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43
난리를 당한 객관 주인이 한사코 피신할 것을 강권했으나 세 사람은 그대로 객사에 머물렀다.
사방에서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가 어지럽게 나더니
객사의 문이 왈칵 열리며 무기를 든 한 패의 도적떼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꾸물거리지 말고 가진 재물을 모두 내놓아라!”
도적 떼의 졸개 몇 명이 객관의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객사 주인이 몇 푼의 돈을 가져가서 도적 떼에게 바치고 사정을 하자
그것을 챙겨넣은 도적 떼가 문덕 일행을 눈여겨 바라보았다.
“뭣들 하는 게냐? 너희는 귓구멍에 철심을 박았느냐?”
그러자 개소문이 유자를 돌아보며,
“아무래도 자네가 나서야겠는걸?”
하며 빙긋이 웃었다.
유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보기에도 그렇네.”
하고서 한쪽 구석에 헝겊으로 싸놓은 장창을 꺼내들었다.
무기를 본 도적패들이 우루루 일행을 에워싸자 유자가 말했다.
“이곳은 장소가 협소하니 밖으로 나가는 게 어떠냐?”
밖에는 더 많은 일당들이 있었으므로 도적패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무리가 유자를 에워싼 채 슬금슬금 한길로 나서자
개소문은 말로만 들어온 유자의 무예를 구경하느라고 그들을 따라나갔고,
문덕도 객사의 문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로 밖을 내다보았다.
“네 감히 우리와 대적하려느냐?”
도적패들은 가소롭다는 듯이 묻고 그 중의 한 놈이 칼을 꼬나 쥔 채 쏜살같이 유자에게 덤벼들었다.
유자가 이를 가볍게 피하고 장창을 휘두르자
쇠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도적패의 칼이 바닥에 뚝 떨어졌다.
이를 본 일패 서너 명이 한꺼번에 무기를 들고 유자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유자는 벼락같은 기합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풀쩍 날아오르는가 싶더니
연하여 창날을 비스듬히 휘두르며 순식간에 몸을 꼬아 한 바퀴를 돌아 내렸다.
달려들던 도적패들이 약속이나 한 듯 뒤로 벌렁 나자빠진 것은 유자가 발을 땅에 딛고 난 뒤였다.
그들은 일제히 신체의 일부를 싸쥐고 죽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햐, 제법인데?”
개소문이 신통한 눈빛으로 유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문덕도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객사 주인은 박수를 치며,
“내 집에 귀인들이 오셨소!”
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일패들이 당하는 것을 본 도적의 무리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집집마다 기웃거리며 노략질에 열중하던 무리들은 삽시간에 유자의 주변으로 우르르 달려들었는데,
그 숫자가 대략 이삼십 명에 달했다.
“자네 혼자서는 아무래도 어렵겠네.”
개소문이 손바닥을 툭툭 털더니 유자의 곁으로 걸어가서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칼 한 자루를 집어들며 말했다.
그 역시 고작 아홉 살에 조의에 뽑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무리를 이끌고 다닐 정도로
무술에는 일가견이 있던 젊은이였다.
“어려울 것 없네. 이까짓 오합지졸쯤이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지를 않나.”
“아무렇게나 하세.”
유자와 개소문은 서로 등을 맞댄 채 에워싼 무리들과 대적했다.
개소문이 유자의 등에 대고 속삭였다.
“그냥 싸우면 흥이 덜하니 우리 내기나 할까?”
“그것도 좋지. 나는 이미 네 놈을 눕혔지만 그건 접어주겠네.”
“안 접어도 별상관은 없네만 자네가 굳이 접어준다면 그리 하세나.”
두 사람은 수십 명의 패거리들을 상대하면서도 마음에 털끝만큼도 두려움이나 동요가 없었다.
지난 몇 달 동안에 걸쳐 천하를 경략하고 발 아래 복속시켰던 호태대왕의 웅대한 신화와
장엄한 기상을 쫓아다닌 탓도 있었고, 자신들의 무예를 믿는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백만 대병을 이 잡듯이 쓸어버린 나라의 영웅 을지문덕이
뒤에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믿는 바가 있으면 힘은 배가되게 마련이었다.
어림잡아 서른 명은 될 법한 도적패들은 한꺼번에 고함을 지르며 등을 맞댄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미 숫자만 가지고 당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어차피 한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는 많아야 창칼 서너 자루인데,
이것을 막고 몸을 날려 뒤를 치니 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숫자가 되레 방해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서로 내기까지 해둔 마당이라 하나라도 더 쓰러뜨리려고 기를 쓰며 달려드니
에워쌌던 무리들은 두어 번 치고 들어갔다가 혼쭐이 난 다음부터 아예 뒷걸음을 치기에도 다리가 바빴다. 제법 기세 좋게 달려들던 앞줄의 10여 명이 바닥에 나동그라지자 사실 싸움은 싱거워졌다.
저마다 앞에 나서기를 서로 미루며 무춤거리는 사이에 두 사람은 수세를 잽싸게 공세로 바꾸어
거세게 역공을 취해왔고, 이에 놀라고 당황한 무리들은 허둥지둥 양편으로 흩어지며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개소문이 쓰러뜨린 자가 다섯이요,
유자 또한 다섯을 쓰러뜨렸다.
그런데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개소문은 도망가는 무리를 악착같이 쫓아가서
하나를 더 베어 눕히고서야 칼을 거두고 돌아섰다.
문덕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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