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신천지(14)
(1285) 신천지-27
전화기를 귀에서 뗀 조철봉이 앞에 앉은 이대권을 보았다.
“됐어. 이젠 네 차례야.”
“형.”
하면서 대권이 말을 이으려다가 조철봉에게 잘렸다.
“여자는 너한테 매달릴 거다. 제 친구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말야.
그럼 넌 뜸을 들이다가 승낙을 하는 거야.”
조철봉이 열변을 토하는 동안 대권은 이제 듣기만 했다.
“대신 조건을 하나 내놓는 거지. 너하고 하룻밤 같이 보내 달라고 말야.”
“형.”
이맛살을 찌푸린 대권이 조철봉을 쏘아 보았다.
“연장이 서지도 않는 판에 웬 하룻밤?”
“젠장.”
조철봉이 눈을 흘겼다.
“서는지 안 서는지 네가 해봤어?
그렇게 미리 기가 죽는게 네 연장 안 서는 것하고도 관계가 있단 말이다.”
“아니, 그리고.”
대권도 물러서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이래봬도 대기업 이사인데 경찰을 사칭하고 문제라도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내 목이 달아나는 건 둘째고 쇠고랑 차는거 아녀?”
“그건 나한테 맡기라니까 그러네.”
커피숍 안에는 둘뿐이었지만 조철봉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곳은 조철봉의 저택 건너편의 커피숍이다.
조철봉이 대권을 이곳으로 불러낸 것이다.
“자 그럼 다시 상황을 정리하자구.”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쿠데타 모의를 하는 장군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여자가 지금 불편한 상황에 몰려 있다는건 알고 있지?
제 절친한 친구가 협박을 당하고 있단 말이다. 그래서 휴가까지 냈어.”
“그건 알아.”
“너는 부동산 사장 박성용의 고향 후배가 되는 거지.
현직 경찰 특수수사 전문 경위이고,
넌 조미선씨를 부동산 사무실에서 한번 보았어.
그리고 그순간에 뿅 간거야.”
“그만큼 괜찮은 거야?”
“괜찮아.”
“어째 대답이 시원치 않네.”
“야, 내가 널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놓았단 말이다.”
조철봉이 정색하자 대권은 입맛을 다셨다.
“참, 내. 내가 졸지에 경찰이 되다니. 별짓을 다 하는구만.”
“성사시키려면 무슨 짓을 못해?”
“글쎄. 내가 그, 조미선인가 소미선인가
그 여자하고 된다는 보장이 있느냔 말이야. 내 말은….”
이번에는 대권이 정색했다.
“괜히 어렵게 트릭을 만들어 놓고 막상 벗고 누웠을 때
성사가 안 되면 말짱 도루묵이 아니냔 말이야. 내 말은….”
열을 받은 대권이 말을 이었다.
“차라리 아무 여자나 모셔다가 시험을 해 보는 것이 덜 부담이 된다는 말이야. 내 말은….”
그것을 조철봉이 왜 모르겠는가?
오늘 저녁 대권을 그렇게 해주려다가 어젯밤에 생각이 바뀐 것이다.
조미선을 대권과 엮어서 떼어내는 작업이다.
은지의 인생에서 미선을 떼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조철봉이 눈을 치켜뜨고 대권을 보았다.
“너, 온갖 약을 다 먹어도, 별놈의 수단을 다 썼어도 안 섰다면서?”
대권이 눈만 끔뻑였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너, 레즈비언, 그러니까 동성애자인 여자하고는 안 해봤지?
그런 여자하고 한번 기회가 온다면 네 기계가 가동될지도 모르잖아?”
(1286) 신천지-28
펜을 내려놓은 이은지는 한동안 사직서를 내려다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내일 학교에 사직서를 내 버린다면 강명식은 허를 찔린 셈이 될 것이다.
놈이 노리는 것은 이쪽의 체면일테니 학교에다 테이프를 뿌려 보았자
버스 지난후에 손을 든 것이나 같다.
길게 숨을 뱉은 이은지가 머리를 들고 벽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20분이다.
약속시간은 1시였으니 시간은 많이 남았다.
이곳에서 택시로 20분 거리밖에 되지않는 것이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으므로 은지는 긴장했다.
그러나 발신자 번호를 본 은지는 서둘러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조미선의 전화였기 때문이다.
“응, 왜?”
하고 은지가 행동과는 다르게 무뚝뚝한 목소리로 응답하자 미선이 물었다.
“은지야, 너, 몇시에 나갈거야?”
“그건 왜 물어?”
“약속시간이 1시지?”
“글쎄, 왜?”
“대화동 에덴가든이고?”
다 알면서 묻는 말이었으므로 은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미선이 말을 이었다.
“내가 12시반에 다시 연락 할테니까 그때까지 꼭 집에서 기다려. 나가지 말고 말야.”
“왜?”
“글쎄, 내 말좀 들어.”
이번에는 미선의 목소리가 굳어져 있었다.
미선이 더 목소리를 낮추더니 또박또박 말했다.
“내가 연락 할테니까 절대로 너 혼자 나서지 말고 기다리란 말야. 제발 내 말대로 해.”
그러고는 전화가 끊겼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은지는 다시 긴 숨을 뱉었다.
미선과 가까워진것은 아직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
전에는 서로 동성이며 동료로서 호감을 느끼는 정도였는데
그날 은지의 방에 놀러온 미선과 술을 마시고나서 이렇게 발전된 것이다.
은지는 물론이고 미선도 마찬가지로 동성에 대한 성적 감정을 느낀적이 없었다.
미선은 그것이 잠재되어 있었던 모양이라고 말했지만 부담을 느끼는것은 분명했다.
그것은 은지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한달에 한번이나 두번쯤 육체 관계를 맺을때는 몰두했지만 처음만큼 자극이 오지는 않았다.
미선이나 은지도 기구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꺼렸는데 그것은 두사람 모두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얻어지는 쾌락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육체 관계를 서로의 유대감과 신뢰를 증진시키는 윤활유 역할 정도로 간주했고
그 결과는 만족할 만했다. 지금까지 둘은 이렇게 믿고 의지하며 애정의 함축된 동반자를
만난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둘은 이 관계가 서로의 빈 공간이 겹치게 됨으로써 발생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미선도 상처가 있는 것이다.
사랑했던 남자를 보다 더 좋은 조건의 상대에게 떠나보낸 경험이다.
따라서 둘은 적당한 때에는 이 관계가 청산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동성애 관계가 대중매체에도 인정을 받는 단계였지만 둘은 그런 체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지는 탁자위에 놓인 사직서를 집어들고 접어서 봉투에 넣었다.
그때 문득 조영일의 아버지 조철봉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집에 초대 받았을 때 자신이 조철봉에게 한말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죠? 전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거든요.”
그때 조철봉이 눈물을 쏟았었다.
남자의 눈물은 그때 처음 보았다.
그남자, 왠지 감동을 주었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347. 개척자(1) (0) | 2014.08.23 |
---|---|
346. 신천지(15) (0) | 2014.08.23 |
344. 신천지(13) (0) | 2014.08.23 |
343. 신천지(12) (0) | 2014.08.23 |
342. 신천지(11) (0) | 2014.08.23 |