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40
문덕은 넋이 나간 얼굴로 개소문의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연태조가 개소문의 장설을 핀잔하며,
“무슨 서설이 그리 긴 게냐? 장군께서 피곤하시니 간단히 말해라.”
하고 나무라듯 재촉하였다. 개소문이 끊어진 말허리를 다시 이었다.
“셋째 이유는 근자에 와서 대흥에 백제와 신라에서 온 장사치들과 승려,
그리고 대륙의 신구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유학생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백제와 신라로는 마음대로 갈 수 없으나 대흥에 가서 그들을 만나보면
그 나라들에 대해서도 배우고 느끼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 역시 지피(知彼)의 일환이올시다.”
개소문은 과연 간단히 대답했고 시종 감탄스러운 눈으로 개소문을 보고 있던 문덕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크게 무릎을 쳤다.
“막리지께서는 참으로 비범한 자제를 두셨습니다!
개소문의 뜻과 그릇은 능히 천하를 품을 만하고 그 생각의 깊이는 저도 미치지 못하겠습니다!”
문덕이 개소문에 대해 칭찬과 탄복을 아끼지 않자 연태조가 황망히 손사래를 쳤다.
“과찬이올시다. 입만 살아 그런 게지요.
기껏 열일곱 살밖에 안 된 녀석이 뜻이 있으면 얼마나 있고, 생각이 깊으면 얼마나 깊겠습니까.
장군께서는 괜한 짐을 달고 가지 마시고 제놈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십시오.”
그러자 문덕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그간 여러 날 기운이 빠져 지냈는데 오늘 개소문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엄동에 찬물을 덮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앞일을 내다보며 그저 마음이 무겁고 눈앞이 캄캄할 뿐이었으나 이는
나라에 개소문과 같은 청년들이 있음을 알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오늘 개소문을 만난 것은 제게도 크나큰 복이요,
이로 하여 저의 앞날도 필경은 달라질 것입니다.
어르신 댁에 와서 실로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개소문을 데려가도록 허락해달라고 오히려 연태조에게 청을 하고 나왔다.
개소문은 입이 벙그러져 어쩔 줄을 모르고 연태조는 사뭇 근심스런 얼굴로,
“말썽이나 부릴 놈을 달고 가서 괜찮겠습니까?”
하니 문덕이 웃으며,
“개소문이 열일곱이라니 제 자식놈 유자와는 두 살 터울인데 유자가 두 살을 더 먹었지만
오히려 개소문 쪽이 한결 어른스럽습니다.
둘이 비슷한 또래이니 같이 다니면 벗도 하고 서로 배울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고 재차 데려갈 것을 말하였다. 연태조는 문덕을 절대로 귀찮게 하지 말라며
근엄한 얼굴로 누차 당부를 하고서 이튿날 문덕이 떠날 적에 말과 노자를 내어 개소문을 딸려 보냈다.
늙은 연태조는 그러고서도 자못 안심이 안 되었는지,
“장군께서 귀찮다 싶거든 언제든 쫓아 보내십시오.”
문덕에게는 그렇게 말하고,
“이눔아, 너는 지금부터 오로지 상전을 모시고 가는 길머슴일 뿐이다.
말도 허락이 없이는 타지 말 것이며, 항상 서너 걸음 격하여 장군의 뒤를 따라가되
그림자도 밟는 일이 없도록 하렷다!”
개소문을 붙잡고는 엄히 잡도리를 하니 개소문이 싱긋 웃으며,
“장군의 그림자가 제 발등을 밟았으면 밟았지 제가 장군의 그림자를 밟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하여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연태조 조차도 허허 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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