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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부여헌(扶餘軒) (27)

오늘의 쉼터 2014. 8. 27. 09:43

제16장 부여헌(扶餘軒) (27)

 

 

 

해론은 하는 수 없이 두 장군의 앞을 물러나왔지만 참담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아버지 찬덕이 죽은 곳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 지나치게 감정이 격앙된 탓이었을까.

또는 성을 되찾아 나라에 공을 세우고도 근심에 사로잡힌 두 장군을 보면서

신라의 암울한 장래와 자신의 앞날에 깊은 환멸을 느낀 때문이었을까.

그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터벅터벅 군사들 틈으로 돌아와 부여청이 고함지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돌연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지난날 우리 아버지가 운명하신 곳이 바로 이곳이다!

나 또한 백제 사람과 여기서 싸우게 되었으니 오늘은 내가 죽을 날이다!”

말을 마치자 미처 만류할 겨를도 없이 훌쩍 말잔등에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성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부여청은 성문이 열리는 순간 잠시 당황하였으나 이내 말을 박차고 달려나오는 자가 단기임을

알고 나자 들고 있던 칼을 단단히 그러잡았다.

“네 이놈, 어디서 함부로 썩은 주둥이를 놀리느냐!

가잠성은 본래 우리 아버지께서 지키시던 신라의 성이다!

이제야 침략한 자들을 응징하여 만시지탄이거늘 도리어 어디에 와서 언성을 높인단 말이냐!”

해론이 10여 보를 격하고 소리치자 부여청은 그가 찬덕의 아들임을 알고 소리를 높여 웃었다.

“오호라, 네가 바로 몇 해 전에 죽은 찬덕이란 자의 자식놈이구나. 과연 부전자전이다.

아비가 고목에 머리를 처박고 멀쩡한 목숨을 끊더니

그 자식놈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구나.”

부여청은 그러잖아도 잔뜩 약이 오른 해론의 속을 있는 대로 뒤집어놓았다.

“그 나불거리는 주둥아리를 당장 멈추지 못하겠느냐!”

해론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아 달려들자 부여청도 지지 않고 들고 있던 칼로 응수했다.

양자의 칼이 허공에서 불꽃을 뿜으며 사오 합 춤을 추었다.

“어린 놈이 칼을 쓰는 솜씨가 제법이구나.”

부여청이 예상외로 매서운 해론의 칼솜씨를 칭찬하자 해론은 더욱 격노했다.

“네 따위가 감히 누구를 품평하는가!”

그리곤 칼날을 세워 쉴틈없이 부여청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당황한 사람은 성루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변품과 장춘이었다.

“저것이 해론이 아니냐?”

변품이 크게 놀라 묻자 군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말하며,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성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어서 징을 울려라! 징을 울려 해론을 돌아오도록 하라!”

변품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무리 성루에서 징을 울려도 해론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부여청과 어울려 싸움에만 열중했다. 변품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마침내 갑옷을 갖춰 입고 무기를 찾아들었다.

“어떻게 하실 참이오?”

장춘이 물었다.

“저대로 두면 해론은 죽습니다. 기왕 일이 이렇게 됐다면 싸울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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