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44. 신천지(13)

오늘의 쉼터 2014. 8. 23. 12:17

344. 신천지(13)

 

 

 

 

(1283) 신천지-25

 

 

 방법은 없다.

 

이대권이 말한 대로 조철봉은 하루동안 희망을 품게 해주었을 뿐이다.

 

내일 저녁에 근사한 여자를 소개해 주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여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나서 성사가 되면 후사하겠다고 부탁도 할 것이었다.

 

대권과 헤어진 조철봉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저녁 9시 반경이었다.

 

조철봉으로서는 일찍 귀가한 셈이었다.

 

영일은 자지 않고 응접실에서 할머니들과 같이 있었다.

“아빠, 오셨어요?”

영일은 건성으로 인사를 했지만 조철봉은 감동했다.

 

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나 영일을 보았고 그때마다 꼭 선물을 안겨 환심을 얻었다.

 

그런데도 영일한테서 제대로 인사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옷을 벗고 나온 조철봉이 영일의 옆에 앉았다.

“친구 많이 만들었어?”

조철봉이 묻자 영일이 피식 웃었다.

“응. 친한 놈이 셋, 아니 넷이야.”

“집으로 데려오지 그래?”

“오늘도 둘 데려와 놀았어.”

“잘했다.”

“아빠, 방학 때 외국 데려갈 거지?”

“물론이지.”

방학은 아직 두 달이나 남아 있었으므로 조철봉은 자신있게 머리를 끄덕였다.

 

영일이 뭘 사달라고 할 때가 가장 부담이 없는 반면에 어딜 같이 가자고 하면 요즘은 겁부터 났다.

 

그때 TV를 보는 것 같았던 어머니가 나섰다.

“얘, 내가 오늘 영일이 선생을 만났는데.”

흘끗 영일에게 시선을 주었던 어머니가 목소리를 낮췄다.

“내일부터 사흘 동안 휴가를 냈다는구나.

 

얼굴이 안 좋아서 어디 아프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하더라.”

“…….”

“그런데 너, 어떻게.”

“저, 모레 러시아에 다녀올 테니까 어머니, 영일이 잘 부탁해요.”

조철봉이 화제를 바꾸자 어머니는 혀를 찼다.

 

그러나 출장에 면역이 된 터라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이은지가 휴가를 낸 것은 강명식 때문이다.

 

강명식이 요구한 돈 5천만원을 아직 만들지 못한 것이다.

 

조철봉은 팔을 뻗어 옆에 앉은 영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내일 오후 1시에 이은지는 일산 교외의 식당에서 강명식을 만날 것이었다.

 

은지의 친구이자 애인인 조미선도 함께 휴가를 내었지만 이번 일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빠.”

영일이 불렀으므로 조철봉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선생님이 오늘 울었어.”

조심스럽게 영일이 말했으므로 조철봉만 겨우 들었다.

 

긴장한 조철봉이 흘끗 어머니에게 시선을 주고 나서 낮게 물었다.

“왜?”

“몰라. 내가 물으니까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그래서?”

“운동장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어.”

“그래?”

“그건 나만 보았어.”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영일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너, 네 선생님이 좋아?”

“괜찮아.”

“자식은.”

심호흡을 한 조철봉은 입술을 일그리고 웃었다.

 

명식의 협박에 대한 압박감과 분노,

 

그리고 자신의 무기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를 든 조철봉은 옆쪽에 앉은 어머니를 보았다.

 

은지의 애인이 같은 학교 여선생이라는 것을 어머니가 안다면 어떤 얼굴이 될까?

 

 

 

 

(1284) 신천지-26

 

 

 “웬일이신데요?”

조미선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표정은 사무적이었다.

 

박성용의 난데없는 연락에 의아해 하는 것이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서.”

박성용이 버릇처럼 손바닥으로 이마를 쓸었다.

 

조미선이 지금 전세로 살고 있는 월하 오피스텔은 박성용의 부동산 사무실을 통해 거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전에 살던 화정의 아파트도 박성용이 구해주고 매매까지 성사시켰으니

 

 햇수로는 3년째 인연이며 나쁜 관계는 아니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둘은 조미선의 월하 오피스텔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커피숍에 마주앉아 있었는데 박성용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미선이 묻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성용은 헛기침부터 했다.

“저기,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네, 말씀하세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 시늉을 하면서 미선이 재촉했다.

 

휴가를 내고 오피스텔에 있었지만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강명식과 이은지가 오늘 오후 1시에 만나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은지는 명식이 요구한 5천만원 중에서 겨우 1천2백만원을 만들어 놓았다.

 

명식은 한푼도 깎아줄 수 없다고 했는데도 은지는 미선의 도움마저 거절한 것이다.

 

그렇다고 미선이 잔액을 다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수중에 있는 현금을 다 긁어모았지만 2천2백밖에 되지 않는다.

 

은지의 돈과 합해도 1천6백이 부족했다.

 

그때 성용이 말을 이었다.

“저기, 지난번에 제 사무실에 오셨을 때 사무실에 있던 제 후배를 기억하실는지 모르겠네요.

 

그때 서너 명이 함께 있었지만 제일 안쪽에 있던 친구인데.”

미선의 이맛살이 조금 찌푸려졌다.

 

성용의 사무실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한테 시선을 준 적도 이야기를 한 적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놈인지 기억이 날 리가 없다.

“모르겠는데요.”

“당연하지요.”

머리를 끄덕인 성용이 땀이 번진 이마를 손바닥으로 닦았다.

 

그 버릇 때문인지 성용은 반 대머리였다.

“그놈은 경찰인데 경위지요. 경위면 간부입니다.

 

특수수사 전문으로 사기, 협박범만 취급해 왔는데 우연히 제 사무실에 들렀다가

 

그때 선생님을 한번 보더니 저를 매일 들볶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소개시켜 달라는 거죠.”

“…….”

“나이는 서른일곱인데 아직 미혼입니다.

 

경찰대 출신에다 특수수사 전문이라 아주 장래가 양양합니다.

 

그놈이 잡아넣은 공갈 협박범만 1백명이 넘는다는군요.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

“그놈이 오늘은 직장도 쉬고 지금 제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한번 만나게 해 달라는 겁니다.”

“…….”

“우리 같은 서민이야 경찰 계통에 있는 인간들하고 접촉할 필요도 없습니다만

 

그 사람들도 남자고 감정을 가진 인간이죠.

 

선생님을 한번 보고 나서 애만 태우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

“이거, 역시 제가 기분만 상하게 해드린 것 같군요. 이럴 줄 예상도 했습니다만.”

쓴웃음을 지은 성용이 이마를 닦더니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든 그놈한테 최선은 다했습니다.”

그때 미선이 머리를 들고 성용을 보았다.

“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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