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장군의 아들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58

오늘의 쉼터 2014. 8. 27. 11:29

제2부 黑龍의 飛翔-혼돈 58 

 

 

종로꼬마의 묵직한 한마디에 방 안에는 박수가 터졌다.

무뚝뚝해서 표정이 없고, 싸움 이외에는 감정의 표현이 드문 주먹패들에게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이들은 일본패와의 결전을 앞두고 긴장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박수가 상징하는 것처럼 주먹패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싸움 앞에 두려움을 모르는 김두한이기는 했지만,

종로꼬마가 돌아왔다는 것은 그대로 힘이 되었다.

이날 밤, 종로꼬마를 환영하는 축연이 국일관에서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이름은 환영연이었지만, 일본패와 맞붙어 싸울 주먹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즐기는 가운데서도 김두한과 종로꼬마는 머리를 맞대고

벌써 작전 계획을 짜고 있었다.

“쌍방에서 각각 40명씩 동원한다지만, 우리는 80명 갖고도 모자라.”

종로꼬마가 김두한의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다른 사람이 엿듣지 않는 두 사람만의 대화가 되자,

두 사나이는 어느덧 옛날로 돌아가서 반말이 되었다.

“무엇 때문에?”

김두한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종로꼬마의 생각을 끌어내보기 위해 물었다.

“쪽발이놈의 속셈을 알 수 없어서 말야.

우리의 주력 40명이 장충단 공원으로 빠진 사이,

저들은 장충단 공원으로 가지 않고 빈집이나 다름없는 종로로 쳐들어올지도 모르니까.”

“너 머리 한번 잘 도는구나. 그것도 중국 무술에 있는 병법이냐?”

“만반의 준비는 해야 해.

그러니까 두한이 너는 같은 병력만큼의 아이들을 데리고 평소처럼 종로를 지켜야 해.

대신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싸울 테니까…….”

“한약에 감초가 빠질 수는 있어도, 싸움에 이 김두한이 어떻게 빠질 수 있어?”

“그런 말 할 때가 아냐. 넌, 이제 조선 주먹패의 총두목이니까

몸을 아끼기 위해서도 뒤로 물러앉아 있는 것이 좋아.

그 대신 넌 부족한 아이들을 더 긁어모으고,

긁어모은 아이들 뒷돈 대기 위해서 부족하지 않게 자금이나 마련하도록 해.

내일 당장 난 장충단 공원으로 나가 다시 한 번 지형(地形)과 현장 상태를

살펴보고 올 테니까…….”

김두한은 거기까지 생각할 줄 아는 종로꼬마가 미더웠다.

“응, 잘 생각했어. 그렇지 않아도 우리를 장충단 공원으로 이끌어 낸 후,

경찰이나 헌병대를 불러들여 우리를 한꺼번에 잡아들이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던 참이야.”

“그렇기 때문에 40명이 한꺼번에 장충단으로 밀려들어서도 안 되지.

만약을 염려한 진입로와 퇴각로를 미리 살펴두고 두 명이나 세 명씩 대오를 짜서

여기저기서 개미새끼처럼 한꺼번에 몰려들어야 하는 거야.”

“아무튼 난 널 믿겠다.”

“걱정할 것 없어. 아직 1주일이나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우리 치밀한 작전을 짜자구.”

두 사나이는 교자상 밑으로 두 손을 굳게 잡았다.

 

이튿날부터 김두한을 중심으로 한 그의 수뇌급 참모들은

일본패와의 결전을 엿새 앞두고 임전 태세로 돌입했다.

종로패만으로도 똘마니급의 어중이 떠중이 다 긁어모으면 총세 200명은 넘었다.

하지만 일본패의 어떠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 아래서는

종로패만이 독자적으로 싸울 수는 없었다.

이 기회에 조선 주먹패의 결속을 다짐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변두리 주먹패들이 중앙인 종로의, 보다 정확히 말하면

김두한의 휘하에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여러 패거리들의 원군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로꼬마는 몸이 재빠른 다루마찌와 다람쥐를 이끌고

직접 장충단 공원의 지리·지형을 살피기 위해 소풍객을 가장해서 나섰다.

김무옥·망치·심청·문영철·정진영·팔찌·용돌이 형제·칠복이·돼지,

그리고 종로꼬마에게 혼이 난 왕발까지가 자신의 연고나 인연을 찾아 김두한의 밀사로 흩어졌다.

마포로 떠난 망치와 심청은 쐐기 이하 10명의 행동 대원의 파견을 약속받았다.

영등포로 거동한 김무옥과 왕발 역시 구마적 이하 10명의 행동 대원 파견을 악속받았다.

시구문패로 찾아간 팔찌와 돼지는 이제 김남산을 대신하리만큼의 거물로 성장한 최재우로부터

직접 20명의 병력을 차출하겠다는 확약을 받았다.

예부터 김두한과 한통속이나 다름없는 뫄관패에서는 김두한의 실제이자 뫄관패의 실질적인

실력자 김태원이 행동 대원 20명을 거느리고 직접 싸움에 가담하겠다고 나섰다.

이 밖에 낙원동 칠복이나 단성사 용돌이 형제가 자신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직접 싸우겠다고

나선 것은 물론이지만, 소문을 듣고 동대문 시장의 잔잔바라바라며 인왕산패의 소영웅

김순응 등도 자진해서 출두하여 싸울 것을 자청해 왔다.

물론 이들은 병력만 차출하는 것이 아니라,

적지 않은 금액의 군자금까지도 갹출했다.

이들이 이처럼 간단하게 결속될 수 있었던 것은 김두한의 세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패가 먼저 도전장을 보내왔고 쪽발이놈과 싸운다는 대의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배운 것은 많지 않고 사회 밑바닥에서 뒹굴며 사는 주먹패들이었지만,

민족 감정은 오히려 더 진했던 것이다.

김두한은 자신의 위세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것에 만족했고,

조선 주먹패가 하나로 결속된 것을 실증할 기회를 만들어준 일본패의 하야시에 감사했다.

물론 각 파에서 차출된 행동 대원이 전부 장충단 결전에 나설 병력은 아니었다.

장충단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종로패와 시구문패의 정예 20명씩만이 싸움에 임할 것이며,

그 밖의 병력은 만약에 대비한 예비 병력인 셈이었다.

그러나 각 패거리들의 두목급이며 중간 보스급들이 작전 계획을 위해,

또는 원조의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속속 관철동으로 꾀어들었다.

문자 그대로 일대 결전을 앞둔 이상 기류였다.

이 이상 기류가 혼마찌깡에 감지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일본 주먹패의 두목 하야시가 김두한에게 도전장을 보내왔다는 사실은

이미 종로 바닥에 공공연한 비밀로 퍼져 있었다.

서대문에서, 마포에서, 영등포와 시구문 밖에서 거물급 두목들이 뻔질나게

관철동 골목으로 모여들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 것이 바로 경찰이었다.

언제 어디서 맞붙게 된다는 것인지 아직 상세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한 채 경찰은

특별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하야시의 도전 사실을 알고, 관철동 골목의 고조된 이상 분위기를 누구보다도 먼저 감지하고,

불안감과 함께 하야시에게 불만을 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우미관 주인 와까사끼였다.

그는 하야시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협객 조직의 총본산인 도야마 미쓰루 계열이기는 했지만,

본거지를 우미관을 중심으로 한 종로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하야시와는 놓여 있는

처지와 이해관계가 같을 수가 없었다.

때로 혼마찌깡의 자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조선인 출신의 새까만 후배인 하야시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스스로 종로 상인의 대변자이며 조선인통(朝鮮人通)이라고 자처하기도 했다.

기실, 그러한 일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그는 하야시가 청하기도 전에 먼저 혼마찌깡으로 하야시를 찾아갔다.

“김두한에게 도전장을 냈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이외다. 그동안 은인자중 참아왔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이 기회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줄 작정이오.”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닐까?”

“와까사끼 상은 우리의 실력을 무시하시오?”

“무시하지는 않지. 하지만 김두한 세력도 무시할 수가 없지.

그동안 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견제 세력으로 대립되어 있던 조선 주먹패들이

당신의 도전을 계기로 하나로 결속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서대문과 마포, 영등포와 동대문 밖 뚝섬의 아바렌보(난폭자)들이 속속 종로로

꾀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와까사끼는 정말 종로의 대변자가 되기나 한 것처럼 위협적으로 말했다.
하야시는 내심 뜨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두목으로서의 체면도 있었고, 자존심도 있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소.

김두한 편에서 꺾여서 먼저 고개 숙이고 찾아들지 않는 한,

도전장을 거둬들일 수 없습니다.

나에게도 체면이 있고, 일본 상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니까…….”

“싸움을 판 쪽은 당신이오.

싸움을 밥보다 좋아하는 패거리들이 싸움을 사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들은 물러서지 않을 거요.

설마 사쯔(경찰을 뜻함)에 의지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귀공자같이 화사한 하야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의 약점이 찔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에 반발하려는 것처럼 그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1주일 후면, 종로의 상권도 우리들이 움켜쥐는 것을 보여주겠소.”

“신중히 고려하라고 부탁하고 싶소.”

노회한 와까사끼와 젊은 두목 하야시의 면담은 그것으로 끝났다.
 
하야시는, 뒤돌아서서 나가는 와까사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초조보다 더 짙은 암담한 기분에 몰렸다.

1주일 후면 종로의 상권을 움켜쥐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무엇으로 이를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막강한 김두한과 그의 세력을 누가 무슨 힘으로 꺾을 수 있단 말인가.

와까사끼의 말 그대로 아무런 승산이 없는 것이다.

신중히 고려했어야 할 정도가 아니라 도전장을 낸 것이 후회가 되었다.

도전장만 내면, 김두한이 겁을 집어먹고 백기를 들고 굴복은 해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길을 통해서든 화해의 손길을 뻗쳐올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화해는커녕,

전조선의 주먹패가 결전의 날을 앞두고 한덩어리로 뭉쳐가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마지막까지 김두한패에 맞서온 시구문패까지 그의 휘하로 들어갔다고 한다.

결전의 그날에는 시구문패가 합류해서 싸운다는 정보까지 들어오고 있다.

이야말로 혹 떼려다가 혹 하나 더 붙인 꼴이 되었다.

이 세력에 감히 일본패가 어떻게 대항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일본패도 일본 본국과 만주 등지에서 떠돌던 고로스께를 받아들여

세력을 증강시켜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칼 잘 쓰는 칼잡이가 있다 하더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망나니패 주먹 앞에는 오금을 못 펴는 법이다.

가장 믿거라 했던 것은 바로 시구문패에서 전향해 온 노점룡패였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저더러 옛날 꼬붕들과 싸우라는 겁니까? 죽으면 죽었지 그 짓은 못 합니다.

팽창해 가는 기꾸찌구미나 태평로 다께다구미(竹田組)를 견제하기 위한 싸움이라면

얼마든지 하겠지만,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 김두한과는 결코 싸울 수가 없습니다.”

노점룡은 하야시에게 대들듯 노골적으로 말했다.

하야시도 노점룡이 아무리 팔려온 몸이기는 했지만,

그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만큼 그의 마음은 더욱 안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초조와 안타까움은 노여움이 되어 도전장을 내자고

처음 발설한 이와에에게 터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에는 유도 실력자에 칼놀림에도 솜씨가 있고,

그의 형이 헌병대의 장교로 있어 배후도 좋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김두한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다.

이미 기꾸스이에서 김두한에게 당한 처참한 꼴을 목격했었기 때문이다.

“염려하지 않아도 좋겠나?”

하야시는 조례(朝禮) 시간에 많은 간부들 앞에서 이와에에게 따졌다.

말투는 조용했으나 눈매가 날카로웠다.

“염려하지 마십쇼! 기꾸스이에서 당한 창피는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혼마찌깡의 명예와 나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힘껏 싸워 이겨 보이겠습니다.”

이와에는 씨근거리면서 맹세했다.

그 나름대로의 결의로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싸움이란 굳은 결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두목과 많은 간부들 앞이라 체면도 있어 큰소리는 쳤지만

이와에 자신도 자신만만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일본패의 사기가 형편없이 저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던가.

기꾸스이에서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김두한패와 정면 대결을 한다니까 싸우기도 전에 겁부터 먹는 것이었다.

“어차피 뽑아든 칼이 아닌가. 싸우지도 않고 칼집에 담을 수도 없는 것,

이 기회에 놈들을 송두리째 뿌리 뽑기로 합시다.”

조례 시간을 마치고 흩어져 나올 때,

이와에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용기를 북돋워준 것은

혼마찌깡의 맹자(猛者), ‘근성의 사나이’로 불리는 다니구찌(谷口)였다.

“그래, 하자. 하지만 놈들은 얕잡아볼 수 없는 무리들이어서 말이지.

경성의 아바렌보(亂暴者) 놈들이 모조리 놈들의 아지트인 조양 여관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거야.”

이와에는 용기를 얻었다는 듯 목소리가 커졌다가는 이내 자지러져서 신중하게 말했다.

“돌격 대장이 그런 약한 소리를 해서야 되겠나?

아직 그날까지는 사흘이나 남아 있는데. 힘이 달리면 머리로 싸우면 돼.”

“머리로?”

“그래, 싸움이란 ‘이기면 관군(官軍), 지면 역적’이라 하지 않는가.

나에게 이길, 능히 싸워 이길 비책이 있지!”

“어떤?”

이와에는 기쁜 듯이 반문했다.

다니구찌는 누가 엿듣기라도 할까 두려운 듯이 사방을 휘둘러 보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귀엣말로 소곤거리는 것이었다.

이와에는 다니구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전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침통해 뵈는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해 갔다.

“흠, 그것도 한 방법이긴 하군.”

얘기를 다 듣고 난 다음에야 이와에는 마지못한 듯 맞장구를 쳤다.

“놈들도 아지트에 모여 작전을 짜고,

밤이면 밤마다 격려의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 않소.

어디, 우리도 우리의 난폭자를 불러들여 오늘 밤은 사기를 북돋우는

장행회(壯行會)부터 가집시다.”

다니구찌는 자신의 비책이 이와에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듯하자,

스스로 고무된 듯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고 밝아졌다.

“그게 좋겠군. 다무라 상의 협력을 얻어 오늘 밤, 아이들을 불러 모으도록 하시오.”

이제 이와에도 다니구찌의 비책을 받아들인 듯 결연하게 말했다.

이날 밤, 일본패의 ‘난폭자’라는 주먹패들은,

그랜드 살롱이라 할 아사히마찌(현 회현동)의 상요껜(山陽軒)으로 꾸역구역 모여들었다.

혼마찌깡의 부두목 다무라의 긴급 소집에 의한 것이었다.

양식(洋食)과 일식(日食)을 겸비한 주점으로,

3층 건물인 상요껜 3층에는 대연회를 가질 수 있을 만한 큰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연회장에 부두목 다무라 이하 실히 50명이 넘는 일본 주먹패들이 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