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부여헌(扶餘軒) (15)
“성주산에 까마귀 떼가 나타나 짖어대는 것은 이곳에 절이 들어설 조짐이지
저자에 나도는 소문처럼 흉조가 아닙니다.
흉조가 아닌데 소인이 어찌 그 같은 소문을 지어내고 퍼뜨린단 말씀입니까?”
이번에는 왕이 깜짝 놀랐다.
“절을 짓기 위함이라고?”
“그렇습니다.”
왕은 백기가 모산성을 취한다면 흉문의 진원지인 성주산에도 대찰을 지어
그것으로 뒤숭숭한 민심을 다스리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한데 백석이 용케도 자신의 뜻을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으니 놀랍고 신통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성주산에 절이 들어선다는 말은 거꾸로 백기가 모산성을 취한다는 소리였다.
“성주산에 과연 절이 들어서겠느냐?”
“그렇게 될 것입니다.”
“허, 네가 그것을 어찌 안단 말이냐?”
“소인이 다른 재주는 없사오나 그만한 앞일쯤은 내다볼 수 있습니다.”
장왕은 백석의 신통력을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네가 보자하니 말에 제법 묘한 구석이 있구나.
만일 이곳에 절을 짓게 된다면 그 이름은 무엇이 될 것 같으냐?
짐이 미리 정해둔 바가 있으니 어디 한번 알아맞혀보라.”
왕의 제안에 백석이 소리 없이 웃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오나 소인이 글자를 내어도 전하께서 아니라고 하시면 그만이 아닙니까?
춘남도 미리 쥐의 배를 갈라보고 물었더라면 죽음은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변에 호위하고 섰던 신하들은 백석의 무례함을 들어 다시 일제히 꾸짖고 나왔지만
왕은 백석의 그런 마음을 충분히 헤아렸다.
“네 말이 옳다. 하면 너와 내가 동시에 글로 적어 이를 대조해보면 어떻겠느냐?”
“그렇게만 한다면 소인은 아무것도 걱정할 일이 없겠습니다.”
“만일 알아맞히지 못하면 그땐 어떻게 하겠느냐?”
왕이 웃으며 묻자 백석이 대답했다.
“소인의 목을 내놓겠습니다.”
이에 두 사람이 필묵을 가져다가 아직 짓지도 않은 사찰의 이름을 기명하게 되었다.
처음에 장왕은 까마귀 떼가 모여들어 국운의 융성함을 일러주었으니
절을 짓게 되면 오회사(烏會寺)라 사명(賜名)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별안간 당석에서 회(會)자를 합(合)자로 바꾸어 오합사(烏合寺)라 적었다.
쓰기를 마친 왕이 시립한 신하들에게 자신이 지은 이름을 먼저 건네고
백석의 것과 비교하도록 하였는데, 하명을 받은 신하들이 양쪽에서 받은 것을 펼쳐보았더니
똑같이 오합사라는 이름이 나오고 다만 백석의 것에는 오회사라는 이름 하나가 더 얹혀 있었다.
이것을 두고 백석의 태도를 볼강스럽게 여기던 몇몇 사람이 흠을 잡아 말하며,
“이름이란 본시 하나인데 백석은 둘을 적었으니 알아맞힌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하니 왕이 백석의 써놓은 것을 친히 보고는 글로 적지 아니한 속마음까지 알아맞힌 데 대해
내심 크게 감탄했다.
“내가 요번 행차에 기인 하나를 얻었구나.”
왕은 죄를 주자는 신하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환도하는 거둥에 백석을 데려와 궁중의 길흉을
점치는 일관(日官) 직을 맡아보도록 하였다.
환궁한 뒤에 왕은 백석을 가까이 불러 모산성으로 군사를 낸 일을 말하고 과연 성을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있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이 되겠느냐고 꼬치꼬치 물으니 백석이 한동안 진지한 낯으로
간지를 짚어보고 나서,
“성을 얻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옵고 그 시기는 이달 중순을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아니나다를까,
그로부터 불과 열흘이 안 되어 성주산의 정병 8천으로 신라의 모산성을 습격한 달솔 백기한테서
성주를 사로잡고 성을 함락시켰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이때가 장왕이 보위에 오른 지 16년, 병자(616년) 10월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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