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 개척자(4)
(1295) 개척자-7
다음날 조철봉 일행은 전세를 낸 헬리콥터를 타고 한랜드를 향해 떠났다.
김재석과 협상단은 여러번 한랜드를 탐사했지만 조철봉은 사진만 보았지 처음이다.
그만큼 빨리 협상이 진행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러시아제 육중한 헬리콥터는 10여명의 일행을 싣고 무려 7시간이나 날아서
한랜드의 중심지인 고원에 착륙했다.
스타노보이 산맥이 뒤쪽에 병풍처럼 둘러선 이 곳은 눈에 덮인 동토일 뿐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은 오직 흰색이었고 하늘은 잿빛이다.
오후 5시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기온은 영하 30도였다.
밤이면 영하 50도가 된다는 것이다.
“스키장은 잘 되겠다.”
평원을 바라보며 최갑중이 불쑥 말했다가 얼른 조철봉의 눈치를 보았다.
갑중은 조철봉의 기세에 밀려 대놓고 반대는 안했지만 한랜드 임차에 부정적이었다.
그로서는 모든 재산을 털어놓겠다는 조철봉의 의지를 아직도 납득하지 못했다.
조철봉은 바로 옆에 서 있었지만 못들은 척 눈을 가늘게 뜨고 지평선을 보았다.
그야말로 광활한 대륙이다.
헬리콥터로 날아오면서 툰드라 지역도 지났고 얼어붙은 강도 보았다.
그렇지만 인적은 못보았다.
“그래, 이 곳을 스키장과 유흥도시로 만드는 거야.”
이윽고 조철봉이 입을 열었으므로 갑중은 질색을 했다.
조철봉이 비꼬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재석이 나섰다.
“예, 제5지역과 이 곳 제3지역이 유흥도시로 적당합니다.”
이미 둘은 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아연한 채 눈만 껌벅이는 갑중을 놔두고 조철봉이 옆쪽에 서 있는 건설 책임자 이동호를 보았다.
“그럼 제5지역으로 가볼까?”
“예, 사장님.”
이동호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제5지역은 이 곳에서 다시 4백킬로미터를 더 가야만 했으므로 갑중은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그날밤, 제3지역의 동토 위에 세워진 임시 텐트 안에서 강상규가 조철봉에게 말했다.
“호텔과 카지노만 개설되면 손님은 끌어올 수 있습니다.”
강상규는 지금까지 백두산 관광단지의 카지노 개설과 운용을 맡아왔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강상규가 말을 이었다.
“이 곳은 입지조건이 백두산보다 낫습니다.
만일 유흥시설까지 계획대로 준비된다면 세계 제일의 유흥도시를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김재석이 나섰다.
“사장님의 목표가 라스베이거스이십니다만 그보다 몇배나 더 크고 번창한 도시를 만들겠습니다.”
그 순간 갑중의 가슴이 또 철렁 내려앉았다.
머리를 돌린 갑중이 조철봉을 보았다.
재석의 말을 들은 조철봉이 잠자코 머리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군. 갑중도 따라서 머리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조철봉이 벅시란 영화를 여섯번이나 보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갑중도 어느날 그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서 보았다.
벅시(워런 비티)는 라스베이거스를 건설한 갱이었다.
호텔 공사를 믿고 맡긴 정부 버지니아(아네트 베닝)한테 공사대금을 횡령 당하고
나중에는 총에 맞아 죽지만 조철봉은 벅시에게 푹 빠졌다.
그런데 사막에다 호텔을 짓는 아이디어 따위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배신한 동업자 가슴에다 총을 네번 쏴 죽인 장면하고 또 한 놈은 개처럼
기어다니면서 짖게 만든 장면이 끝내준다고 했던 것이다.
그때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는 사막 위에 세웠지만 여긴 눈이야.”
그렇구나, 벅시가 원인을 제공했다.
(1296) 개척자-8
그렇다면 현재 상황으로 봤을때 조철봉에게 아네트 베닝역의 여자가 달라붙어 있지는 않으니
약간 유리할지도 모른다고 최갑중은 생각했다.
그날밤, 영하 50도가 넘는 혹한 속의 텐트 안에 누워 밖의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갑중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난날의 조철봉을 시간대별로 떠올려본 것이다.
조철봉은 지금도 스스로를 사기꾼이라고 갑중에게 말했지만 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변하는 인간이다.
대리에서 과장, 사장, 그리고 기업체를 수십개 거느린 작금에 이르기까지
마치 수십개의 얼굴을 가진 것처럼 변모했다.
그때의 위치에 맞도록 변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훌륭한 사기꾼의 행태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지척에서 지켜본 갑중의 생각은 달랐다.
조철봉만큼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인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릇이 크다.
오늘에야 뼈가 저리도록 느꼈지만 라스베이거스를 건설한 벅시 이상이 되는 인물이다.
다음날 아침, 텐트 안에서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조철봉의 옆으로 갑중이 다가와 섰다.
“형님, 한랜드를 라스베이거스처럼 만들려고 하셨군요.”
갑중이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그렇죠, 벅시가 그 네가라 사막인가 거기에다 호텔을 짓는다고 할때 모두 미쳤다고 했지요.”
“뭐라고?”
정색한 조철봉이 물었으므로 갑중은 긴장했다.
“아니, 제말은 형님이 미쳤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벅시, 그놈이, 저는 형님을.”
“너, 네 무슨 사막이라고 했어?”
“네가라 사막 아닙니까?”
“네바다여, 이 무식한놈아.”
“아, 그거나 저거나.”
조금 기분이 상한 갑중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대놓고 무식한놈아 하는 인간은 조철봉 밖에 없다.
“너, 내가 벅시 보고 이런줄 아는 모양인데.”
눈을 가늘게 뜨고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조철봉이 말했다.
“난 중국에 공장을 지을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것이 금강산 관광지 개발까지 발전했다가 한랜드까지 온것이야.”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푸르렀고 밖은 햇살이 반사된 대지의 흰 눈에도 티 한점 보이지 않았다.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비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었지만 다 쓰고 갈거다. 보람있게 말이야.”
“형님은 이름을 남기실겁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야, 시끄러.”
조철봉이 눈을 흘겼다.
“난 내 주제를 잘 안다. 이름은 무슨.”
“저도 얼마 안되지만 제 재산을 투자하지요.”
“호텔하고 카지노를 세워라. 땅은 무상으로 줄테니까.”
“정말입니까?”
“네가 좋은 땅을 골라.”
“그럼.”
갑중의 눈이 번들거렸다.
“고맙습니다, 형님.”
“한랜드에서 땅 장사는 못해. 모두 한랜드 정부에서 배분해 줄테니까.”
“그렇군요.”
“한랜드에도 통치 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운영위원회가 발족될 거야.”
“그럼 형님이 운영위원장이 되시겠군요.”
이제 조철봉은 한랜드의 통치 조직까지 구성해 놓으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정부 조직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벅시 따위와 어찌 비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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