“두한아, 만나보는 게 좋을 거야!”

어느 결에 다가와서 김동회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김두한은 김동회를 믿어도 좋았다.

요즘 일어난 일련의 ‘좋은 일’들은 모두 김동회가 관련되었고,

그가 가져다 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좋소이다! 여기까지 찾아온 인사로라도.”

김두한은 망설일 것이 없었다. 호오따이가 기쁜 듯이 앞장을 섰다.

이들을 첩첩이 에워싸고 있었던 듯싶은 군중들이 이들의 어깨에 스치기만 해도

크게 다치기라도 할 것처럼 길을 열어주었다.

열린 인벽 사이로, 김두한과 호오따이를 앞장세운 종로의 주먹패들이 유유히 걸어갔다.

이들은 그다지 많이 걷지 않았다. 입구는 시장 안 골목으로 나 있었으나,

건물 자체는 남대문통으로 면한 2층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간판은 붙어 있지 않았으나 아래층은 보석상과 고급 시계점이 들어 있는 점방이었고,

 2층은 사무실이었다.

여기가 남대문 시장을 운영하는 중앙물산의 사무실이었던 것이다.

시장 안에 있는 건물답게 입구며 계단은 너저분했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서자, 복도에는 색이 바래기는 하였지만

붉은 주단까지 깔려 있었고 제법 깨끗해 보였다.

그리 예의라는 것을 차릴 줄 모르는 주먹패들이 우르르 사무실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사무실 안의 젊은 남녀 사무원들이 깜짝 놀라서 자세를 고쳐앉았으나,

놀라기는 김두한이나 그 밖의 주먹패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무실이 시장 안답지 않게 너무나 청결하고 정숙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별실 응접실에 안내되었다.

커다란 응접용 탁자며, 앉기에 편안해 뵈는 소파며 보조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 하얀 국화 화분이 만추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잠깐 기다리시죠. 내 곧 오야지를 모시고 올 테니까.”

호오따이가 막 들어선 입구의 반대쪽으로 있는

또 다른 출입구 쪽으로 향해 가려 했을 때였다.

그 반대쪽 문이 호오따이가 들어서기도 전에 먼저 열린 것이다.


김두한을 비롯한 일동의 눈이 일제히 열린 문 쪽으로 쏠렸다.

40대는 넘었을 성싶은 중년의 미끈한 신사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뿌리며 나타났다.

조끼를 받쳐입은 단정한 양복 차림에 진한 감색의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조끼 주머니에는 회중시계의 금줄이 늘어져 있었다.

얼른 보아도 기품이 있는 신사풍이었다.

뿐만 아니라 스크린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미남이었다.

미간이 좁아서 짙고 굵은 검은 양쪽 눈썹이 맞닿을 듯싶었으며,

곧고 높게 돋은 콧날이 준수해 보였다.

도톰한 입술에서 뿜는 미소가 화사했고, 고르고 하얀 치열이 산뜻했다.

한마디로 일본인 특유의 마스크이면서도, 서구풍의 분위기가 감도는 미남이라고나 할까.

다른 문으로 나가려던 호오따이가 멈춰 섰고, 김동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으나,

김두한을 비롯한 종로패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서들 오시오! 당신네들에 대해서는 하야시 군으로부터 얘기를 많이 들었소.”

물론 사근사근한 일본말이었다.

김두한은 물론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남대문 시장의 다나까 사장이야.”

김동회가 나직한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그렇다고 소스라칠 김두한이 아니었다.

그 관록이 있어 보이는 사나이에게 오히려 도전을 하려는 것처럼 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하야시 군으로부터 얘기를 들었는데,

종로와 혼마찌가 앞으로 선린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더군.

그건, 아주 잘한 일이고 반가운 일이지.”

다나까는 서두르지 않는 침착한 몸가짐으로,

비어 있는 김두한의 앞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긴또깡 상! 혼마찌와 좋은 이웃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곧 우리 남대문 시장과도 좋은 이웃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오.”

다나까는 똑바로 김두한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뿐만 아니라 서두에서 긴또깡 상이라 불렀으니,

그것이 자기에게 향한 말이라는 것을 김두한이 모를 리 없었다.

그 말뜻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이때처럼 답답할 수가 없었다.

“얘, 뭐라는 거야?”

김두한은 꼬고 앉았던 두 다리를 풀고 자세를 고쳐앉으며 김동회에게 물었다.

김동회가 대충 그 뜻을 통역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상대방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퉁명스럽게 물었다.

“앞으로 우리 남대문 시장에서도 종로의 당신네들에게 도울 수 있을 만큼 도와드리겠소.”

“어떻게?”

다시 김동회의 통역을 듣고 난 김두한은 지체 없이 반문했다.

다나까의 풍채나 용모로 보아 그는 만만한 인물 같지 않았다.

하야시를 군칭(君稱)하는 것만 보아도 그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을 듯싶었다.

그러한 다나까가 허리를 굽히고 종로패를 돕겠다는 것이다.

김두한은 내심 솔직히 기뻤다.

그러나 여기서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이 그의 주먹패 두목다운 근성이었다.


“앞으로 종로에서 필요로 하는 자금의 일부를 조달하겠소.”

다나까는 김동회의 통역이 끝나자마자,

마치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한 것처럼 즉석에서 대답했다.

“그건 참 좋은 일인데?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도와주겠다는 거요?”

받는 쪽이 오히려 기세가 등등한 꼴이었다.

“글쎄요, 얼마면 족할까요?

실은, 달에 500쯤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500, 그것은 미처 생각도 하지 못했던 거액이었다.

어물전으로 흥청망청하는 마포나, 뗏목으로 한몫 단단히 보는

시구문패에서도 달에 고작 200~300 정도밖에 올라오지 않는다.

그런데 난데없이 남대문 시장에서 달에 500원씩이나 내놓겠다니!

김두한은 흡족했다.

더 이상 토를 달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유리한 협상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좋소! 그런데 요구 조건은?”

“요구 조건? 이웃과 이웃끼리 선린 관계를 유지하자는 것 이외 아무것도 없소이다.”

다나까는 맨손의 두 손을 활짝 벌려 보였다.

하지만 요구 조건이 없을 수 없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 한 채가 왔다갔다 하는 거액의 돈을 달마다 바치겠다면서,

아무런 요구 조건이 없을 수 없었다.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의 꿍꿍이속이 있을 것이었다.

김두한은 상대의 속셈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다나까는 황급히 덧붙이는 것이었다.

“굳이 있다고 하면, 혼마찌의 하야시 군과 똑같은 의견, 똑같은 희망을 갖고 있을 뿐이오.”

혼마찌의 하야시와 똑같은 의견·희망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원래 다나까는 야꾸자 출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과 돈이 꾀어드는 시장에는 으레 폭력배가 모여들게 마련이고,

이를 다스리려면 자체적인 주먹패의 조직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사업의 능력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신사 경영인 다나까에게는 그러한 힘도 재주도 없었다.

결국 그 힘을 혼마찌깡의 하야시에게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야시도 혼마찌 일대의 상업 구역을 관장하기에도 벅찼기 때문에

남대문 시장까지 손을 뻗칠 수가 없었다.

결국 다나까는 하야시의 비호 아래, 개별적으로 조선인 호오따이와 일본인

우에스끼(上杉)란 건달을 고용하여 자체 유지를 해왔었다.

그런데 이웃한 다까끼구미와 다께다구미의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약세인 남대문 시장을 넘보고 집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하야시에게 원군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야시 자신이 수표교 싸움 이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자기 자신이 다까끼·다께다 패거리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기는 마찬가지여서

다나까를 도와줄 처지에 있지 못했다.

결국, 김두한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겠다는 조언을 해주었을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