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58. 개척자(12)

오늘의 쉼터 2014. 8. 24. 17:17

358. 개척자(12)

 

 

 

 

(1311) 개척자-23

 

 

 거대한 환락의 도시, 인간의 모든 꿈이 성취되는 땅,

 

물질주의 문명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장소,

 

시베리아의 소돔과 고모라 등 아직 제대로 입주도 시작하지 않은 한랜드를 향해

 

매스컴은 갖가지 별칭을 만들어 내었다.

 

한랜드 건설 당국에서 향락산업 위주로 도시를 설계할 것이라는 발표를 한 후에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게 일어났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한랜드는 희망의 땅이었다.

 

한랜드 당국은 향후 5년간 2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해낼 것이며 1차연도에만

 

75만개가 될 것이라는 발표를 한 것이다.

 

한랜드의 임시 당국 역할인 건설본부를 통하여 지금까지 업종별로 35억불 정도의

 

투자 신청이 접수되었는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였다.

 

비판적인 어느 언론 매체는 한국의 부가 모두 한랜드로 넘어가기 전에 규제를 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한랜드를 방문한 여야 정치인들은 이곳이 한민족의 재도약에

 

적합한 땅이라는 결론을 내었다.

 

그때까지 투자를 망설이던 기업체와 투자가들에게는 그것만큼 확실한 보증이 없을 것이었다.

 

그후부터 투자 신청이 폭주했으므로 건설본부는 조정을 해야만 했다.

 

조철봉이 한랜드의 수도로 정한 뉴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6월 중순경이었다.

 

여름이었지만 기온은 영하 20도 정도였고 대지는 여전히 흰눈에 덮여 있었다.

“예정대로 7월1일에 스키장 두 곳이 오픈됩니다.”

임시 건물이지만 목재 3층 저택의 응접실에 앉은 조철봉에게 건설본부장 이동호가 보고했다.

 

이동호는 두달 동안에 스키장과 호텔 두 곳을 건설한 것이다.

 

스키장이야 자연 조건이 다 갖춰진터라 별로 힘이 안들었지만 각각 1천여실의 객실을 갖춘

 

호텔 공사는 한국인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인 이동호는 두달만에 하바로프스크에서 공수해온 목재를 이용해서

 

멋진 방갈로식 호텔을 건설했다. 감탄한 러시아 연락관이 지금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강상규가 말을 이었다.

“호텔과 부속시설에서 근무할 직원들 모집도 다 끝났습니다.”

강상규는 유흥사업 책임자로 카지노의 한국식 룸살롱, 노래방 등을 맡았다.

 

아직 한국 투자가들의 시설은 준비중이어서 지금은 요지에 조철봉의 직할 사업장부터

 

먼저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철봉의 옆에 앉아있던 최갑중이 정색하고 강상규와 이동호를 보았다.

“저녁 식사를 하고나서 시장님하고 시설 점검을 할테니까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강상규와 이동호가 서둘러 일어서더니 응접실을 나갔다.

 

그러자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갑중을 보았다.

“갑자기 웬 시설 점검이냐? 난 피곤하단 말이다.”

“피로도 푸실겸 강사장한테 준비를 해놓으라고 했습니다.”

갑중이 정색하고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기울이며 물었다.

“무슨 준비를 해?”

“한국식 룸살롱입니다.”

이제는 눈만 치켜뜬 조철봉을 향해 갑중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러시아 미인들로 채워 놓았는데 한국에서 데려온 마담들한테 예절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 … .”

“세계 최고급 룸살롱으로 만든다고 했으니 오늘 한번 가 보시는 것이.”

 

지구상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은 갑중뿐이다.

 

 

 

(1312) 개척자-24

 

 그 시간에 서울 독산동의 20평형 아파트 안에서 김주호씨는 눈을 부릅뜨고 대드는

 

안미자씨를 향해 소리쳤다.

“좋다. 그럼 이혼하자.”

그 순간 안미자가 퍼뜩 눈을 치켜떴는데 놀란 기색이었다.

 

결혼 20년째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김주호가 제 입으로 이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김주호도 제 말에 자기가 놀란 것 같았다.

 

말을 이으면서 목이 메는 것을 봐도 그렇다.

“나 혼자서라도 한랜드에 갈 테니까.”

“미쳤어.”

다시 안미자가 소리쳤지만 기세가 많이 약해졌다.

“그 망할 놈의 조철봉인지 무슨 철봉인지 하는 놈한테 홀렸어.”

“나는 그 작자 때문에 가는 게 아녀.”

김주호가 목소리를 높였다가 곧 어깨를 늘어뜨리며 길게 숨을 뱉었다.

여자용 액세서리를 생산하는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한 지 18년.

 

회사는 결국 3년전 부도가 났고 김주호는 나이 47세에 실업자가 되었다.

 

나이 50이 된 지금은 안미자가 보험설계사로 벌어오는 돈으로 딸과 세 식구가 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희망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작년에는 아파트 경비원을 석달간 했다가 절도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잘렸고

 

올해는 공사장 잡부로 두달쯤 나갔다가 3층 난간에서 떨어질 뻔한 일이 있고 나서 그만두었다.

 

두달 중 일한 날이 열흘도 안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김주호에게 한랜드 열풍은 난데없이 찾아온 희망의 신호와 같았다.

 

김주호는 인터넷에 떠 있는 한랜드 사이트는 다 섭렵했고 마침내 이주를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주호의 결심을 들은 안미자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웃음을 쳤다.

 

미쳤다고도 하면서 더 이상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안미자에게는 한랜드가 탕자나 도박꾼, 폐인들이나 모이는 곳이었다.

 

한랜드를 비난하는 어느 종교단체의 사이트가 그렇게 표현했다.

 

김주호가 말을 이었다.

“난 어제 한랜드 건설본부에다 신청서를 내었어. 그래서 내일 면접을 볼 거야.”

“맘대로 해.”

다시 기세를 찾은 안미자가 앙칼지게 말했을 때 김주호는 이를 악물었다.

“난 한랜드에서 다시 시작할 거야. 거기는 정년도 없고 나이 차별도 없어.

 

난 앞으로 30년은 더 일할 거야.”

“흥, 스키장 경비원으로?”

“거기서 공장 세울 거야. 거기도 여자들이 있을 테니까.”

김주호의 목소리에 열기가 느껴졌다.

“일단은 아무데나 취직한 다음에 기회를 잡을 거야.”

“아무튼 난 안 가.”

안미자가 단호하게 머리를 저었다.

“그리고 영주도 못 가. 갈 테면 당신 혼자서 가.”

“그러지.”

심호흡을 한 김주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기반을 잡고 나서 데리러 올 테니까 너희는 기다려 주기만 하면 돼.”

그러자 안미자가 다시 눈을 부릅떴지만 이번에는 독한 표정이 안 되었다.

 

그때 김주호가 말을 이었다.

“그래, 그곳은 춥고 아직 허허벌판이야.

 

그렇지만 그곳으로 밀려가는 사람들은 모두 희망을 품고 있어.

 

그리고 가능성이 있다고. 그 가능성이 뭔지 알아?”

김주호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안미자를 보았다.

“돈이야. 자금이 그쪽으로 몰려 간다고.

 

투자 신청이 오늘자로 벌써 62억달러가 되었어.

 

이건 금광을 찾아낸 것보다 더 확실한 기회의 땅이야.”

모두 인터넷에 떠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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