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 이런인생(5)
(1350) 이런인생-9
다음날 오전, 조철봉의 사무실로 들어선 김기중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조철봉과 마주 앉았을 때 기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한테 이런 부탁을 해서 정말 미안하고 창피하다.”
“얀마, 됐어.”
조철봉이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세상에는 이런일도 있고 저런일도 있는거다.
오만가지 곡절이 있단 말이지. 너 혼자만 세상 걱정 다 짊어진 놈처럼 인상 쓰지마라.”
“그런데.”
정색한 기중이 조철봉을 보았다.
“내가 마음을 좀 바꿨다.”
“응? 어떻게?”
“나, 안살란다.”
한미옥과 헤어진다는 말이다.
기중을 바라보던 조철봉이 소파에 등을 붙였다.
“잘 생각했다. 그래야지.”
조철봉이 머리까지 끄덕였다.
“그래, 그럼 얼른 수속을 해. 금방 판결이 날테니까. 내가 도와주지.”
“아니.”
기중이 당당한 표정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그냥 헤어지는건 아냐. 지금 우리가 추진중인 일은 그대로 진행 시킬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년을 가만두지 않겠다구.”
눈을 치켜뜬 기중이 이를 악물었다.
“내가 당한 십분지 일, 아니, 백분지 일이라도 그년한테 복수를 하고싶어.”
“…….”
“나는 성인군자가 아냐. 평범한 남자라구.
그냥 잊고 용서하고 헤어지지는 못하겠다.
죽을때까지 나는 이 원한을 잊지 못할테니까 말야.”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네가 그년을 철저히 짓밟아줘.”
“얀마. 내가.”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기중을 노려보았다.
“왜 하필 나냐? 그런식으로 하려면 다른 사람을 시켜. 난 바쁜 사람이야.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네 와이프가 지금 만나고 있는 놈을 떼어내고 집으로 돌아오도록 하는데는
내가 좀 도울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손을 댄다는 뜻이 아니었단 말야.”
그러고는 조철봉이 목소리를 낮췄다.
“연장 크고 기술 좋은 놈은 얼마든지 있어.
그런 놈을 고용하면 된단 말이다.
나는 그럴 작정이었는데 뭐라구? 내가 짓밟으라구?”
조철봉이 머리를 저었다.
“나는 못한다. 내가 아무리 개새끼라도 친구 와이프 따먹지는 않는다.
사이가 좋건 나쁘건간에 말야. 넌 오해 한거야.”
“그렇다면 너도 내 속을 모르고 있었던 거야.”
하면서 기중이 숨을 뱉었다. 시선을 내린 기중이 말을 이었다.
“넌 이해 못하겠지만 네가 그년을 따먹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난 대리만족을 느낀거다.
네가 내가 된것이지. 너한테 매달려 신음을 뱉는 그년을 상상하면 열이 올랐어.”
그러더니 기중이 엄지를 구부려 제 연장을 가리켰다.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라 있다.
“이놈은 미동도 하지않았지만 말야.”
“어쨌든 난 못한다.”
“부탁한다. 철봉아.”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선 기중이 조철봉의 앞쪽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머리를 들어 조철봉을 올려다보는 기중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내 소원을 들어줘. 이 병신의 소원을.”
(1351) 이런인생-10
“저기 기둥 옆의 왼쪽에 앉은 여자입니다.”
박경택이 눈으로 옆쪽 기둥을 가리켰다.
나이트클럽 런던은 강남에서 부킹이 잘 되는 곳으로 알려졌지만 뜨내기가 많았다.
뜨내기란 지방에서 원정 온 아줌마들과 그 아줌마를 노리는 백수들을 말한다.
그래서 얼핏 보면 분위기가 아주 활발한 것 같아도 조철봉에게는 아니올시다였다.
차분하지가 않고 살벌하기까지 한 것이다.
요즘은 고속도로나 전철이 잘 뚫려서 천안에서 서울로 원정 나온 아줌마들도 많다.
시간이 한 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거리감은 느끼는 터라 마음이 가벼워진다.
마치 외국에 나간 것처럼 들뜨고 겁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백수들이 그냥 두겠는가?
조철봉은 기둥 옆에 앉은 여자를 보았다.
거리는 직선으로 10m 정도. 클럽 안은 어둑했지만 여자의 얼굴은 다 드러났다.
여자는 친구 두 명하고 동행이었는데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미인이다.
옷차림도 세련되었다.
주위 테이블에 앉은 백수들이 군침을 삼키고 있는 것이 훤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웨이터들이 접근했다가 그 사이에 하나가 거절을 당하고 돌아갔다.
그때 담당 웨이터가 다가왔다.
“모실까요?”
웨이터가 경택에게 물었는데 태도가 아주 공손했다.
경택이 약을 써 놓은 것이다.
경택이 머리를 끄덕이자 웨이터는 서둘러 몸을 돌렸다.
여자는 바로 한미옥이다.
오늘은 한미옥이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나는 날이었는데
저녁을 먹고 나면 꼭 이곳에 오는 것이다.
이런 날은 백종수를 부르지 않는다.
저쪽 테이블에 갔던 웨이터가 소곤거린 지 10초도 안 되어서
미옥이 친구 한 명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위 테이블의 백수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는 한편으로
제 담당 웨이터에 대한 울화통을 터뜨리는 사이에 미옥이 다가와
조철봉을 일별했다.
“앉으시지요.”
엉거주춤 일어선 조철봉이 미옥에게 자리를 권했고 친구는 자연히 경택의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저, 조철봉입니다.”
조철봉이 인사를 하자 미옥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한미옥입니다.”
본명을 말한 것이다.
조철봉은 이렇게 부킹이 되었을 때 작업시간을 맥시멈 3분으로 잡았는데
대부분의 백수들도 같은 모양이었다.
그 3분안에 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3분이 넘으면 실패의 확률은 90% 이상이다.
그러나 조철봉은 오늘 여유를 부렸다.
잠자코 미옥의 앞에 양주잔을 놓고는 술을 따랐는데 딴전을 보기까지 했다.
그것은 이미 웨이터에게 약을 썼기 때문이다.
지금 웨이터는 미옥의 당번 웨이터이기도 한 것이다.
부킹이 되고 안 되고는 전적으로 웨이터에게 달렸다.
미리 약까지 먹은 웨이터가 제 단골인 미옥을 요리 못한다면 말도 안 된다.
웨이터 그만두는 것이 낫다.
“합석하십시다.”
미옥에게 잔을 건네준 조철봉이 불쑥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층 방으로 올라가 조용한 분위기에서 마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자 미옥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죠, 뭐. 그런데 우린 셋인데.”
“친구분이 아래층에서 놀고 싶으시다면 지금 테이블을 그대로 사용하셔도 되고.”
조철봉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방에서 부킹 받으셔도 됩니다. 춤추러 내려오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뇨, 그냥 셋이 올라갈게요.”
미옥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시원시원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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