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45

오늘의 쉼터 2014. 8. 24. 10:18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45 

 

 

 

 

화적패의 두 괴수 가운데 팽지만은 선비의 풍모를 갖춘 문덕을 얕잡아보고서,

“아비나 자식이나 그놈이 그놈이군. 나는 또 아비라 해서 힘깨나 쓰게 생긴 줄 알었지.”

하며 희롱하였으나 뒤에 나타난 텁석부리는 문덕을 보는 순간부터 얼빠진 얼굴로 서서

흡사 못 볼 것을 본 사람마냥 눈알만 끔벅였다.

팽지만이 그런 텁석부리를 힐끔 올려다보고,

“왜 그러오, 형님?”

하며 팔로 툭 치자 넋을 잃고 서 있던 텁석부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거기 계신 분이 혹시 을지문덕 장군이 아니십니까?”

철퇴를 스르르 땅에 내리며 공손한 말투로 물었다.

문덕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국의 화적패 따위가 어찌하여 내 이름을 아는가?”

하고 되물었다.

순간 텁석부리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장군은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요동성에서 우중문 장군을 속이고 달아날 때 제가 장군을 쫓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때 장흔, 곽사천, 문태 등과 같이 갔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상기(祥奇)외다, 상기!”

텁석부리 상기의 말을 들은 문덕도 그제야 수년 전의 일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과 얼굴은 알지 못하겠으나 그 철퇴를 보니 기억이 나는구만.”

“장군을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참으로 뜻밖입니다!”

“나도 그렇네.”

“우선 절부터 받으십쇼!”

“절이라니? 그대에게 까닭없이 절을 받을 이유가 없네. 관두게.”

“요동벌에서 오직 저 하나만 살려주신 은혜도 은혜려니와 설령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천하 제일의 영웅호걸을 만났는데 어찌 절을 하지 않고 뵙겠습니까?

저는 절을 할 까닭이 충분하니 받읍시오.”

상기는 문덕의 만류를 무릅쓰고 땅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두 사람의 수작을 어리둥절한 낯으로 보고 섰던 팽지만에게 절을 하고 일어선 상기가 말했다.

“자네도 어서 예를 갖추게! 백만 군대를 일거에 쓸어버린 바로 그 요동의 을지 장군이시네!”

“허, 나는 여러 사람한테 얘기만 들어 태산같이 크고 범같이 무서운 장수인 줄로만 여겼더니

오늘 뵈니 오히려 글하는 선비에 가깝소.”

팽지만도 날이 선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고 넙죽 절을 올렸다.

문덕이 돌연 무료하여 주위를 둘러보며,

“낭팰세. 화적패 괴수들에게 절까지 받다니……”

하고 쩍쩍 입맛을 다셨다.

을지문덕이란 말을 들은 객사 주인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내 집에 이토록 귀한 손이 드실 줄은 미처 몰랐소!

나는 이게 꿈인지 생신지 당최 분간이 안 섭니다! 과연 을지문덕 장군입니까?”

문덕의 주변을 맴돌며 얼굴을 샅샅이 뜯어보았다.

문덕이 귀찮기도 하지만 객쩍은 기분도 들어서,

“주인장도 나를 아오?”

하였더니 주인이 문덕의 손을 와락 거머쥐며,

“지금 세상에 을지문덕이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소!

 갈석산의 범도 을지 장군이 온다면 자취를 감추고,

 대흥의 우는 어린애들도 장군의 이름만 들으면 울기를 뚝 그친다는 판국입니다!”

감개무량한 듯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