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부여헌(扶餘軒) (18)
용춘과 서현의 각별한 사이를 알고 있던 백반이 이를 좌시할 턱이 없었다.
그는 며칠을 두고 골똘히 고민한 끝에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곧 임종과 칠숙의 입을 통해 가잠성을 백제에 빼앗길 때인 대여섯 해 전의 일을
새삼스럽게 거론하도록 만들어 조정의 공론을 유도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 또한 겉으로는 민심 수습의 명분을 내건 일이었지만,
안으로는 서현의 일뿐 아니라 금성의 신하들 가운데 일부 자신에게 반감을 가진 자들을
외관으로 전보시키려는 일거양득의 계략이었다.
임종과 칠숙은 백반의 뜻에 따라 그때 힘껏 싸우지 않은 세 주의 군주들을 교체해야 한다고
철 지난 인책론을 폈는데, 그 가운데는 임종의 아우 월종(月宗)도 포함돼 있었으므로
아무도 이를 사사로운 처사로 여기지 않았다.
이때 상주는 일선주(一善州:선산)로 명칭이 바뀌고 후직의 아들 일부가 초대 군주로 나가
있었으므로 임종은 위화부 대신인 이찬 대일(大日)에게 말하여 한산주(북한산주)의 군주를
일길찬 변품으로 바꾸면서 하주 군주로는 아찬 서현의 벼슬을 대아찬으로 높여 천거토록 하였다.
변품이나 서현은 백반과는 만사가 불상득하여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위화부의 품신이 있고 난 직후 왕은 때마침 새해 인사를 하러 입궐한 용춘 내외를 만나
한산주와 하주의 일을 말하며 은근히 용춘의 뜻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알지 못할 것이 대답을 하는 용춘의 태도였다.
“오랫동안 세상을 등지고 살아온 신이 어찌 막중한 국사를 입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백제 세력이 근자 지나치게 팽창하므로 이를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방금 전하께서 말씀하신 양주는 백제와 지경을 접했거나 또는 적의 침략에 대비하는
극히 요긴한 곳으로, 그 군주의 직급을 높이고 믿을 만한 이들로 교체하는 일은
구멍난 성곽을 보수하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위화부에서 천거하였다면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분명할 테니
그대로 가납하시는 것이 옳을 듯싶습니다.”
용춘은 한사코 서현 내외를 금성으로 불러들이려는 아내 천명의 뜻과도 전혀 동떨어진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는 서현의 일을 따로 묻는 왕에게 오히려 그가 금성에 오는 것을 반대하는 듯이 말하기까지 했다.
“신이 젊어서 한때 뜻이 맞는 몇몇 사람들과 가깝게 지낸 것은 사실이오나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고
또 만사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서현도 옛날에 사귄 허다한 이들 가운데 하나일 뿐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가 만명 고모와 혼인하여 왕실과 약간의 사사로움이 있기는 하오나
어찌 사사로움으로 국사의 위중함을 논하겠습니까?
신에게는 다른 마음이 하나도 없습니다.
만일 서현이 금성에 온다면 신의 안빈낙도가 깨어질까 되레 걱정스러울 따름입니다.”
오랫동안 만노군 태수로 봉직했던 서현이 급작스레 하주의 군주로 부임하게 된 사정은 이와 같았다.
그 외에도 백반은 자신에게 반감을 가진 많은 자들을 선별하여 외관으로 내몰았다.
자리가 없으면 새로 자리를 만들고, 갖은 이유를 갖다 붙여 왕의 허락을 얻어냈는데,
대개는 국경의 방비를 강화한다는 명목 아래 그 사람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여
그가 아니면 적임자가 없다는 투의 방법을 썼다.
그리고는 그들이 불만하여 모반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케케묵은 전조의
상수(上守:일종의 인질로, 뒷날의 其人) 제도까지 복원해 이를 적극 활용하였다.
본래 신라에는 상수라 하여 외주의 독자적인 병권을 가진 군주(軍主)의 자제 가운데
한 사람을 중앙에 볼모로 잡아두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반란과 역모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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