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 개척자(1)
(1289) 개척자-1
강명식은 흰 피부에 콧날이 곧은 데다 짙은 눈썹 밑의 눈도 맑고 또렷했다.
1미터80이 넘는 신장에 날씬한 체격이었고 한마디로 준수한 용모였다.
에덴가든은 양식당 겸 커피숍이어서 벽쪽에는 앉으면 머리끝만 보이도록 좌석이
칸막이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명식은 맨 안쪽 구석의 자리로 다가가 앉았다.
“곧 손님이 오실 테니까 그때 주문하지요.”
뒤를 따라온 종업원에게 그렇게 말하고 난 명식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12시55분, 평일이기 때문인지 대화동 먹자골목의 거리는 한산했고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식당 안에는 손님이 대여섯 테이블뿐이었다.
명식이 다시 시계를 보았을 때 옆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안으로 이은지가 들어섰다.
은지는 분홍색 스웨터에 진바지 차림이었는데 머리는 뒤에서 끈으로 묶었다.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이었고 운동화를 신었다.
동네 가게에 나온 행색이었지만 명식의 가슴은 뛰었다.
용모에 대한 감동이다.
“흥, 학교에다 휴가를 내셨더군.”
명식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이 머리를 친 순간 가슴의 충격은 분노로 바뀌었다.
은지가 잠자코 차분한 시선만 보내고 있는 것도 그의 화를 돋우었다.
“시발년, 니가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볼거다. 그런데.”
명식이 은지의 주위를 살피는 시늉을 했다.
“돈 가져왔어? 5천만원.”
은지가 눈만 깜박였고 명식의 목소리는 더 또렷해졌다.
“5천에서 백원도 못 깎아준다.
내가 1억 부르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야.
난 네 경제 규모에 맞춰서 아주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한 것이란 말이다.”
“… ….”
“가져온 거야? 안 가져온 거야?”
“없어.”
은지가 짧게 대답했을 때 명식은 못 들은 것처럼 한쪽 귀를 내미는 시늉을 하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두 눈이 커지면서 번들거렸는데 전혀 다른 인상이 되었다.
“뭐? 없다구?”
확인하듯 물은 명식이 곧 이를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었다.
“좋아. 해보겠단 말이지?”
“해봐.”
“이 시발년. 그 테이프를 네 학교 앞에다 100장만 뿌릴 거다.
학생들, 선생들한테 나눠줄거야.
인터넷에다 올리는 건 물론이고 학생들 집으로 배달시킬 테니까.
내 얼굴은 지웠으니까 너 혼자만 뜨는 거지.”
그러고는 명식이 다시 씨익 웃었다.
“얼마나 배겨 내는가 보자. 난 이미 각오한 몸이야.
또 들어가도 상관없어. 하지만 널 끌어안고 가겠단 말씀이지.”
“… ….”
“네 인생도 종친 거야, 이년아.”
하고 명식이 목소리를 조금 높였을 때였다.
칸막이 안으로 세 사내가 쏟아지듯 들어섰는데 모두 체격이 건장했고 인상이 불량했다.
놀란 은지가 눈과 입을 딱 벌렸을 때 시내들이 명식을 둘러쌌다.
“자, 가실까.”
하면서 사내 하나가 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명식의 눈앞에 보이더니 말했다.
“강명식씨, 당신을 공갈 협박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또.”
명식의 팔을 끌어 일으키면서 사내가 말을 이었다.
“주둥이를 닥치고 있을 권리도 있어, 임마.”
(1290) 개척자-2
그날 저녁, 이대권과 조미선은 일산의 한정식집 남원정에서 식사를 했다.
물론 저녁 식사는 미선의 제의로 이루어졌는데 오늘 일이 잘 끝난 것에 대한 인사를 하는 셈이었다.
강명식은 이은지를 협박하던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현장에서 잠복중이던 일산경찰서 형사들은 명식의 말을 모조리 녹음해 놓았으므로
결정적인 증거도 확보한 것이다.
대권은 식사와 곁들여서 반주로 소주를 한병쯤 마셨는데 맨송맨송했다.
폭탄주 생각이 간절했지만 혼자 따라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선은 이 쪽의 빈잔을 채워주면서 저도 반병쯤은 마셨을 것이다.
볼이 발그레해진데다 습기가 배인 눈이 번들거려서 딱 좋은 분위기였다.
이 정도의 상황이면 조철봉은 작업을 시작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 쪽은 의욕은 충만했지만 연장이 제대로 작동해야만 되는 것이다.
미선이 저녁 대접을 하면서 오전에 이 쪽에서 꺼낸 제의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곧 승낙한 것이나 같지 않겠는가?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킨 대권이 앞에 앉은 미선을 보았다.
에덴가든에는 가지 않았지만 어떻게 처리했는가는 조철봉한테서 들었기 때문에 다 안다.
명식을 체포해간 사내들은 실제로 일산경찰서 형사들이었던 것이다.
형사들은 협박을 하는 명식을 현행범으로 체포해갔다.
조철봉이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형사들이 이대권이라는 경위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 것으로 미선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오해는 죄도 아니다.
이대권 경위가 경찰 위상을 높였으면 높였지 폐 끼친 것은 없다.
“저기요.”
하고 미선이 운을 떼었을 때 대권은 바짝 긴장했다.
이제 대권은 미선의 말버릇을 안다.
중요한 이야기를 꺼낼 때는 꼭 ‘저기요’라고 먼저 서두를 붙인다는 것을.
대권의 시선을 받은 미선이 식탁 위를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저기, 오늘밤, 같이 있을게요.”
그 순간 대권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된 것이다.
작업이 성공했다.
그러나, 심호흡을 한 대권이 머리를 들고 미선을 보았다.
“미선씨.”
“네.”
대답은 했지만 미선은 아직도 시선을 들지 않았다.
“제가 다음에 부탁드리면 안될까요?”
“네?”
그 때 머리를 든 미선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굳어졌다.
마치 호의를 참담하게 거부 당한 표정이었다.
그 시선을 받은 대권이 어금니를 물었다 풀고 대답했다.
“저는 불능입니다.
미선씨를 상대로 제 불능을 테스트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미선이 잠자코 시선만 주었고 대권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동안에 미선씨한테 저 자신에 대해서도 더 알려드릴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오늘밤 미선을 벗겨놓고 나서도 연장이 일어서지 않을까봐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유가 긴 것이다.
그 때 미선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고는 미선이 소주잔을 들더니 한모금에 삼키고서 말을 이었다.
“성기능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하지 않으셔도 돼요.
얼마든지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순간 대권은 벼락을 맞은 듯이 몸이 굳어졌다.
아아, 레즈비언, 기구. 그동안 이 여자는 연장없이 기구만으로도 만족해왔지 않은가 말이다.
아아, 조철봉, 그래서 이렇게 이 여자하고 엮어 주었구나. 안되면 기구를 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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