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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부여헌(扶餘軒) (10)

오늘의 쉼터 2014. 8. 24. 20:57

제16장 부여헌(扶餘軒) (10)

 

 

 

수나라가 거듭된 패전과 내란으로 사직의 존망조차 불투명해진 병자년(616년) 늦가을이다.

백제 군사들의 훈련장인 도성 서북방 성주산(聖住山)에 어느 날부터 난데없는 까마귀 떼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날이 갈수록 그 수가 늘어나서 민심이 무척 흉흉해졌다.

소문은 입과 입을 거쳐 곧 사비도성으로 전해졌다.

“까마귀는 예로부터 흉조(凶鳥)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근자 성주산 일대를 이 흉조 떼가 뒤덮어

마치 산자락이 검은 천을 둘러놓은 듯하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군사들 사이에선 조만간 국변이 있을 거라는 흉문이 횡행하고,

심지어 어떤 자들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군기와 민심을 어지럽혀 단속과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입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란 어떤 것인가?”

장왕이 묻자 신하들이 갑자기 모두 꿀 먹은 벙어리 시늉을 했다.

왕은 가까이 앉은 내신좌평 개보(愷普)에게 물었다.

“어디 경이 말해보라.”

“황송합니다.”

“괜찮으니 말을 하라.”

개보가 난처한 표정으로 왕을 바라보고서 이윽고 맥없는 소리로 대답했다.

“마마께서 신라의 백공들을 청해 미륵사를 짓기 때문에 미륵불이 영험을 발휘해

우리 백제가 신라에 망할 거라는 소리들이 나도는가 봅니다.”

“그래?”

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것뿐인가?”

하고 되물었다.

개보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노신 왕변나(王辯那)가 국궁하고 입을 열었다.

“신이 아뢰옵니다.”

“말을 해보오.”

“옛날 성주산 부근에 살던 자 가운데 위덕대왕 시절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춘남(春南)이라는

점쟁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국경의 강물이 역류하며 웅자(雄雌)를 반복한 일이 있어 대왕께서 춘남을 불러

점을 치도록 했는데, 나라에 음양의 도를 역행하는 국모가 생길 조짐이라

이를 경계하라는 점괘를 냈습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왕후마마께서 요사스런 여우의 말이라며 크게 진노하시고

다른 일로 춘남을 시험해 만일 실언을 하면 중형을 내리기로 한 뒤

쥐 한 마리를 잡아다가 함 속에 넣고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춘남이 쥐는 알아맞히면서 그 숫자가 여덟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실언으로 단정하고 춘남을 당장 참형에 처했는데,

춘남이 죽기 전에 하늘에 대고 맹세하기를,

자신이 죽은 후에 반드시 신라의 장수가 되어 백제를 멸망시키겠다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독설과 악담을 퍼부었나이다.”

“쥐는 알아맞히면서 그 숫자를 엉터리로 말하였으니 억울하게 죽은 것도 아니지 않소?”

장왕이 재미나다는 듯이 물었다.

“춘남이 죽고 나서 쥐의 배를 갈라보니 그 속에 새끼가 들어 있었는데 정확하게 일곱 마리였습니다.”

“호, 거 되우 용한 점쟁이였구만!”

좌평 왕변나의 설명을 들은 왕이 크게 탄복했다.

“한데 그 일과 지금의 일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씀이오?”

왕변나가 다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부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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