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부여헌(扶餘軒) (13)
“미륵사의 신라 백공들은 부여헌과 연문진이 죽기를 각오하고 금성으로 들어가서
세 치 혀로 신라 조정을 농락하여 데려왔으므로 저들의 호의라고는 보기 어렵고,
태후가 죽어 부의를 보낸 것은 어리석은 금성의 군신들에게 이견과 가설을 분분하게 만들어
자중지란을 유도하려는 짐의 일관된 계략에 불과할 뿐이오.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것은 농사를 짓기 위함이요,
가축을 양육하는 것은 고기를 얻기 위함이외다.
또한 과인이 단언컨대 국경을 접한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인정과 신의란 본래 없는 것이오.
짐의 증조부이신 성대왕께서는 신라의 진흥왕에게 공주를 바치면서까지 화친을 구했지만
끝내는 관산성에서 신라군의 손에 처참한 죽임을 당하지 않으셨소?
지금 양국이 겉으로 우호하여 지내는 듯이 보이는 것은 오로지 짐의 노력과 계략으로 그리 만든 것이오. 두고 보면 알겠지만 수나라가 망하고 나면 신라는 하루아침에 북방의 군사들을 되돌릴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당장 가잠성부터 찾으려고 군사를 낼 게 틀림없소.
지금 신라가 조용한 까닭은 모든 국력이 북방에 쏠려 있기 때문인데
어찌 우리가 이같은 호기를 놓칠 수 있겠소?”
그리고 장왕은 백기를 돌아보았다.
“지형과 지세로 보아 모산성이나 관산성은 신라를 제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지 중의 요지다.
더군다나 모산성은 지난번에도 군사를 내었다가 패한 일이 있어 과인은 꿈에서도
아직껏 이를 절통하게 여기고 있다.
백기는 성주산의 잘 훈련시킨 군사들을 데려가서 모산성을 취하지 않겠는가?
지금 급히 군사를 내어 친다면 성을 수중에 넣기란 마치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수월할 것이다.”
“신 역시 모산성의 일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 꿈에서도 이를 설욕할 때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그처럼 말씀하시니 무엇을 더 망설이겠습니까?
벼락같이 모산성을 쳐서 전하께 바치겠나이다!”
“저 성주산 자락에 펄럭이는 수백 마리의 까마귀 떼를 가리켜 흉조라고 말하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를 길조라고 보는 사람은 그대와 나, 둘뿐이다.
누구의 견해가 옳은 것인가는 두고 보면 알 일이지만 만일 그대가 모산성을 쳐서 수중에 넣는다면
짐은 이곳에도 영물 떼의 출현을 기념하는 사찰을 짓고 천하의 상서로운 기운이 백제에 임하였음을
온나라에 알리도록 하겠노라.
백기는 과인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말라.”
왕의 당부를 들은 백기는 우렁찬 음성으로 대답했다.
“신이 목숨을 걸고 기어이 모산성을 취할 것입니다!”
말을 마친 백기가 말을 타고 쏜살같이 훈련장으로 떠난 후에 장왕은 왕변나를 불렀다.
“점쟁이 춘남이 살던 마을이 이 부근이라고 했소?”
“그러하옵니다.”
“어디 가봅시다.
춘남은 비록 죽었지만 그 식솔들은 마을에 살고 있을 게 아니오?”
“글쎄올습니다. 아무튼 신이 안내는 하겠나이다.”
왕은 대신들을 거느린 채 성주산 서편 마을로 내려와서 춘남의 후손들을 수소문했다.
마을의 장리가 왕의 거둥을 알고 황급히 달려와서 부복하여 고하기를,
“춘남이 죽은 것은 계축년 가을로 지금부터 23년 전의 일입니다.
춘남이 나라에 죄를 짓고 참형된 이후로 식솔들이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그 종적을 알 바 없으나
다만 그의 조카 하나가 마을 어귀에 그대로 살고 있는데,
춘남을 닮아 제법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알아맞히는 신통한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하므로 왕이 당석에서 장리에게 그를 찾아 데려오라고 말했다.
한참 만에 장리를 따라온 춘남의 조카는 이름이 백석(白石)이요,
나이는 고작 스물이 될까말까한 청년인데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허우대에 기품이 있어 보였다.
왕이 백석을 향해,
“네가 춘남을 아느냐?”
하자 백석이,
“춘남은 계축년에 죽은 저의 백부라는 말만 들었을 뿐 소인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서 얼굴은 알지 못합니다.”
하고 공손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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