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부여헌(扶餘軒) (12)
장왕은 당석에서 훈련장의 책임자인 백기를 찾았다.
전날 동성대왕을 시해하고 가림성에서 모반한 백가의 후손 백기가
그 출중한 무예 덕택으로 해마다 승승장구하여 이때 달솔 벼슬까지 올라 있었다.
무장한 백기가 헐레벌떡 달려와 부복하자 왕이 온화한 얼굴로,
“오, 백기인가?”
마치 오래전에 헤어졌던 육친을 대하듯 반갑게 맞았다.
“고생이 많구나.”
“당치 않습니다. 신은 오직 뼈가 으스러질 때까지 마소의 도리를 다할 뿐입니다.”
“그대는 성주산에 날아드는 까마귀 떼를 어찌 생각하는가?”
왕이 묻자 백기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까마귀는 비록 미물이나 다른 새와 달리 새끼가 자라면 그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 봉양하고
죽는 날까지 효행을 다하는 것이 행실로 논하자면 웬만한 사람보다 도리어 윗길입니다.
이 세상에 땅짐승 날짐승이 수두룩하지만 까마귀만한 영물이 천하에 다시 있겠습니까?
항차 도성 이남에선 전조에 없던 나라의 대찰을 짓는 마당인데 마침 이 영물 떼가
우리 군사의 훈련장으로 찾아들었으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승전의 조짐입니다.
마땅히 군사를 내어 국운의 융성함을 만방에 알려야 할 줄로 압니다!”
마치 자신의 심중을 꿰뚫어본 듯한 백기의 말에 왕은 크게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백기는 하늘이 낸 장수다!
어찌 그리도 과인의 뜻과 일치하는지 신묘한 느낌이 들 정도구나!”
왕의 칭찬을 들은 백기가 우쭐하여 말을 보탰다.
“대왕께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군령을 내려주소서,
신이 이곳의 군사들을 이끌고 반드시 나라에 대공을 세워 이를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장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러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태산같이 믿었던 수나라가 고구려에 연패하여 이제는 그 사직의 존망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지경이니
남의 힘을 빌려 고구려와 신라를 정벌코자 했던 전날의 계획은 모조리 뜯어고쳐야 옳다.
경들은 어찌 여길는지 모르지만 과인의 짐작에 수나라의 사직은 오래가지 못할 듯하다.
그런데 신라는 아직 북방의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나라의 모든 힘을 북쪽으로 결집시켜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게 뻔하므로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신라를 친다면 다시 한두 개의 성곽쯤은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장왕의 말에 노신 왕효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의 생각도 전하와 같사오나 신라와는 근년에 매우 우호하여 지내는 것이 전조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미륵사에는 아직 신라에서 온 백공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갑술년에는 왕후마마의 증조모인 사도 태후의 상을 당해 대왕께서
친히 부의를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사정이 이와 같은 때에 군사를 낸다는 것은 자칫 소리(小利)를 탐하다가 대의를 잃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인정과 신의를 고려하여 그만두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백제의 신하들 가운데는 왕효린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대체로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롭게 지내기를 좋아하는 성향들인데다,
아무리 왕비가 백제의 국모라고는 해도 그 친정국인 신라에 군사를 내기가 인지상정으로
민망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더욱이 장왕 부처의 금실이 만인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유별하니
갈수록 이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장왕의 등극을 탐탁찮게 여기던 이들과 조정에서 쫓겨난 일부 전조의 중신들 가운데는
바로 이 점을 들어 왕을 헐뜯는 자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
왕이 저자에 나도는 허황한 풍설에도 친히 성주산까지 행차한 까닭은 나라에 이처럼
양론이 팽배한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것은 왕좌평이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는 말씀이오.”
왕은 일거에 왕효린의 말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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