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59

오늘의 쉼터 2014. 8. 27. 11:30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59 

 

 

상요껜 3층 연회석은 긴 탁자를 가운데 놓고 나란히 마주 앉아

바라볼 수 있는 의자가 실히 100석을 헤아릴 만한 큰 홀이었다.

그러나 워낙 몸집이 굵직굵직한 주먹패의 모임이라,

수용 가능 인원의 반밖에 차지 않았어도 이미 만원이었다.

의자를 두 개 겹쳐놓고 앉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하나의 의자에 앉았어도 옆 사람과 어깨가 맞닿을 듯

가까워서 띄엄띄엄 자리 차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무지막지한 놈들이 한결같이 긴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두목 하야시가 김두한패에 도전장을 내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중간 보스급들이 뻔질나게 회동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기 자신이 그날의 전사로 뽑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날 결전에 임할 싸움꾼 일동이 한자리에 회동하게 되자

더한층 긴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태풍 직전의 고요에서 태풍의 눈을 보게 되었다는 현실감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모두 긴장을 하고 있다고 해서 한결같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도 나름대로 섬나라에서 반도(半島: 조선)로, 대륙(大陸: 중국·만주)으로

떠돌아다니는 싸움패들인 것이다.

그 점, 조선의 주먹패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조선의 주먹패들처럼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이었다.

조선에 건너와 있는 일본인들은 무슨 이권(利權)이나 특전(特典) 하나씩을 갖고 있어서

배를 주리지 않는다.

아무리 배우지 못한 건달인 주먹패라도 하다 못해 목이 좋은 곳에

담배 가게 하나라도 갖고 있어 생계가 쪼들릴 일은 없었던 것이다.

배부른 개는 싸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배고프지 않은 일본 주먹패들은

조선패들처럼 싸움 앞에 악착스럽지가 않았다.

되도록이면 싸우지 않고, 싸운 것 이상의 효과를 노리자는 축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주먹패에 도전장을 냈다는 것을

그들은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도 무서운 김두한패에게…….

그러나 긴장감 속에서도 결코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주연이 시작되기 전에, 부두목 다무라의 인사가 있었다.

보통의 회동 때처럼 여럿이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뜻의 의례적인 것이었다.

회동의 뜻을 본격적으로 설명한 것은 이와에였다.

“제군들! 결전의 날은 사흘 앞으로 다가왔소.”

입을 연 첫마디부터 묵직하게 나왔다.

말투 자체의 무게 때문이기도 했지만,

원래 상하의 위계질서가 철저하고 규율만큼은 엄격한 이들이라,

최고 보스급의 한 사람인 이와에가 입을 열자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우리가 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가,

제군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우리는 그동안 참을 대로 참아왔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까지 이르렀소.

조선패들에게 더 이상 모욕을 당할 수야 없지 않소?”

달변은 아니었지만, 맺고 끊는 경쾌한 입놀림에 자못 호소력이 있었다.

 

제군들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오!”

차근차근한 이와에의 연설은 계속되었다.

“긴또깡 패거리의 기습 사건으로 우리가 기꾸스이에서 얼마나 수모를 당했는가,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의분이 되살아나서 못 견딜 지경이오.

그러나 온정이 가득하신 오야붕(하야시)은 경찰에 체포된 긴또깡을 위해

직접 경찰서로 찾아가서 그를 석방토록 조치해 주셨소!

어디 그뿐이오? 양측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청계천을 경계로 한 불가침 조약까지 맺었소.

그런데 파렴치하고도 배은망덕한 긴또깡과 그 일당은 어떻게 했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의 영역을 침범해 와서 선량한 일본 주민을 괴롭히는가 하면,

심지어 거지를 가장하고 일본인 취객만을 강탈하는 만행까지 저질렀소.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백주에 혼마찌깡의 코앞에 있는 메이지 제과에 나타나서

지배인을 때려눕히는 폭행을 서슴지 않았소.

이것이 혼마찌깡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오죽하면 냉정하신 오야붕이 정식 도전장까지 내기에 이르렀겠소?”

거기서 잠깐 말을 끊은 이와에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경청하는 자며,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자는 있어도,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려는 자는 없어 보였다.

기침 소리 하나 없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가 똑같이 의분을 느껴

공감의 표시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 확인한 이와에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도전장을 받은 긴또깡과 그 패거리들이 어떻게 나오고 있는지 아시오?

비겁한 이놈들이, 정면으로 대결을 하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비겁 천만하게도 비열한 술책을 꾸며내기에 이른 것이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팔짱을 끼고 눈을 지그시 감고 경청하고 있던 자도 번쩍 정신이 든 듯

눈을 크게 뜨고 이와에를 쳐다보았다.

“내일 밤 자정을 기해 혼마찌깡을 기습하겠다는 것이오!”

“오오!”

“뭐라고?”

기침 소리 하나 없던 좌중이 비로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경악과 분노의 표시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와에는 웅변가는 아니었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기지는 갖고 있었다.

“우리는 명명백백한 정보와 증거를 갖고 있소.

그리고 우리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결의와 용기도 갖고 있소.

물론 우리는 놈들을 맞아 섬멸할 수 있는 실력도 갖고 있소.

하지만 우리의 본거지 혼마찌깡을 소요의 도가니 속으로 내몰 수는 없지 않소?

제군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비겁한!”

“말도 안 돼!”

또다시 장내가 소란해졌다.

이를 제어하려는 것처럼 이와에는 한층 더 언성을 높여 말했다.

“혼마찌깡을 습격하기 위해 놈들은 지금 종로 관철동 조양 여관에 운집해 있단 말이오.

이놈들에게 혼마찌깡을 기습케 하든가,

이를 사전에 예방키 위해 우리가 먼저 조양 여관을 습격하든가,

지금 우리는 그 기로에 서 있단 말이오.”

이제 좌중을 선동하거나 중지를 모으기 위해 더 이상의 능변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와에는 장내의 분위기로 이미 이를 감지하고 있었다.

“해치웁시다.”

“해치워야 하고말고.”

그렇지 않아도 단순한 주먹패 무리들이다.

벚꽃처럼 피고, 벚꽃처럼 진다는 일본인 특유의 성격이 그것이라는 것일까.

김두한패에 도전장을 냈다는 사실을 찜찜하게 생각했던 자들도 단숨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조센진에 당하다니.)

(놈들에게 당할 수야 없지.)

일본 주먹패는 똑같은 생각을 공유하게 되고 말았다.

“혼마찌깡 앞에서 소요가 일어나기 전,

내일 새벽 우리는 조양 여관을 습격하기로 결정했소.

그 작전의 세부 계획에 대해서는 다니구찌 상이 오늘 밤 하달할 것이오.

오늘 밤은 작전의 계획과 비밀의 보장을 위해 모두 혼마찌 호텔에서 함께 투숙하게 될 것이오.

그리고 노파심으로 한마디 덧붙이지만, 내일 아침의 출전에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

서로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오늘은 가볍게 한잔 들기로 합시다.”

이와에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이에 비해 난데없는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이들은 결전을 앞둔 일종의 비장감과 자신들의 결의에 스스로 고무되어

달착지근한 감동에 휘말려 있었던 것이다.

“내일의 승리를 위해!”

부두목 다무라가 건배를 하기 위해 잔을 높이 쳐들었고,

일동의 주먹패들도 똑같이 잔을 치켜들었다.

차츰 주기가 돌기 시작하자,

그들의 비장감과 그 달착지근한 감동의 분위기는 자칫 승리의 도취감으로 도도해지는 듯싶었다.

이제 주먹패 어느 누구도 김두한에의 도전장을 찜찜해하는 자는 없었다.

하물며 싸움을 두려워하고 겁을 먹고 있는 자도 없었다.

술기운에 군중 심리까지 작용했을 것이다.

어느 누구나 내일의 용자임을 자부하고 있었고,

내일의 승리를 자신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그들의 표정은 밝고 명랑해서 화창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이들의 분위기에 동화될 수 없는,

오히려 초조와 안타까움으로 가슴을 죄고 있는 자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상요껜의 여급 다나까 기누에였다.

당시 일본에는 다나까 기누요(田中絹枝)라는 명 여우(女優)가 있었다.

갸름한 얼굴에 살결이 비단결처럼 고운 동양적인 미모를 지닌 여자였다.

다나까 기누에는 바로 이 다나까 기누요를 닮았대서

그녀의 주변 사람이 별명처럼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엄연히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조선 여자, 하중선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일본 음식점에서 일본옷 기모노를 입고 일본말을 하며,

주로 일본인의 시중을 들어주고는 있었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지 않던가,

조선 여자로서의 피를 속일 수가 없었다.

장내에서 왔다갔다하며 시중을 들다가 일본패의 음모 어린 작전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 비밀을 모르는 채 감춰둘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다나까 기누에, 아니 경상도 진주 출신의 하중선은 빼어난 미모도 있었지만

D여고 3학년까지 다닌 학력을 갖고 있는 재원이었다.

그녀가 다니던 학교까지 그만두고 일본 요정의 여급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흔히 있는 가정 형편 때문이었다.

중농의 가정에 태어나 비교적 여유가 있어 그녀는 사내 동생 하동익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까지 할 수 있었다.

동생 동익 역시 서울 B고보의 1학년이었다.

남매를 서울로 유학 보낼 수 있는 집안이었으나,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후 가운이 기울기 시작하여 끝내는 학교까지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녀는 미모와 유창한 일본어 덕분으로,

자랑스럽지는 못하지만 쉽게 일본 음식점의 여급으로 취직이 되었다.

그러나 병석의 부모에게 약값을 보내랴,

동생의 학비를 대랴, 자신의 생활을 꾸려 나가랴,

도무지 신색이 밝을 날이 없었다.

필경에는 동생 동익마저 학교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학교를 그만둔 동익은 누이와 함께 돈을 번 다음,

다시 학교에 다니겠다는 나름대로의 갸륵한 뜻을 품고 있었다.

동익 소년은 종로 일원을 중심으로 한 술집·다방 등을 돌아다니며

미루꾸(밀크 캐러멜)팔이를 했다.

3전에 받아다가 10전에 파는,

알기 쉽게 설명하면 요즘의 껌팔이 소년이 된 것이다.

밤이면 카페 등 술집으로 돌아다니다가 김두한의 눈에 띄게 되었다.

동익이 여느 미루꾸팔이 소년답지 않게 얌전하고 똑똑해 보였기 때문이다.

“야, 너 뭣 때문에 이런 장사를 하냐?”

“진주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B고보에 입학이 되었으나,

아버지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신 후, 학비를 댈 수 없게 되어서요.

돈 좀 벌어서 상급 학교에 가려구요…….”

소년은 그늘이 없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래? 거, 안됐구나.”

김두한은 그 자리에선 그대로 흘려보냈으나

이튿날 다시 소년을 찾아 YMCA 야간부 본과에 입학을 시켰다.

이후 그에게 줄곧 학비를 대준 것은 물론이다.

그는 YMCA를 졸업한 후 일본 메이지대학에까지 입학하게 되었다.

그가 일본으로 떠날 때 김두한은 여비로 200원을 쥐여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것은 훨씬 훗날의 얘기로,

이때는 동익이 YMCA 야간부에 다니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무튼 김두한은 동익의 은인이었다.

동익은 누이가 일본 요정의 여급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 창피해서 이를 숨기고 있었으나,

누이 중선은 김두한이 동익의 은인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김두한을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었다.

조선 주먹패의 두목으로 무서운 사나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야 어찌 됐든,

조선 주먹패의 두목 긴또깡이 일본 주먹패의 기습을 당하게 되었다는데,

이를 알고서도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비밀이 중선을 통해 동익에게,

동익을 거쳐 조양 여관의 김두한에게 전달된 것은 물론이며 또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비겁한 놈들 같으니라구.”

하동익으로부터 일본패들의 기습 음모를 전해 듣고 김두한은 뒤틀린 목소리로 내뱉었다.

1주일을 앞둔 도전장을 받아든 그때부터 일본패에 어떤 음흉한 계획이 있지 않을까

충분히 경계는 해왔었다.

(그래도 설마?)

아무리 비겁한 일본 주먹패들이라 하지만

이른바 무사도 기질의 야꾸자 정신이 살아 있을 줄로 믿었다.

자기네들이 결정한 장소와 시간을 어기고 결전의 장소도 아닌

조양 여관으로 미리 기습을 해오겠다니,

치가 떨리면서 설마 하고 얼른 믿어지지도 않았다.

하동익은 누이 하중선이 일본 요정에 나가고 있다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이를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보의 출처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아 더욱 아리송하게 생각되게 한 것이다.

그런 채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두한은 망치·김무옥·종로꼬마·심청 등 측근 참모들과 곧 구수 회담을 벌였다.

“잘된 거야. 장충단 공원에서 싸우는 것보다,

청계천을 넘어온 놈들을 맞아 싸우게 된 것이 잘된 거야.”

종로꼬마의 의견이었다.

“무엇보다 이틀을 더 기다리자니 지루해서 못 견딜 판국이었는데 잘됐지 뭐야!

청계천만 넘어와 보라지, 그저 묵사발을 만들어놓을 테니까.”

망치는 벌써부터 소매를 걷어올렸다.

“하지만 미리부터 흥분만 하지 말고 차근차근 작전을 짜야만 해.

지금 이 시간, 일본패들은 완전한 준비를 갖추고 혼마찌깡과 혼마찌 호텔에

분산 집합해 있다는 거야.

혼마찌깡에서 관철동으로 오자면 가장 가까운 거리가 수표다리야.

혼마찌 호텔에서는 장교다리가 될 테지만…….”

김두한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필시 수표교 쪽으로 오겠지!

우리는 주력을 수표교 쪽의 길목에다 두고 아이들을 풀어 밤새워 망을 보라고 해.

수표교로 오든 장교로 오든, 다리 위에 발을 들였다 하면 그저 모조리 까부수는 거야!”

이들이 세운 작전 계획은 그런 대로 치밀했다.

우선 전투 병력을 3개조로 편성했다.

종로꼬마가 이끄는 제1조는 수표교 앞 골목에 매복해 있고,

망치가 이끄는 제2조는 장교 앞을 지키며,

김무옥이 이끄는 제3조는 장교와 수표교의 중간 지점이라 할 조양 여관에 대기해 있다가

일본패들이 몰려오는 쪽으로 급히 합류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똘마니들을 청계천 너머 황금정(을지로) 일대에 풀어,

일본패들이 넘어올 경로를 감시케 했다.

똘마니들의 보고를 받는 즉시 3개조는 어느 때든지 하나로 합류할 수 있도록

연락망을 취해 놓았다.

김두한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더 이상 술도 마시지 않고, 누워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바짝 긴장이 된 탓에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과연 하동익이 가져다 준 정보가 확실한 것일까?

정말로 일본패가 새벽에 기습을 가해 올 것인가.

새벽은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