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 이런인생(1)
(1342) 이런인생-1
김기중이 조철봉을 찾아왔을 때는 퇴근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어서 와라.”
하고 조철봉이 반갑게 맞았지만 내심으로는 좀 불편했다.
김기중은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가장 친했던 친구중 하나였다.
3년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붙어 다니면서 학창시절의 추억은 다 만들었다.
지금도 고교 시절을 생각하면 언제나 김기중이 떠오른다.
모든 사건은 김기중과 함께 일으켰고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한 지 어언 20년, 기중은 재수를 하다가 지방대에 진학했는데
지금은 꽤 큰 할인점의 사장이 되어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각자 길이 달라졌기 때문에 처음 몇년은 일년에 서너번쯤 만나다가
10년쯤 지났을 때부터는 서로 소문만 듣게 된 사이가 된 것이다.
지금도 조철봉은 기중을 5년만에 만난다.
기중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저녁 시간은 비워두었으므로 조철봉은 같이 회사를 나왔다.
회사 근처의 한 식당 방에 자리를 잡고 앉을 때까지 기중은 별로 말이 많지 않았다.
표정도 약간 어두워서 조철봉은 기중이 돈을 빌리러 온 것으로 판단했다.
할인점의 경쟁이 심해져서 망하는 곳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이다.
“얌마, 뭐, 고민 있냐?”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조철봉이 웃음띤 얼굴로 기중을 보았다.
이미 속으로 계산은 해 놓았다.
떼어 먹힐 요량을 하고 돈을 빌려줄 작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많이 줄 수는 없다.
놈이 얼마를 원하는지 모르지만 1천만원이다.
그때 기중이 시선을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너, 잘 논다면서?”
“엉?”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야?”
“노는 것 말야. 애들한테 다 들었어.”
“이 자식이 난데없이.”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입맛을 다셨다.
“어떤 얘기를 들었단 말야?”
“네 그 힘이 좋다고 소문이 났더라.”
“어떤 시불놈이.”
했다가 조철봉은 곧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소문이 났을 것이었다.
동창들하고 카바레, 노래방, 가라오케에다 룸살롱을 간 것이 어디 한두번인가?
아마 수십명이 소문을 냈을 것이다.
“짜샤, 힘은 무슨, 술마시면 괜히 폼잡는 거지. 내가 옛날에도 그랬잖아?”
조철봉이 그냥 넘겼지만 기중은 여전히 정색했다.
마침 음식상이 들어왔으므로 그들은 말을 그쳤다.
다시 방에 둘이 되었을 때 기중이 입을 열었다.
“너 집안 별일 없지?”
조철봉이 쉽게 대답하고는 수저를 들었다.
기중한테 가정사를 주절주절 털어놓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놈은 전에는 화끈했는데 지금은 변했다.
변죽만 울리고 돈 이야기는 꺼내지 못한다.
그때 다시 기중이 말했다.
“내 마누라 알지?”
“그럼 알지.”
먹는데 열중한 시늉을 하면서 조철봉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니 마누라 괜찮았지. 미인이라고 소문도 좍 퍼졌더구만.”
기중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신부가 미인이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러나 미인 아닌 신부가 있었던가?
그 후로 수십번 결혼식에 다니는 동안 그 감동은 지워져 있었다.
기중이 젓가락으로 반찬을 깨작이며 말을 이었다.
“마누라 때문에 온거야. 내가.”
그순간 조철봉은 머리를 들었다.
‘이게 도무지 무슨 수작이야?’ 하는 표정이었다.
(1343) 이런인생-2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기중이 희미하게 웃었다.
“마누라가 바람을 피우거든.”
놀란 조철봉이 씹던 것을 삼키고는 눈만 크게 떴고 기중의 말이 이어졌다.
“몇 년 돼, 바람 피운 지.”
“도대체.”
수저를 내려놓은 조철봉이 정색했다.
“얀마.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들어 봐.”
기중도 수저를 내려놓고 고쳐 앉았다.
그러고는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난 성불능이다. 그게 안 서.”
당연히 조철봉은 대꾸하지 못했고 기중의 말이 이어졌다.
“5년쯤 되었어. 별놈의 방법을 다 썼지만 안 돼. 그래서 지금은 포기했다.
안 선 채 살기로 했단 말이지.”
기중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은 번들거렸다.
물기가 밴 것 같았다.
“당연히 마누라가 밖으로 돌았지. 남자가 수시로 바뀌더구먼.
처음에는 내가 남자 뒷조사까지 했는데 일년쯤 지나고 나서 포기했다.
마누라가 한 놈한테 정을 주지 않고 석달쯤 지나면 바꾸는 거야. 그래서 안심도 됐었지.”
“안심?”
참다 못한 조철봉이 겨우 그렇게 묻자 기중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안심. 재산이 마누라 앞으로 다 되어 있어서 나쁜 놈을 만나 사기나 당하면
내가 거지 되거든. 그런데 마누라가 알아서 탁탁 정리를 해 가니까 마음이 놓이더란 말야.”
“나아, 참.”
“5년 동안 한 스물댓 명 바꿨을 거다. 마누라가 그걸 좋아하거든. 사흘에 한 번은 꼭 해야 돼.”
“시발.”
“어떤 때는 집으로도 놈팡이를 불러서 하는데,
난 그동안 사우나에 가 있거나 가게에 가거나 했다.”
“참 좆같네.”
“뭐, 견딜 만해. 내가 불능이니까 이해를 해야지.
마누라하고 사이도 괜찮았고, 아이 둘도 잘 자라고.”
“얘들은 네 새끼냐?”
“응, 그래. 옛날에는 잘 섰으니까.”
“그래서?”
“응?”
기중이 눈을 끔벅이며 조철봉을 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 정신 좀 봐. 본론을 말 안 했네.”
그러더니 긴 숨을 뱉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요즘 마누라가 이혼을 하자는 거야.
같이 살고 싶은 남자를 이제야 만났다는구먼.”
“…….”
“어떤 놈이냐고 물었더니 아주 탁 까놓고 말해주더라. 그게 그렇게 좋다는 거야.
그놈 생각을 하면 몸이 후끈거려서 가만 있지를 못하겠다는구먼. 그래서 같이 살아야겠대.”
“…….”
“내떤 놈인지 궁금해서 내가 조사를 해보았지.
그런데 이노무 시키가 전과자야. 강도 강간범이더라고.
생긴 것도 볼품없고 체격도 주먹만한 데다 고등학교 중퇴에 직업도 없어.
여자 등치면서 지금까지 먹고 살아 온 놈이지. 연장이나 휘두르면서 말야.
나이는 마흔. 가족도 없고 집도 없어. 고향이 부산이라는데 원적지에다 조회해 봤더니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더구먼.”
그러더니 기중이 다시 길게 숨을 뱉었다.
“마누라가 재산 다 갖고 있어. 가게에다 부동산 합하면 모두 20억쯤 돼.
이거 어떻게 하면 좋겠냐?”
“얀마, 갈라 서. 돈 몇푼 받고.”
조철봉이 매몰차게 말하고는 술잔을 들었다.
“시발, 추접하게 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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