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부여헌(扶餘軒) (19)
한편 아버지 찬덕의 공으로 약관 20세에 등관하여 금성에서 대내마 벼슬에 다니던 해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백반은 해론이 친구들과 어울려 걸핏하면 조정의 무기력함을 한탄할 뿐 아니라
나라에 백반과 같은 난신이 없었으면 찬덕이 죽지 않았을 거라고 비난하며 다닌다는 소문을 듣자
별안간 칠숙을 불러 금산(金山)에 당주 자리를 만들라고 주문하였다.
“본래 금산은 당주를 두지 않았던 곳인데 어찌하여 새로 자리를 만들라 하십니까?”
칠숙이 의아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었다.
“그것은 백제의 세력이 성하기 이전의 일이요,
지금은 가잠성마저 뺏겼으니 마땅히 당주를 두어 방비를 강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선화가 왕비로 있고 부여장이 우리와 선린을 도모한다고는 해도 표리부동한 짓을
자꾸 저지르는 것으로 봐서는 앞날의 일을 장담할 수 없네. 어서 시키는 대로 하게나.”
그쯤 되면 칠숙도 백반의 속셈을 어렴풋이 짐작할 만했다.
“하면 혹 금산에 당주로 내보낼 만한 자가 특별히 있는지요?”
“있지.”
“그것이 누굽니까?”
“죽은 찬덕의 아들 해론이란 놈일세.”
그제야 칠숙은 백반의 말뜻을 통연히 깨달았다.
혈기방장한 해론을 가잠성과 인접한 금산의 당주로 삼는다면 그 뒷일은 보지 않아도 뻔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런 칠숙도 백반의 진정한 속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가 궁금했다.
“범을 잡으시겠습니까, 개를 잡으시겠습니까?”
칠숙이 은근한 비유로 소리를 죽여 묻자 백반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스쳤다.
“어느 쪽이건 해될 것이 있는가.”
“범을 잡자면 사냥에 쓰일 여러 가지 채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지만
만일 개를 잡자면 그럴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신이 병부령의 막중대임을 맡았으니 이를 결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칠숙이 거듭 물으니 백반이 한참 생각하고 대답하기를,
“지금이 어디 채비를 갖춰 사냥질을 할 때인가.”
하고서,
“그 개가 평상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혼자서도 능히 범을 잡을 수 있다고
꽤나 큰소리를 치던 개일세. 그러니 소원을 들어주자는 게야.
하여 개가 범을 잡아오면 다행이요,
설사 그러지 못하더라도 크게 손해날 일은 벌이지 말게나.”
하는 말로 끝을 맺었다.
백반의 의중을 확인한 칠숙은 당장 편전으로 달려가서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이를 왕에게 아뢰었고,
수월하게 윤허를 얻어 해론을 금산의 당주로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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