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6장 부여헌(扶餘軒) (2)

오늘의 쉼터 2014. 8. 24. 17:43

제16장 부여헌(扶餘軒) (2)

 

 

 

 

이 무렵 양국의 경계는 과거에 비해 감시가 매우 삼엄하고 엄격하였으나

유독 법복을 입은 승려들의 통행에 한해서만은 백제와 신라뿐 아니라 삼국이 모두 관대한 편이었다.

부여헌은 검은 승복으로 변복하고 연문진은 중을 수행하는 시자처럼 꾸며 바랑에 칼 한 자루만

숨긴 채로 무사히 국경을 넘었다.

신라에 들어서자 이들은 우선 무량 대사를 수소문했고,

그가 곧 금성의 영흥사(永興寺)에 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영흥사는 신라 왕실의 최고 어른인 사도 태후 박씨(진흥왕비)가 출가하여 묘주(妙住)라는

법명으로 머물고 있던 절이었다.

본래 마음이 유순하고 불심이 깊었던 사도 태후는 자신의 며느리요

시누이인 만호 태후의 별난 성품에 환멸을 느껴 영흥사로 출가한 지 수년째였다.

중국에서 돌아온 무량은 주로 사도 태후에게 불법과 계행의 묘리를 강론하며 지냈지만,

효심 지극한 백정왕이 항상 할머니의 일을 궁금해하였으므로 양쪽의 안부를 전해주러

자주 왕실을 드나드는 처지였다.

부여헌과 연문진이 영흥사로 무량을 찾아가 장왕의 서신을 전하자 무량은 크게 기뻐하며

왕과 선화 왕비의 안부를 묻고,

“지명(知命)과 혜현(惠顯)은 두루 평강한가?”

특히 문진을 보고는 용화산 사자사의 소식을 물었다. 문진이 웃으며 자신이 비록 시자처럼 꾸몄으나

절집을 떠난 지 오래되었노라 말하며,

“축건 태자의 가르침을 저버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대왕 전하를 모시고 나라의 장수 노릇을 하며 삽니다.”

하자 무량도 문진의 환속을 오래전에 짐작한 듯이,

“자네의 기운이 산 속에서 장작이나 패며 지내기에는 아까운 것이었네.”

하고는 곧 자세를 고쳐,

“석가의 뜻을 펴는 데에는 사해가 한가지요,

나라와 국경이 따로 있을 수 없네.

내 어찌 사문의 한 사람으로 이웃 나라의 성스러운 불사를 돕지 않으리요.”

하며 장왕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부여헌은 무량에게 허리를 굽혀 고마움을 표시한 뒤에 비장한 어투로 말했다.

“하오나 얼마 전 가잠성의 일로 양국간에 사이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신라에서는 곧 크게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고,

백제에서는 또 이를 막기 위해 장정과 무기를 끌어모으느라 나라 전체가 어수선합니다.

신라는 장인의 나라요 백제는 사위의 나라인데,

이 천금의 옹서국(翁壻國)이 일부 종작없는 신하들 때문에 매번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싸워야 하니

실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형님을 대신해 가잠성의 일을 사죄하고자 왔지만 신라의 신하들은 틀림없이 대왕께 간하여

저를 죽이려고 들 것입니다.

제 어찌 그것을 각오하지 않고 왔겠으며, 저를 보낸 형님인들 그렇게 될 것을 모르오리까.

하나 양국의 선린이 저 하나의 죽음으로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흔쾌한 마음으로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모쪼록 대사께서는 제가 죽임을 당한 후에라도 반드시 이 불사를 실현하여 양국 백성들이

마침내 묵은 적개심을 버리고 서로 우애하며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하면 저는 비록 지하에서나마 편히 눈을 감겠습니다.”

“그대의 절개와 충성스러움이 참으로 곧고 아름답소.”

무량은 크게 한숨을 쉬며 탄복했다.

“그러나 그대와 같이 아름답고 곧은 뜻을 가진 이가 어찌 우리나라엔들 없겠소.

지금 이곳에는 금왕 폐하의 할머니이신 사도 태후께서 거처하고 계시니

그 어른께도 말씀을 올려서 어떻게든 옳은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리다.”

부여헌은 무량에게 몇 차례나 고맙다는 뜻을 전하고 영흥사를 떠나 대궐로 백정왕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