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개척자(5)
(1297) 개척자-9
“정신이 어떻게 된 인간 같은데.”
신문을 턱으로 가리킨 재경부장관 이용섭이 물었다.
“도대체 이 사람 어쩌려고 이런답니까?”
“예, 부총리님.”
앞에 선 정책보좌관 박한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성상사쪽에 연락을 했더니 조철봉 사장은 아직도 시베리아 임차지에 있어서
기획실장이 서면 답변을 해왔는데요.”
박한규가 들고있던 서류를 이용섭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이용섭이 책상위에 놓인 신문을 치우고 서류를 들었다.
신문에는 ‘오성상사의 시베리아 토지 임차’라고 커다랗게 쓰여진 글자 밑에
조철봉의 사진까지 인쇄되어 있었다.
“흐음. 유흥시설을 세운다고? 아니 영하 50도가 넘는 허허벌판에 유흥시설?”
서류를 읽다 만 이용섭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박한규를 보았다.
“이거, 외화 반출하려는 핑계 같은데, 임차비용이 1억불이라고 했지요?”
“예, 그런데 현재까지 실제로 지급한 금액은 500만불 정도입니다.”
“하지만 건설비 명목으로 엄청나게 돈을 빼내지 않을까요?”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이용섭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비서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렸다.
“부총리님, 국민당 원내총무님께서 오셨습니다.”
“어, 들어오시라고 해.”
자리에서 일어선 이용섭이 박한규를 향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 양반들, 정말 귀찮아 죽겠구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둘러 문 밖으로 나간 이용섭이 국민당 원내총무 양성대를 맞아들였다.
여당인 국민당의 원내 총무 양성대는 보좌관과 동행이었다.
“이거, 바쁘신데 미안합니다.”
이용섭의 안내를 받아 소파에 앉은 양성대가 정중하게 말했다.
양성대는 3선의원으로 여권의 실세이다. 양쪽의 인사가 건성으로 끝났을 때
먼저 양성대가 본론을 꺼내었다.
“그, 오늘자 신문에 일제히 보도된 오성상사의 시베리아 임차건 말입니다.”
어느덧 이용섭은 긴장했고 양성대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부총리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론 보도를 보면 대부분이 비판적이던데 말입니다.”
양성대가 두꺼운 눈시울을 들고 이용섭을 보았다.
국회 재경위원장이기도 한 양성대의 힘은 막강했다.
물론 삼권분립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미국은 안그런가?
국민을 등에 업은 선출직 국회의원이 임명직 장관을 밀어붙이는 경우는 흔한 것이다.
“예, 그렇더군요.”
먼저 머리부터 끄덕인 이용섭이 정색했다.
오전에 양성대가 오성상사의 시베리아 임차 문제로 찾아오겠다고 해서 부랴부랴 자료 조사는 했다.
오성상사 기획실에서 보내온 서류도 금방 읽다가만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경제 현안이 산적해있는 현 상황에서 오성인지 팔성인지 주먹만한 회사가
시베리아 땅을 임차 했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언론도 모두 가십성 기사로 보도를 했고 제일신문은 돈키호테식 발상이라고까지 표현을 했다.
그것이 이용섭의 생각과 일치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오성상사에 어떤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러나 이용섭은 자신의 속내를 비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이용섭은 신중하고 사려가 깊다는 평을 받는다.
먼저 나섰다가 득 보는 일은 드물다.
(1298) 개척자-10
그때 양성대가 입을 열었다.
“인터넷 들어가 보셨습니까?
오늘 언론에 보도된 지 두 시간 만에 인터넷에 한랜드 사이트가 1백여개나 생겼는데.”
그러자 이용섭과 박한규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고 해도 장관과 보좌관이, 더구나 근무중에 인터넷을 뒤지겠는가?
양성대의 말이 이어졌다.
“조회수가 백만이 넘어요.
모두 신선하고 신난다는 반응이지.
젊은놈들이란 이렇게 엉뚱하다니까?
내가 보기에는 미친 수작 같은데 요즘 세대의 시각으로 보면 멋지다는 거야.
한랜드 주식을 사겠다는 놈들도 있어요.”
이용섭은 아예 입을 다물었다.
이제 이야기의 줄거리는 뻔해진 것이다.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이상 거스르는 행동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다.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 정치인들의 의무 아니겠는가?
이제 오성상사의 조철봉이 이상한 짓을 해서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는 이상은
가볍게 건드릴 수가 없다.
“그래서 말씀인데.”
양성대가 눈을 가늘게 떴으므로 눈시울에 가려진 눈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한랜드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기로 했습니다.
답답한 현실에서 뭔가 돌파구를 찾으려는 대중의 욕망이 한랜드를 통해 분출되었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건 월드컵의 열기하고도 다른 활기가 될 겁니다.”
열기를 띤 양성대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나도 처음에는 사기꾼 같은 중소기업 사장이 시베리아 나무를 베어 팔려는 사기 행각처럼
보였는데 네티즌의 반응을 보고서 이게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시베리아의 거대한 땅을 임차해서 그곳에다 신천지를 꾸미는 거야.
요즘 영하 50도가 별거야? 덕다운 한 벌만 입으면 견디는데.”
“…….”
“대기업도 다 외면한 그 눈만 쌓인 동토를 과감히 임차한 발상만으로도
조철봉씨는 칭찬 받아야 합니다. 참.”
그러고는 양성대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름도 웃기더군. 조철봉이 뭐야?
조자를 조금 강하게 발음하면 그것이 철봉 같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고는 양성대가 큭큭 웃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용섭도 따라 웃었다.
“그래서.”
양성대가 금방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네티즌들의 꿈을 깨뜨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전의 당직자 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했어요.
한랜드의 개발을 적극 돕기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선을 든 양성대가 똑바로 이용섭을 보았다.
“부총리께서도 여러 모로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용섭이 머리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조금전에 보좌관 박한규하고 나눈 말은 없던 것으로 하면 되었다.
“우리가 곧 한랜드를 방문할 계획입니다.
너도 나도 간다고 하는 바람에 인원을 조정해야겠어요.”
양성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잘 부탁합니다.”
한랜드의 로비스트나 된 것처럼 양성대가 그렇게 인사를 하더니 방을 나갔다.
양성대를 배웅하고 돌아온 이용섭이 박한규를 향해 투덜거렸다.
“도대체 네티즌이 뭐기에 이 야단인지 모르겠네. 그놈의 인터넷.”
그러나 박한규는 맞장구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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