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부여헌(扶餘軒) (7)
백제에서 사죄사로 온 부여헌과 연문진이 절을 지을 백공까지 얻어 돌아갔다는 소식이 나라 안에 퍼지자 신라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가슴을 치며 통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특히 죽은 찬덕의 아들 해론(奚論)이 속해 있던 용화향도(龍華香徒)의 분노는
땅을 찢고 하늘을 가를 듯하였다.
이들에게 해론이 당한 불행은 바로 자신들의 불행이었다.
향도들은 곧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라의 처사에 강한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주장하기를,
“이대로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용화가 해론과 더불어 공산에 신력을 구하러 들어간 지 이미 수삭이 흘렀으니
그를 찾아서 의향을 물어보기로 하자.
만일 나라에서 해론의 원수를 갚지 않는다면 우리라도 나서야 할 게 아닌가?”
하므로 모든 이가 일제히 찬동하고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용화 김유신을 찾아나섰다.
향도들이 공산에 이르러 유신이 갔을 만한 데를 기웃거리다가
이윽고 중턱의 한 석굴 근처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는 해론을 만났다.
“자네들이 어인 일인가?”
해론이 향도들을 보고 반가움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향도들은 차마 나라의 처사를 해론에게 곧이곧대로 말하기가 어려워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부순(芙純)이 나서서,
“용화 도령은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가 긴히 의논할 것이 있어 이렇게 왔네.”
하고 유신의 행방을 되물으니 해론의 대답이 유신은 이미 공산에 없다 하고,
“여기서 치성을 드리던 중에 갈옷(褐衣)을 입은 어떤 노인을 만나 말 한 필과 보검 한 자루를 얻었는데,
수일 전에 그것들을 가지고 다시 어디론가 가셨네.”
하였다.
“행방은 말하지 않았나?”
“그렇네. 꿈에 무슨 감응을 받았다며 부랴부랴 떠나셨다네.”
“그럼 자네는 어찌하여 따라가지 않았나? 또 그 나뭇짐은 뭔가?”
향도들이 묻자 이번에는 해론이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나는 예서 가까운 암자에 거처를 정하고 이제 매인 몸이 되었다네.”
하고서,
“가산과 부모를 모두 잃었으니 갈 곳이 있는가.
용화 도령이 볼일을 보고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암자에서 입동냥, 잠동냥을 하고 지금 그 값을 하는 중일세.”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를 본 향도들의 가슴은 찢어질 듯하였다.
앞에 섰던 몇몇 사람들이 해론을 에워싸고 손과 어깨를 어루만지며,
“이 사람아, 그럼 진작에 내려오지 어찌하여 혼자 궁상맞게 이 고생을 하는가!”
“설마 우리가 자네 하나 건사를 못하겠나?”
“지금이라도 내려가세! 우리 집에서 나하고 함께 지내세나!”
하고 다투어 권하였다. 해론이 고개를 살며시 가로저으며,
“자네들의 우의는 고맙기 한량없네만 용화 도령이 나를 반드시 데리러 온다고 했으니
공연한 헛걸음을 시킬 수야 있는가?
여기서 지내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으니 걱정들 말게나.”
하자 해론과 같이 입도한 눌최가,
“용화 도령이 비록 헛걸음을 하더라도 우리가 자네를 데려간 줄 알면 이는 도리어 기뻐할 일이요,
산중에서 지내는 것이 견딜 만하더라도 어찌 내 집의 안방만 하겠는가?
뒷일은 모다 내가 책임을 질 테니 자네는 아무 소리 말고 금성의 우리 집으로 가서 나하고 지내세.
밥값 잠값은 안 받을 것이니 그것만 해도 여기보다는 한결 편하지 않겠는가?”
입으로는 농삼아 말을 했지만 눈에서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해론이 여러 동료들의 한결같이 권하는 바를 이기지 못하고,
“하면 우선 이 나뭇짐이나 부려놓고 보세.”
하고서 무리를 이끌고 암자로 갔다가 그곳에서 곧바로 하산해 눌최를 따라 금성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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