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8

오늘의 쉼터 2014. 8. 24. 09:35

제15회 살수대첩(薩水大捷) 38 

 

 

 

연태조가 약간 무참한 낯으로 문덕을 바라보고 나서,

“이눔아, 나한테 할 말이랬다 손님께 드릴 말이랬다 도시 네 소리는 종잡을 수가 없구나!”

하고서 문을 왈칵 열어제치니 눈썹이 짙고 눈매가 부리부리하여 꽤나 당차게 생긴 약관의 청년이

문전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아드님입니까?”

“예.”

연태조가 사뭇 겸연쩍어하며,

“내게로 미돈이 셋 있는데 저 녀석이 둘쨉니다.

큰놈은 나이가 마흔을 넘겼으나 어렸을 때 괴질을 앓은 뒤로 애가 좀 모자란 듯하고,

그놈 뒤로는 쭉 딸년을 보았는데,

저희 어미가 다 늘그막에 가서야 저 녀석을 낳고 또 이태 뒤에 주책을 부려 하나를 더 보탰습니다.”

하고는 문전을 향하여,

“뭣하느냐? 냉큼 인사를 여쭙지 않고!”

하고 소리치니 청년이 연태조를 빤히 바라보며,

“아버지께서 언제 틈이나 주셨어야지요.”

말대꾸를 암팡지게 하고는,

“개소문이라고 합니다.

그간 우레같이 존함을 들어온 을지 장군을 뵙게 되어 큰 영광이올습니다.”

말을 마치자 자리에서 일어나 넙죽 큰절을 올렸다.

문덕이 보니 또박또박 말하는 품새며 결연하고 활달한 행동거지가 여간 야물고 강단이 있어 뵈지 않았다. 어른에게 말대답을 버릇없이 한다고 나무라던 연태조가 문덕을 보며,

“아이 에미가 갓 쉰에 본 자식이라 한동안 이름을 그리 불렀더니 그만 그렇게 굳어졌습니다.”

하였다.

“제게도 저만한 또래의 미식이 하나 있습니다. 아마 연배가 비슷하지 싶습니다.”

문덕은 개소문을 보자 요동성에 두고 온 양자 유자(乙支留子)를 떠올렸다.

“그래, 내게 청할 것이 무엇인가?”

문덕의 질문에 개소문이 다시 공손히 절하며 대답했다.

“바깥에서 두 분 어르신이 나누는 말씀을 엿들었습니다.

엿듣자고 엿들은 것이 아니라 장군께서 저희 집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가 본의 아니게 들은 말입니다.

저는 지난 병자년에 수나라 대흥에 가서 몇 달 동안 지낸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대흥이 하도 소란스러워서 오래 머물 처지가 아닌 데다

워낙 서둘러 돌아오는 바람에 마음먹은 일을 모두 마치지 못했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양광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저를 따르는 조의의 무리들과 작당해

요하를 건너갔는데, 유주에 이르니 난리가 하도 심해 대흥은커녕 낙양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금년에 난리가 좀 가라앉으면 기어코 다시 가보고자 하던 차에 방금 장군께서

그쪽으로 가신다고 하니 어찌 귀가 번쩍 뚫리지 않겠습니까?”

개소문은 문덕의 앞으로 왈칵 무릎을 당겨 앉았다.

“부디 바라건대 저를 좀 데려가주십시오.

장군을 따라가면 난리를 걱정할 이유도 없고, 또 천하 제일의 영웅호걸을 모시고 가는데

하루에 천리를 걷는다 한들 피곤할 리가 있겠습니까?

말 먹이는 일에서부터 궂은 일이란 궂은 일은 모조리 제가 도맡아 하겠습니다.

원로에 시중 들 길머슴 하나 달고 간다 여기시고 저를 꼭 좀 데려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