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41
이렇게 문덕을 따라 나선 개소문이 요동성에서 문덕의 양자 을지유자와 작반해 국내성으로
동향한 것은 기묘년(619년) 8월,
무더위가 한풀 꺾일 무렵의 일이다.
일행이 길을 떠나기 전에 마침 전날 군령을 어긴 죄로 참수당한 추범동과 우민의 기일이 돌아왔다.
문덕은 개소문과 유자를 데리고 요동성 북산에 가서 제사지내고 두 사람의 무덤을 둘러보았다.
그는 마치 산 사람을 대하듯 봉분을 몇 번씩이나 어루만지며,
“자네들만 덧없다 마소. 내 꿈도 마침내는 부질없이 변하였거늘.”
하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오래 하늘을 바라보더니,
“그대들 귀한 목숨을 바쳐 칼날같이 벼린 군율도 이제 와 돌아보면 다만 하늘에 흐르는
무심한 뜬구름일세.”
침통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친히 묘막을 찾아가 왕에게서 받아온 세포와 비단, 금냥을 모두 묘지기에게 주며
정성스럽게 제사를 받들어달라고 각별히 부탁하였다.
문덕 일행은 여러 날 만에 국내성 동북방의 태왕릉에 당도해 참배하고 전날 호태대왕이 다스렸던
흑수(黑水:흑룡강) 북방의 땅들을 둘러본 후에 말갈과 거란을 거치고 옛조선의 구토를 돌아
그해 12월에 당나라 국경으로 들어섰다.
문덕은 선비 복장에 쌍창워라를 타고 예맥검 한 자루를 말잔등에 비스듬히 건 채 앞장서 갔고,
개소문과 유자는 서너 보 거리를 두고 나란히 뒤를 따라가는 것이 마치 삼자가 한가롭게
유람을 떠난 다정한 부자지간 같았다.
당연히 이들을 알아보는 자도 있을 턱이 없었다.
개소문과 유자는 그새 금방 친해져서 주로 나랏일도 말하고,
학문과 포부와 읽은 서책 얘기도 나누었지만, 때로는 소리를 죽여 문덕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낄낄거리기도 했다.
문덕은 두 청년이 나누는 얘깃소리를 풍편에 언뜻언뜻 들었으나 빙그레 웃음만 지을 뿐
결코 참섭하는 일이 없었는데, 호태대왕의 흔적이 남은 북방의 강역과 호수에 이르러서는
대왕의 웅장하고 위대한 기상을 얘기하느라 자연히 말이 많았다.
일행이 당나라 국경을 넘었을 때는 중국의 내란도 많이 평정이 되어 있었다.
문덕은 장성을 거쳐 탁군 북방 어양(漁陽) 지방에 이르자 장성의 경계 너머를 가리키며,
“본래 이 부근은 우리나라의 강역이었고, 그 지명은 요동군이었다.
너희가 알고 있는 요동은 요하 동쪽에 불과하지만 고대에는 난하 북방에서 갈석산까지 이르는
건너편이 모두 우리나라의 요동이었다.
그곳에 백제의 낙랑, 대방군이 들어섰고, 지금은 중국이 차지하여 다스리고 있으니
어찌 호태대왕께서 천하를 경략하던 시절이 그립지 않겠느냐.
내가 임신년에 이 일대를 반드시 취하고자 했던 것도 이곳이 본래 우리의 강역이었기 때문이다.”
하고서,
“잃어버린 구토에 와서 하룻밤 자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자꾸나.”
하며 묵어갈 것을 말하였다.
일행이 숙소를 찾아 막 허기를 달래고 났을 때였다.
돌연 사방에서 말발굽소리와 사람의 고함소리가 요란하더니
객사 바깥에서 창칼을 든 한 패의 무리가 나타나
닥치는 대로 사람들의 짐을 뺏고 민가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문덕이 객사 주인에게 사정을 물으니 그 주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흉측한 팽지만(彭芝晩)의 무리가 나타났으니 어서 몸을 피합시오!
여기 있다간 개죽음을 당할 뿐이올시다!”
하고 소리쳤다.
“팽지만이 누구요?”
“팽지만은 전날 탁군 태수로 있던 최홍승의 심복인데,
양광을 따라 요동 정벌에 나섰다가 을지문덕에게 패하여 온 뒤로 문책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무리를 이끌고 갈석산으로 도망한 잡니다.
그 후로 공을 세워보려고 대흥으로 가서 송로생(宋老生)의 군대에 합류했는데,
이연의 아들인 이세민에게 패하자 다시 갈석산으로 도망와서 허구한 날 저렇게
사람들을 못살게 굴지 뭡니까?”
“그 무리가 대체 얼마나 되는데 그러시오?”
“족히 이삼백은 됩지요.
그러나 무리의 숫자보다도 팽지만 일당의 흉포하고 잔인무도한 것이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특히 도적의 수괴 팽지만은 갈석산에 암자를 짓고 살던 대허선생(大虛先生)을 협박해
황노학과 주술을 배웠는데, 화살을 입으로 불어서 바위를 뚫고, 범을 잡아 무등을 타고 다니며,
끼니 때마다 인육을 먹고 남는 것으로는 범의 배때기를 불린다 합니다.
게다가 팽가가 이번에 이세민에게 패하여 올 적에 송로생의 부하장수로 있던
텁석부리 불한당 한 놈을 달고 와서는 상전 모시듯 받들고 섬기는데,
그 자는 150근이나 나가는 가시 돋친 철퇴를 마치 젓가락처럼 자유자재로 휘두른다고 합니다.”
주인은 잔뜩 겁에 질린 낯으로 말하고 나서,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달아납시오!
보아하니 먼 데서 오신 분들 같은데, 도적패에게 걸리면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하며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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