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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부여헌(扶餘軒) (9)

오늘의 쉼터 2014. 8. 24. 20:52

제16장 부여헌(扶餘軒) (9)

 

 

 

그 뒤로도 신라에 대한 장왕의 공격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요동 정벌에 나섰던 수나라의 거듭된 패전 소식은 백제와 신라 양국 조정에도

적잖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당시의 국력으로 미루어 대륙의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가 한낱 고구려에 패할 줄 짐작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구려가 망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믿고 오직 그에 따른 대책만을 강구하던 양국의 군신들은

막상 눈앞에 나타난 기상천외의 결과를 보고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백만이 넘는 수나라가 고구려에 패하였단 말인가?”

“패해도 이만저만 패한 게 아니라지?

수군 백만이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 한 사람을 못 당했다는군.

그가 내지에 들어왔던 양광의 군대를 살수 물길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죄 쓸어 없애버렸다네.”

“그러기에 음식은 먹어봐야 알고 싸움은 해봐야 안다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구려가 과연 무섭긴 무서운 나라야. 수나라는 이제 망조가 들었다네.”

“기고만장한 고구려가 여세를 몰아 남침이나 하지 않을는지 되우 걱정스럽구먼.”

시일이 흘러가면서 조정뿐 아니라 민가와 저자에서도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여수대전(麗隋大戰)과 을지문덕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같은 정세 변화에 먼저 발빠르게 대응한 쪽은 백제요, 장왕이었다.

그는 양광이 첫번째 요동 정벌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누구보다 앞서

수나라의 멸망을 예언하며 조정의 중신들에게 말하기를,

“백만 군대를 내고도 소국을 정벌하지 못하고 도리어 패주한 것은 수나라가

천운(天運)을 얻지 못한 증거다.

자고로 천운을 얻지 못한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하나라도 있었던가?

양제는 마땅히 저 오월(吳越)의 부차(夫差)나 구천(句踐)이 그랬듯이

섶나무 위에서 자고 짐승의 쓸개라도 핥아야 하겠지만,

만일 그런다면 돌궐을 위시한 사방의 번국들이 당장에 수나라 황실을 얕잡아볼 것이요,

다시 군사를 내어 고구려를 친다면 승패는 고사하고 백성들의 원성으로 내란을 겪기 십상이다.

굽지도 접지도 못하는 양난 곡경이란 바로 양제가 처한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과인이 재미 삼아 추측하자면,

그는 이번의 패전으로 자신이 천하의 우스갯감이 됐다고 여겨 허둥지둥 설욕을 하려 덤빌 것이 뻔하다. 그럴 경우에는 비록 고구려 장수의 손에 목숨을 잃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란으로 사직을 잃어버릴

공산이 크다.”

하였는데, 과연 양광이 해마다 출전하고도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변으론 수나라 전토가 내란에 휩싸여 크게 어지러우니

백제의 신하들은 군주의 탁월한 혜안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장왕은 양광이 세번째로 군사를 내었다가 실패하고 환궁하였다는 말을 듣자

수나라의 힘을 빌려 고구려를 멸하겠다는 꿈을 깨끗이 단념했다.

이는 그때껏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북방 국경에 군사를 배치해둔 신라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일이었다.

장왕은 한동안 왕비 선화와 장자 의자(義慈)를 데리고 왕경 남쪽의 용화산으로 행차해

한창 공역중인 미륵사를 둘러보기도 하고, 사자사에 머물고 있던 무량 대사와 신라에서 온 백공들을

만나 일일이 불편한 점이 없는가를 묻기도 했다.

특히 신하들을 불러 신라의 백공들에게는 국빈으로 극진히 대접할 것을 당부하고

수시로 음식과 의복을 하사하니, 처음에는 남의 나라 절집 짓는 데까지 노역을 왔다고 투덜대던

신라 백공들도 차차 신바람이 나서 마치 제 집을 짓듯이 열의와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갑술년(614년)에 신라 영흥사에 거주하던 진흥왕비 사도 태후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자,

서둘러 귀국하는 무량 대사의 편에 비단과 토산품을 부의로 바치고 백정왕에게는 따로

애도의 뜻을 전하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듯 백제와 신라는 겉으로 우호와 선린의 관계를 유지하는 듯이 보였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금성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장왕의 치밀한 계략일 뿐이었다.

그는 신라와 사이좋게 지내는 동안에도 한편으론 끊임없이 군사를 훈련시키고 군비를 축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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