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9
하도 돌연한 부탁이라 문덕은 잠시 대답이 없었고, 연태조는 버럭 고함을 지르며,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네 감히 어디를 따라붙어 누구를 귀찮게 하려고 그러느냐?
장군께서는 고단한 심신을 편히 쉬러 가시는 길이다!
네가 정 중국의 땅을 다시 보려 하거든 지난번처럼 또 너희 패거리들이나 모아서 가거라!”
하고 나무랐다.
개소문이 이 말을 받아,
“귀찮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리어 제가 따라가서 시중을 들고 잔심부름을 도맡아 한다면
장군께서도 한결 길이 덜 고단하지 않겠습니까?
얼마를 안 가서 틀림없이 그놈 그거 정말 잘 데리고 왔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요!”
하니 문덕은 웃고 연태조는 혀를 찼다.
“글쎄 저눔이 매사에 저렇게 되바라졌습니다.
장군은 나를 허물하시오. 나이 아홉 살에 조의에 뽑혀 열대여섯 살짜리 패거리들을 몰고 다니며
대장질을 하더니 그게 그만 애를 저렇게 버려놔서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어른 어려운 줄도 모르는 희한한 물건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담에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걱정이 태산이올시다.”
연태조는 자식을 흉보는 말이었으나 문덕은 눈을 휘둥그래 떴다.
“아홉 살에 조의에 뽑힌 것도 놀라운데 하물며 대장질까지 하였다니
과연 보기 드문 재목이 틀림없습니다.
가히 용생용(龍生龍) 봉생봉(鳳生鳳)입니다!”
한동안 탄복을 금치 못하던 문덕이 이윽고 개소문에게로 시선을 돌려 점잖게 물었다.
“자네가 이미 한 차례 대흥을 보고 왔으면서 한사코 다시 중화의 강역을 보고자 하는
특별한 까닭이라도 있는가?”
개소문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중국의 땅을 세세하게 둘러보고자 하는 까닭은 크게 세 가집니다.
첫째는 그곳의 문물이 꽤 번성하고 경전과 사상이 대흥을 중심으로 창만하다 하니
몸소 가서 원하는 만큼 겪어보고 싶습니다.
대개 지금 사람들이 중히 여기는 것이 3교(三敎:유교·불교·도교)인데 그 가운데
서역에서 들어온 불교만 빼고는 그 근원이 중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니 모르는 것을 배우고 궁금한 것을 알아보는 일은
장부가 뜻을 세우는 데 결코 게을리할 부분이 아니올시다.”
개소문의 말은 흐르는 물과 같이 이어졌다.
“비록 수나라 백만 군대가 장군 한 분께 패하여 풍비박산이 났다고는 하나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오랜 근심이었습니다.
만일 나라에 장군이 안 계셨다면 지금쯤 고구려는 어찌 되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는 일이지요.
마침 양광이 미쳐 날뛸 때 장군이 이 나라에 계셨던 것은 천우신조요,
조정과 만백성의 홍복이지만 그와 같은 요행이 영구히 계속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나라의 운명을 요행에만 맡긴다는 것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수나라는 망하였으나 중국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우리의 북방을 위협할 것이 뻔합니다.
이를 막자면 우리가 중국의 힘과 문물을 능가하여 저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중국을 멀리만 할 게 아니라
오히려 대륙에 들어가서 보고 알아야 하는 것이 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을 아는 것은 병가의 필수요,
중국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중국을 능가하겠습니까?
이제 수가 망하고 당이 들어섰다고 하니
그 시작하는 왕조를 보아두는 것은 나라에 반드시 이로운 일이 되리라 믿습니다.
장군께서는 직접 대륙의 오랑캐들을 대적하여 싸우셨으므로 저의 이같은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실 줄 압니다.
게다가 우리 고구려는 호태대왕 때만 해도 천하의 중심이었고,
오히려 대륙의 후연과 남연을 거느렸습니다.
만국의 조공사들이 황성으로 줄을 지어 모여들고 우리의 문물을 배우려는 자들로
온나라가 북적거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와 중국의 처지가 뒤바뀌어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중국을 일컬어 천하의 중심이라 말하는 자들이 있을 정돕니다.
저는 이 사유도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난 병자년에도 대흥에 머물며 이 문제를 혼자 골똘히 고민했는데
시일이 너무 촉박해 뚜렷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굳이 대흥을 다시 가보고자 하는 둘째 이유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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