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 개척자(6)
(1299) 개척자-11
조철봉이 귀국한 것은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난 후였지만
인터넷의 한랜드 열풍은 더욱 강해져 있었다.
오성상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한랜드 사이트는 등록회원만 1백만명이 넘는 바람에
최대 회원수를 기록했고 유사 카페가 5백개도 넘었다.
그래서 조철봉은 극비리에 일본을 통해 귀국했는데 영일이만 걱정되지 않았다면
한랜드에 눌러있었을 것이었다.
한달이 넘도록 영일과 떨어져 있었으므로 조철봉은 근래 며칠간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루에 두어 번씩 꼭 영일과 통화를 했고 어떤 날은 대여섯 번도 했지만 그것으로 안심이 되겠는가?
서경윤에게 살림을 맡겼을 때는 영일의 얼굴을 열흘에 한번 볼똥말똥했고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없지만 지금은 다르다.
“거시기.”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조철봉이 입을 열었으므로 옆 좌석에 앉은
박경택이 몸을 돌렸다.
“예, 사장님.”
“영일이 선생님 말인데.”
“예, 사장님.”
경택이 긴장했다.
영일의 선생님이라면 이은지,
조철봉이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경택은 한국에 남아서 이은지를 보호했다.
물론 조철봉의 명령이다.
“요즘도 그 여자 만나나?”
조철봉이 묻자 경택은 머리부터 저었다.
무엇을 묻는지 알아챈 것이다.
“아닙니다. 그날 이후로 그런 일 없습니다. 사장님.”
그날이란 강명식이 경찰관에게 연행되어 간 날을 말한다.
지금 강명식은 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최소한 6개월의 실형을 살게 될 것이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은지가 조미선하고 레즈비언 관계를 끊었다는 말이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경택이 힐끗 운전사에게 시선을 주더니 목소리를 더 낮췄다.
“조미선 선생한테 남자가 생긴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대권이다.
대권이 미선과 함께 밤을 지내는 동안 소변용 기구가 본래의 기능을 찾았는지 어쩐지는 아직 모른다.
그날 이후로 대권을 만나지 못했고 전화로 물어볼 사항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선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것은 작업이 잘 진행되었다는 징조 같았으므로
조철봉은 희미하게 웃었다.
경택은 미선과 대권의 뒷조사까지는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선생은 어디 있지?”
“예? 지금.”
조철봉이 묻자 당황한 경택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밤 10시반이었다.
“아마 집에 계실 것 같습니다만.”
“알아봐.”
“예, 사장님.”
눈치를 챈 경택이 핸드폰을 들었을 때 조철봉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버튼을 누르자 곧 신호음이 울렸고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접니다.”
“어, 도착한 거냐?”
어머니가 목소리가 밝고 크게 울렸다.
“예, 지금 가는 중입니다.”
“영일이가 기다리고 있다.”
“30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알았다, 기다리마. 저녁은?”
“먹었어요.”
“또 먹어라. 영일이하고 같이.”
그러더니 어머니가 길게 숨을 뱉었다.
“영일이가 저녁에 네가 온다는 전화를 받더니 들떠서 저녁도 안 먹었다.
너 같은 놈도 영일이한테는 하나뿐인 아비니까. 에이그 불쌍한 것.”
어머니가 서너 번 혀를 찼다.
(1300) 개척자-12
“아빠.”
문이 열리자마자 영일이 달려와 허리를 부둥켜안았으므로 조철봉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코 안이 맹맹해지면서 눈이 흐려지는 것이 아닌가?
아뿔사, 하고 눈을 부릅떴지만 늦었다.
눈물이 이렇게 자동적, 순간적으로 빨리 쏟아질 줄은 몰랐다.
눈썹 하나 치켜뜨는 것도 다 계산이 되어 있던 강안남 조철봉에게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반사작용이었다.
“어이구, 이 자식.”
하면서 영일의 어깨를 껴안고 눈물이 흐른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리느라고
조철봉의 자세가 어수선해졌다.
“어서 오너라.”
하고 다가선 어머니가 가방을 받아 들었다.
어머니의 신경이 면세품 백에 쏠려 있는 것이 조철봉에게는 다행이었다.
영일에게 전자 장난감을 건네준 조철봉은 옷을 갈아입고 응접실로 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와 함께 영일도 소파에 앉아 조철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에는 안그랬다. 장난감만 쥐어주면 먹이를 문 개처럼 제 방으로 들어가 문까지 닫았던 영일이다.
조철봉은 영일의 옆에 앉아 어깨를 당겨 안았다.
“너, 신문에 이따만하게 났더라.”
하고 어머니가 운을 떼었을 때 영일이 말했다.
“아빠, 나도 인터넷에서 한랜드 사이트 들어가 봤어.”
“어, 너도.”
“선생님도 한랜드 회원이래.”
“어어.”
“이 선생이.”
하면서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집에 여러번 놀러왔다.
와서 저녁도 같이 먹고 영일이하고도 놀아주고 갔어.”
그러고는 어머니가 만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다 내가 만들었다.
나같은 시어머니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찾아봐라.”
그 때 영일이 조철봉에게 물었다.
“아빠, 나, 한랜드에 가면 안돼?”
“응?”
놀란 조철봉이 눈을 크게 떴고 어머니는 질색을 했다.
“얘가 미쳤니? 그 추운 땅에 뭐하러?”
“한랜드 사이트에 들어가봐, 할머니.”
영일이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키장과 호텔, 놀이터에다 공기도 맑아서 살기 좋다고 했어.”
그뿐인가?
수백개의 한랜드 카페에서는 경쟁적으로 지구상의 유일한 낙원을 설계하고 있었다.
오성상사의 한랜드 사이트는 하루에도 수천개의 이상향에 대한 건의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 조금만 더 있다가.”
조철봉이 영일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영일이가 다닐 학교부터 지을테니까. 그 때까지만 기다려라.”
“아빠, 몇밤 자고 가?”
하고 영일이 다시 물었으므로 조철봉의 가슴이 또 내려앉았다.
그래서 미리 얼굴부터 치켜든 조철봉이 어깨를 펴고 말했다.
“아니, 이번에는 오래 있을거다.”
“정말?”
“그래, 그러니까.”
그러자 어른처럼 머리를 끄덕인 영일이 일어서더니 제 방으로 들어갔다.
“저놈이 제 어미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영일의 방에 시선을 주면서 어머니가 낮게 말했다.
“요즘 애들은 애어른이여. 그 놈의 인터넷 때문인가 보다.”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었다.
지금이 제일 민감한 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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