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6장 부여헌(扶餘軒) (1)

오늘의 쉼터 2014. 8. 24. 17:38

제16장 부여헌(扶餘軒) (1)

 

 

 

 

북방의 강국 고구려가 수양제의 잇단 침략으로 여러 해 홍역을 치르는 동안

남쪽에서는 백제와 신라 간에 한두 차례 큰 싸움이 있었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은 물론 백제였다.

장왕(璋王:무왕)은 자신과 신라 왕실의 묘한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여 겉으로는 화친을 말하면서

틈을 보아 신라의 변경을 침범하는 고도의 강유(强柔) 전략을 되풀이하였다.

그는 군사를 내고 나면 반드시 금성에 서찰을 지닌 사죄사를 보내어 백정왕(진평왕)에게 용서를 빌고

그것이 결코 자신의 뜻이 아니었음과 백관들에게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위엄을 참담한 문투로

탄식하곤 했다.

가잠성(대둔산 동편)을 뺏고 난 뒤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왕은 신라에서 크게 군사를 일으킨다는 소식을 듣자 급히 백정왕에게 보낼 글을 썼다.

“서(壻)는 위로 하늘의 뜻을 받들고 아래로 사람들의 추대를 이기지 못해 과분하고도 외람되이

제왕의 지위에 올라 서방 일역을 경륜하게 되었사오나, 양국의 맺힌 원한이 하도 뿌리가 깊고

연원이 오래되어 일조일석에 우호를 말하고 선린의 전통과 관례를 세우기가 뜻만 같지 아니합니다.

이는 오롯이 서의 부덕함에 그 연유가 있는 바이지만 나라의 대신들이 여출일구로 서의 증조께서

당한 참변을 말하며 개중 일부는 만류하는 서에게 선화의 일과 양국 왕실의 사사로움을 들어

도리어 무례한 언동마저 서슴지 아니하거니와, 불민하게도 서에게는 아직 이를 제압할 위엄이 없습니다. 서인들 어찌 문(文)과 인(仁)을 숭상하지 않을 것이며, 예(禮)와 도(道)를 모르오리까.

또한 부부는 일심이거늘 어찌 매번 선화가 상심하고 눈물짓기를 바라겠나이까.

그러나 이번에도 서의 뜻과는 달리 이리 떼 같은 사비성의 일부 장수와 신하들이 토호들과 공모하여

갑자기 가잠성을 공략하였다 하니,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의 내외로선 그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할 따름이요,

빙부께서 마음 아파하실 일을 생각하매 살을 저미고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괴로움에서

헤어날 길이 없나이다.

금성을 군박케 하고 황옥(黃屋:대궐)을 놀라게 한 황송함과 죄업이 실로 하늘에 닿았나이다.


이제 서의 내외가 의지할 데라고는 나라에 불사를 일으켜 금성의 황룡사와 같은 대찰을 짓고

영험한 부처의 힘을 빌려 양국의 화친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나라의 재앙을 구하고 선린과 우호의 전통을 세워 양국 수천 리가 농상(農桑)의 업을 즐기며

군사들이 한가로이 잠을 자게 될 날을 치성으로 빌고 또 빌 따름입니다.


공수(拱手)하고 사죄하며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거니와, 금일 이후로는 양국이 구원(舊怨)을 떨쳐버리고 영세토록 화호하여 마치 한집안과 같이 지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제넘은 청이오나 만일 빙부께서 서의 이같은 뜻을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황룡사와 같은 대찰을 짓는

일에 백공(百工)을 보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이는 양국 왕실의 우호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으로 소격한 양국 백성들의 마음을 잇는 일이며,

또한 두 왕실의 염원을 하나로 합치는 일도 되지 않으오리까.

엎드려 바라건대 빙부께서는 비탄에 잠긴 서의 내외에게 큰 덕을 내려주옵소서.“

이때 사죄사를 자청한 사람은 장왕의 이복 아우인 달솔 부여헌(扶餘軒)이었다.

장왕은 본래 지난번처럼 선화의 궁녀에게 이 일을 맡기려 하였는데 헌이 말하기를,

“만일 또다시 왕비마마의 궁녀를 내세우면 금성에서는 아무도 이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폐하의 계책까지 탄로 날 공산이 큽니다.

신에게 맡겨주시면 반드시 신라 왕실을 설득하여 군사를 막고 대찰을 지을 백공까지 얻어

돌아오겠나이다.”

확신에 찬 말투로 자신이 사죄사로 갈 뜻을 굽히지 않았다.

왕은 헌의 안위를 걱정하여,

“너는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될 주석지신(柱石之臣)이기도 하지만 과인의 곁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핏줄이다.

자칫 일이 잘못되는 날에는 살아서 돌아오기 힘들 것이니

아무리 국사가 막중한들 내 어찌 하나뿐인 아우를 사지로 보내겠는가?”

하고서,

“기실 이번 일은 과인도 반신반의하는 일이다.

금성에 아무리 사람이 없기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같은 꾀에 속아넘어가겠느냐?”

하니 헌이 웃으며,

“바로 그런 까닭에 굳이 신이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면 어려운 일이지만 신이 간다면 능히 원하는 바를 이루고 살아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다만 왕비마마께 말씀드려 신라에 아는 고승대덕이 있으면 그에게 서신을 보내어 대찰을 지을 방법을

의논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십시오.

그러면 일이 한결 수월하겠습니다.”

하고 거듭 청하였다.

 

왕은 그 뒤로도 몇 번을 더 만류했지만 헌이 한사코 고집을 꺾지 않고 워낙 자신만만해하므로

하는 수 없이 그의 청을 수락하였다.

장왕은 선화와 이 문제를 상의한 뒤에 헌에게 말하기를,

“오래전에 무량 대사라는 중을 용화산 사자사(師子寺)에서 만난 일이 있는데

그때 그는 중국으로 불법을 구하러 간다고 했다.

내가 직접 서찰을 한 통 적어줄 것이니 신라에 가거든 먼저 그를 찾아보도록 하라.

만일 무량이 돌아와 신라에 있다면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서,

“노상참변도 막을 겸 무량과 안면이 있는 문진을 데려가거라.”

전날 용화산 사자사에서 중노릇을 하던 한솔 연문진(燕文進)을 딸려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